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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범선 단편소설 『학마을 사람들』

by 언덕에서 2024. 3. 18.

 

이범선 단편소설 『학마을 사람들』

 

 

이범선(李範宣. 1920∼1982)의 단편소설 1957년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다. 담담한 필치로 토착 서민의 생태를 그린 이범선 초기의 작품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1938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기에 평안북도 풍천(風泉) 탄광에 징용되었다. 광복 후 월남해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6ㆍ25 때는 거제고등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때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暗票)>(1955)와 <일요일>(1955)로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ㆍ숙명여자고등학교ㆍ대광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77년부터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작품은 학의 도래 여부와 학의 상태를 마을의 행ㆍ불행 및 운명의 길흉으로 믿는 전래적이고 집단적인 속신(俗信)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이에 병렬시켜 전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양적 운명관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이 있다. 이를 통해 작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변천 및 그에 따른 인간의 불행한 상태와 이를 극복하려는 희망과 끈질긴 향토애라는 주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 두메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곳을 ‘학마을’이라 불렀다. 이 마을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은 손자 덕이와 바우를 병정으로 내보내고 오는 길이다. 그들은 말없이 학마을을 내려다보다가 올해로 삼십육 년째 학이 오지 않음을 상기한다. 36년 전 학이 오지 않던 그 해에 한일합방이 되었다. 그리고 해방이 안 된 오늘날까지 학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장 영감은 그 옛날 젊은 시절, 한 쌍의 학이 마을을 찾아오면 마을에서 큰 잔치를 벌이던 것을 회상해 본다. 학이 오면 마을 청년들은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고, 마을 처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의 어깨너머로 음식을 건네주며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물동이를 이고 학나무 아래를 지날 때, 물동이에 학의 똥이 떨어지면 그 처녀는 그 해에 시집을 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장 영감은 자기가 좋아하던 처녀 탄실이와 혼인을 못한 한이 맺혀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을에서 ‘학이 왔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학은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고 병정으로 끌려갔던 덕이와 바우도 돌아왔다. 그 뒤 몇 해 동안 학은 계속해서 날아와 집을 틀고 새끼를 낳았다. 새끼가 세 마리면 풍년이요, 두 마리면 평년이요, 한 마리면 흉년이라 했는데, 학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마을은 풍년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의 새끼 한 마리가 죽었다. 6ㆍ25가 터졌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던 봉네가 덕이와 혼인을 하자 바우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공산주의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는 동네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학 한 마리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전세에 밀려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다시 행방불명이 된 바우를 기다린다고 박 훈장은 끝내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봄이 되면서 학마을 사람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장네 집과 학나무는 불에 타 버렸고, 박 훈장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박 훈장의 죽음을 안 이장 영감도, 그날 밤 손자 덕이의 손을 더듬어 잡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학, 학나무를, 학나무를....”

 이장 영감은 잠들 듯 숨을 거두었다. 덕이와 마을 사람들이 이장과 박 훈장의 장례를 치르고 마을로 내려올 때 봉네 손에는 흰 보자기에 싼 조그만 애송나무 하나가 들려 있었다.

 

소설가 이범선(李範宣 .1920- 1982)

 

 이 작품에는 신적(神的)인 존재가 깃들여 있다. 그리고 그 신의 자리에 학이 놓여 있다. 이 작품에서 신이 숨어 버리는 계기는 한일합방과 해방, 그리고 6․25의 세 가지 측면에서다. 이 세 단계는 한국 근대사의 중요 고비와 대응된다. 즉, 신이 숨은 시대가 역사성 자체에서 연유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작품 세계는 동양적 운명관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이러한 토착적 삶의 세계관 속에는 한국적 리리시즘을 바탕으로 하면서, 한 편의 수묵화 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자연적․토속적 삶의 세계를 통하여 비인간화되어 가는 역사적․사회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문명에 대한 비판의 시각은 그가 전후작가(戰後作家)라는 평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전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문학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전쟁의 비인간성과 파괴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의 위협에 대한 항변이기도 한 것이다.

 

 

 학이 오지 않았던 시절은 크게 두 가지 역사적 사건과 일치하는데, 하나는 한일합방이고 또 하나는 6ㆍ25 사변이다. 이 두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가 될 뿐만 아니라 민족의 삶의 조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외부의 세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내왕도 별로 없고 영향도 별로 받지 않는 외진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서 이 역사의 격동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작가의 역사의식이 학의 운명을 통해서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의 학은 ‘신성한 삶의 규범’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학이 떠나고 돌아옴은 일상적인 삶의 리듬과 일치하는 것으로, ‘인간의 삶의 한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라져 버렸을 때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서두에 제시된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이 손자들을 일본군 병정으로 보내고 돌아오는 장면과 인민군 앞잡이 노릇을 한 바우가 재앙을 불러오는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학이 돌아왔을 때의 기쁨과 잔치,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과 대조되는 이런 불행한 일들은 모두 민족사의 한 불행한 단면들이다. 학이 없는 시대, 그것은 삶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성한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며, 삶의 의미 창조가 불가능한 불행한 역사적 상황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