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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어린이’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1. 16.

 

‘어린이’의 어원

 

 

<훈민정음>의 서문은 누구나 한 번은 봤다.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라는 것이 한자이고, 거기에 곁들여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나온다. 그런데 ‘故愚民’ 언저리의 해석이.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로 된다. 어린 백성이라니, 늙은 백성은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냐고 이유를 다는 건 잘못이다. 요새 말하는 ‘어리석다’는 뜻의 그때 말이 ‘어리다’였으니까.

 결국 따져보면, ‘어리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요새 세 살 먹은 신동이네 다섯 살 먹은 귀재네 하는 그런 아이에게야 미안한 얘기가 되겠으나, 어리다는 건 모든 지능이 아직 계발되지 않은 때여서 어리석다 할 수박에 없어지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어리기만 하지 않은 신동(神童)이 나와 쌓더라는 말인가.

 ‘어리다’는 말을 ‘어리석다’로 쓰기가 어려워져서 생긴 ‘어리석다’라는 현대어인가 모르겠다. 이래서 ‘어린이’도 요새 쓰는 어린아이의 ‘어린이’라는 철자와 하나도 안 틀린 그것이, 중세어에서라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것으로, ‘어린이도 부린다 하니’라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도 부린다고 하니의 뜻이었다. 이런 중세어 표준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생각한다면, ‘어린이 사생대회’, ‘어린이 축구대회’ 같은 말속에는 불구자 체육대회 같은 인상이 담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훈민정음> 서문으로 돌아가 ‘ 予爲此憫然’이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 녀겨’로 된 것에 또 한 번 주목해 볼 일이 생긴다. ‘어엿비’라는 말이 ‘불쌍히’라는 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어에서는 ‘가엾다’ㆍ‘불쌍하다’라는 뜻으로, ‘어엳부다’ㆍ‘어엿브다’ㆍ‘에엳브다’ㆍ‘에엿브다’ 같이 여러 갈래로 쓰이는 것이 보이지만, 아무튼 비록 사투리라고는 해도 요즈음 쓰는 ‘어여쁘다’는 말은 ‘예쁘다’, 즉 얼굴이 곱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과 대조해 볼 때 거리가 먼 것 같이 생각이 된다.

 그러나 굳이 어떤 지성의 말을 빌 필요도 없이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애정의 출발점 그것이 아니었던가. 동정이 그만 애정으로 변하더라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진리는 아닌 것이다. 현대어로 생각하더라도 불쌍하게 보는 것은 곧 예쁘게 보는 것과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요새도 ‘어여삐’라는 말이 가엾게, 정 있는 눈으로, 같은 뜻으로 안 쓰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여삐 보살펴 주시지요.”

라는 말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저 측은하게 생각해서 한 풀 접어 생각해 주십시오.”

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