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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가시버시’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1. 10.

 

‘가시버시’의 어원

 

 

 요즘이야 청춘남녀가 종로 네거리를 팔짱 끼고 담소하며 걷는 것쯤 대단찮은 일이다. 대단찮은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청춘남녀 쪽이 오히려 이상하게 되었다. 복 받은 세대다. 다정히 걷는 아베크, 그것은 도시의 공원 같은 데서 차라리 더욱더 현대를 아름답게 수놓아주는 그림이 아닐까도 싶다.

 하지만, 3, 40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이를테면 출가한 딸이 근친(覲親)을 갈 때 사랑하는 낭군과 60리, 70리, 때로는 백릿길도 걸어가야 했는데도 결코 나란히 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동네에 접어들면 더욱 그러했다. 대둣병 친정아버지가 좋아하는 술을 담고 걷는 아낙은 엇비스듬히 낭군의 뒤쪽을 따라가야 했다. 그래도 동네 지경에 들어서면 꼬마들이 이 한 쌍의 부부를 발견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어, 저거 봐. 까시보시 좋다야!”

 이 말을 듣는 아낙네의 얼굴은 붉어졌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것처럼.

 사전을 찾아보면 ‘가시버시’는 ‘부부’의 낮춤말이라고만 적혀있다. 그러나 이 가시버시란 말에는 우리의 현대사가 깃들였고, 이제 ‘우리것들’이 차츰 스러지면서 함께 스러지고 있는 운명의 말이어서 감회가 깊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어감이 유럽 쪽 말 같대서 아예 그쪽 말이 아닌가고 반문할 정도이니 말이다.

 ‘갓’이나 ‘가시’는 우리 중세어에서 ‘아내’를 이름이었다. 표준말에 수록만 안 되어 있다뿐이지, 남도로 내려가면 동물을 교미시킬 때 ‘갓붙이다’라는 말을 쓰는데, ‘갓’이나 ‘가시’는 여자 쪽을 이르는 말이었다. 웃녘에서 ‘갓나이’ 하는 ‘갓’이 그것이며, 아랫녘에서 ‘가시내’ 하는 ‘갓’이 그것이다. 요새는 없어졌지만, 우리 중세어에서 ‘갓어리'는 '계집질'을 이름이었다.

 처가를 이르면서는 ‘가시집’이라고도 한다. 그와 같이 장인은 ‘가시아비’요, 장모는 ‘가시어미’, 처조부는 ‘가시할아비’요, 처조모는 ‘가시할미’라고도 한다. 물론 장인ㆍ장모에 악부(岳父)ㆍ악모(岳母)나 처조부ㆍ처조모 같은 ‘양반스런 말’이 있는 터여서 그저 푸대접받는 ‘상놈의 말’ 신세이긴 했어도 말이다. 그랬으니, ‘가시버시’도 어린애들이 놀려댈 때 쓰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버시’에는 특별한 뜻을 담기보다는 ‘가시’에 운(韻)을 맞추는 정도로 썼던 것이나, 아닐까 싶어지는데, 어떤 이는 그 옛날 불을 일으키는 기구로 쓰였던 ‘부시’ 쪽에 갖다 대면서, 그 ‘부시’가 ‘버시’나 ‘보시’ 따위로 말해졌던 것이 아니냐고, 그럴듯한 노란 해석을 했던 것이지만, 물론 근거가 박약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그렇더라도 ‘가시’는 달리 또 ‘극(棘)’이라는 뜻을 갖는 말이 있어서 생각 따라 재미가 있기도 하다. 아무리 남존여비에 여필종부의 세상이었다고는 해도 ‘가시(女ㆍ妻)’란 역시 ‘가시(棘)’ 같은 존재였다는 것일까? 미국말 woman이 남성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과 견줄 때, 여기나 저기나 여성은 사내에게 있어서 ‘가시’였더라는 말인가.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가시버시를 '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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