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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순원 단편소설 『별』

by 언덕에서 2024. 3. 4.

 

 

황순원 단편소설 『별』

 

 

황순원(黃順元 1915∼2000)의 단편소설로 1941년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소년의 내면적 성숙을 다룬 성장소설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소년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방해하는 못생긴 누이를 미워한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그리움을 마치 시를 읽어가듯 섬세한 문체로 그려져 있다.

 황순원의 문체는 작가의 적극적인 서술을 피하고, 생략ㆍ암시와 장면을 보여주는 묘사의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독자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의 문체가 만드는 동화적 분위기 속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네 애들과 노는 아이를 한 동네 과수 노파가 보고, ‘동북 뉘가 꼭 죽은 아이 오마니 닮았디 왜’ 한 말을 얼김에 듣자 아이는 놀던 것도 잊어버리고 일어섰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그려오던 돌아간 어머니의 모습을 더듬으며, 떨리는 속으로 찬찬히 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가 뉘처럼 미워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아이는 곧 노파에게 찾아가 아니 우리 오마니하구 우리 뉘하고 같이 생겼단 말은 거짓말이냐고 물었다. 노파는 맨 처음에는 같다고 하다가 계속 아이가 아니라고 묻자 그렇게 보니 아닌 거 같다고도 했다.

 달구지를 벗은 당나귀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찼다. 아이는 당나귀의 등에 올라타서 저도 모르게 우리 오마니가 뉘처럼 생겼단 말인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뉘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떨어졌다. 뉘가 일으켜주려는 것을 무지스럽게 뿌리치고 혼자 일어났다. 아이는 옥수수를 좋아했다. 누이가 우리 누가 쌍둥이를 많이 만드나 내기할까 했지만, 아이는 단박에 싫어라고 했다.

 어느 날 아이가 하늘의 별을 세고 있을 대 누이가 다가와서 옥수수 한 자루를 치마폭에서 꺼내 쥐어 주었으나 아이는 그것을 뜨물 항아리에 던져 버렸다. 열네 살이 소년이 된 아이는 뒷집 계집애 보다 더 예쁜 소녀와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는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소녀는 계속 바라다만 보는 아이에게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소녀는 아이의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어느새 자기의 입을 사내애의 입에다 갖다 대고 비비었다. 그러자 아이는 이 소녀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소녀를 놔두고 그냥 내려왔다.

 누이는 성 안 어떤 실업가의 막내아들이라는 사내와 아무 불평 없이 혼약을 맺었다. 얼마 안 되어 결혼하는 날, 누이는 가마에 오르기 전에 의붓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무던히 슬프게 울었다. 아이는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이는 가마에 오르기 전에 젖을 얼굴을 들었다. 아이는 자기를 찾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누이가 시집간 뒤 또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별나게 빨간 노을이 진 늦저녁 때 아이는 누이의 부고를 받았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고인 아이의 누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편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편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이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 몰았다.

 

소설가 황순원(黃順元 1915∼2000)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한 소년의 마음의 방황을 그린 단편으로, 어렸을 때 여읜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소년은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찾으려는 완고한 집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인형, 누이, 어느 소녀 등 현실 속의 그 어떤 것도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에 비교될 수 없으며, 심지어 밤하늘의 별도 마찬가지라고 여기며 눈을 감는 소년의 애환을 통해 영원성에 대한 인간 모두의 바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9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사내아이의 누이에 대한 미움은 사실은 미움이 아니라 죽은 어 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역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불필요한 대화의 생략과 암시'를 통해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 심리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아동 문학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나, 작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자기 조성과 성숙 이전의 인간의 삶의 근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누이의 동생에 대한 섬세한 마음 씀씀이도 그렇거니와 그에 대한 아우의 거부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한 편의 서정시와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소위 '성장소설'의 하나로 판단되는 이 작품은 누이의 죽음이라는 경험을 겪은 후에야 '모성고착(Mother fixation)'으로부터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게 된 사내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즉 '성장과 찾음'이라는 유형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과 같이 '모성고착'에 의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김동인의 탐미주의적인 작품인 <광화사(狂畵師)>도 있다.

 

 


☞ <성장소설(initiation story)>

 

원래 initiation이라는 말은 '신참(新參)'이라는 말이다. 원래 인류학의 개념이었다. 이는 유년이나 사춘기에서 성인 또는 성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의식이다. 이 의식에는 의례 주인공에게 시련과 고통, 금기, 고립화가 수반된다. 이런 인류학의 용어를 소설론에 차용함으로써 어리거나 사춘기의 소년이 어떤 경험의 충격을 겪으면서 변화를 일으키고 마침내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소설을 성장소설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