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어원
‘월급쟁이는 갈급(渴給)쟁이’라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는 우리네 사회다. 분하면 돈을 벌거나 사장이 되면 될 거지 무슨 불평이냐는 말도, 이 월급쟁이 아닌 갈급쟁이들한테서 나온 말이다. 월급쟁이들의 봉급날은, 외상ㆍ빚쟁이들의 봉급날로 가름되어 간다. 월급쟁이들의 안주머니는 월급 정류장. 많고 적고 간에 슬쩍 스쳐가기만 한다. 다음날이면 다시 외상이요, 또 꾸어 쓰기다.
“제기랄, 그게 서러우면 돈을 벌라니까 그래.”
3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5만 원짜리로 되어도, 한두 달만 지나고 보면, 다시 또 갈급쟁이 신세다.
“아 글쎄, 그게 서러우면 사장이 되면 될 거 아냐?”
그 월급쟁이를 일러 우리네는 ‘샐러리맨’이라 해 왔다. 영어에서 온 말로 생각하고 있다. 샐러리맨은, 그러나 영어로라면 완전히 틀린 말이다. 정확히는 셀러리드먼(Salariedman)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샐러리맨’은 우리네가 만든 외래어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할 때 ‘샐러리맨’은 신문 같은 데서 이른바 외래어표기법 따라 정확하게 표기한답시고 한 데서 온 것이요, 보통 일반이 말하고 쓰기로는 ‘싸라리맨’이다. 그래서 ‘싸라리맨’은 ‘싸라기맨’이라는 말로 비꼬기도 했다.
온쌀로는 결코 받아먹지 못하는, 싸라기 정도로나 받아먹는 신세라는, 어쩌면 잔뜩 열등감에 젖어 있는 자기 폄하가 곧 ‘샐러리맨’ 아닌 '싸라기맨'이었다. 따지고 보면 '갈급쟁이'라는 말이나 '싸라기맨'이란 말이나 거기서 거기다.
‘샐러리맨'과 '쌀'과 결부 지어진 것은 그럴싸한 일이다. 그 '셀러리'라는 말의 생겨남에서 생각할 때 더더욱 그러하다.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를 나라 밖으로 출정시키면서는 반드시 전시가봉(戰時加俸)이 나왔었다. 그것은 소금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요즈음 의학에서는 소금의 과량섭취가 고혈압엔 특히 나쁘다느니, 위장ㆍ간장에 부담을 준다느니 말이 많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로 아주 중요한 것이어서 그것이 물물교환의 수단이 되기도 한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또 같았더라는 역사를 갖는다. 노동이 심할 때 생리적으로 염분을 훨씬 더 필요로 한은 것임은 의학적으로 긍정되는 얘기이다.
라틴어에서의 ‘Sal(살)’은 소금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그 파생어(派生語)로서의 ‘salarium(살라리움)’은, 병사들로 하여금 소금을 사게 하기 위해서 지급되는 돈을 이르는 말이었다. 잠깐 옆길로 드는 것 같지만, sal 얘기가 났으니 얘기해 두고 싶은 것은 이 라틴어로부터 ‘소금에 절여진 것’이라는 뜻을 갖는 고대 이탈리아어인 ‘salata(살라타)’ 및 포르투갈어 ‘salada(살라다)’가 생겨났고, 이것이 다시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의 ‘salad(샐러드)’로 된 것이었다.
그는 그렇고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굳이 병사(兵士)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문관(文官)에게 주는 보수에 대해서도 이 'salarium'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고,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는 소금을 사기 위해서라는 개념이 변하여 생활필수품을 사는 급료 일반을 표현하는 말로 되어 갔다. 그리고 중세 프랑스어를 통하여 영어로 되면서 'salary(셀러리)'로 되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온 '샐러리맨'을 월급쟁이로 쓰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같이 교통이 발달된 사회에서는 좀 우습게 들릴지 몰라하되, 우리가 걸핏하면 잘 쓰는 ‘삼수갑산에 갈 값에…’ 하는 말에는, 그 높고 험준하고 오랑캐의 침략 통로이고, 하는 개념 외에, ‘소금을 구하기 어려운 지대’라는 뜻까지가 곁들여 있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소금은 인간이 사는 데 있어 그만큼 필요한 것이었다. 삼수갑산에 사는 사람들은 먹을 것 걱정보다도 어떻게 1년 먹을 소금을 구하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정말 여기까지 얘기하다 보니 생각나는 것인데, 우리 옛말에서의 '살'이라는 말은, 생활의 수단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 우연의 일치라 할지라도, 동과 서가 언어감각에서는 일찍부터 상통한 점이 있었더라는 것일까?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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