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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인 단편소설 『광화사(狂畵師)』

by 언덕에서 2024. 3. 15.

 

김동인 단편소설 『광화사(狂畵師)』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35년 [야담]지에 발표되었다.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이 잘 나타난 단편소설이다. 그는 미에 대한 견해를 여러 글에서 제시한 바 있는데, '악(惡도) 미(美)'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미에 대한 광폭적 동경'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허구적으로 표현한 것이 단편소설 「광화사」이다.

 예술지상주의론자인 김동인의 문학 경향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미와 직결되어 있다. 또 여기서 그가 구현하고자 하는 미는 절대미의 추구이며, <광염 소나타>에서도 그의 미학은 같은 맥을 이루고 있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의 휴머니즘과 <붉은 산>에서의 민족주의 사상, <감자>와 <태형>에서의 인생 문제 제시 등 그의 다채로운 문학적 경향은 사실주의와 예술지상주의에 편중된 듯한 그의 작품 세계에 이질적 측면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이 작품은 액자소설의 플롯으로서 ‘나’의 플롯에다 ‘나’의 상상 속에 유추된 또 다른 플롯이 삽입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술자인 ‘나’는 인왕산에 올라 자연을 감상하며 샘과 숲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미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신라 때 화성(畵聖) 솔거로 정하고, 때는 조선시대 세종 때로부터 시작된다. 솔거는 세상에 보기 드문 추악하고 흉한 얼굴로 태어난다. 코가 질병 자루 같고, 입이 나팔통 같고, 얼굴은 두꺼비 형상인 그는 너무 추해서 대궐의 북문 밖에 숨어 산다. 두 번이나 결혼했으나 그의 얼굴을 본 색시들이 도망을 쳤다. 그는 차츰 사람을 기피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백악의 숲 속 조그만 오두막에 삼십여 년을 혼자 은거한다. 화폭에 담을 대상을 찾던 중 어릴 적 자신을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차츰 미녀상으로 바뀌어 아내로서의 미녀를 그리게 된다. 그러나 미녀의 아랫둥이를 그린 지가 수년이 지났건만, 그 위에 얼굴을 그릴 수 없어 그는 장안을 돌아다닌다. 그는 뽕밭에서 아리따운 궁녀를 만나지만, 그녀의 얼굴도 미흡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쌀을 씻으려고 시냇가에 나갔다가 아리따운 처녀를 만난다. 열여덟 살인 그녀의 얼굴 전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 그는 그동안 자신이 찾던 얼굴임을 직감한다. 그런데 그녀는 소경이었다. 그는 소경 처녀를 용궁의 이야기로 꾀어 오두막으로 데려온다. 오두막에서 솔거는 눈으로 처녀의 얼굴을 보고 입으로는 계속 용궁의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는 십 년간을 벼르며 그리지 못했던 미인도를 그린다. 용궁의 여의주라는 구슬을 네 눈 위에 한번 굴리면 너도 광명을 볼 것이라면서 미인도를 거의 완성했는데, 눈동자만은 그리지 못한다.

 그날 밤, 솔거와 소경처녀는 남이 아닌 사이가 되었고, 삼십 년의 독신 생활을 벗어버린다. 밝은 날 아침, 둘은 조반을 먹은 뒤 다시 화폭 앞에 앉는다. 그림을 완성시키려던 솔거는 동경과 정열에 빛나던 처녀의 눈이 여전히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제의 그 눈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녀의 눈은 이미 지어미의 애욕의 눈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전날의 그 눈빛으로 되살리기 위해 용궁 이야기를 하며 애를 쓰지만, 처녀의 눈빛에 덮인 애욕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화가 난 솔거는 커다란 양손으로 처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다가 따귀를 때리고 또 멱살을 쥐고 흔든다. 소경처녀의 눈에 원망의 빛이 나타나자, 솔거의 노여움은 극에 달하였고, 저주의 말을 퍼붓다가 그만 처녀를 죽이게 된다. 그녀의 몸이 너무 무거워서 그는 잡은 손을 놓아버린다. 처녀의 몸은 반사적으로 위로 뒤 솟다가 번뜻 나가 넘어진다. 그 서슬에 그만 벼루가 엎질러지면서 먹물이 그녀와 화폭의 눈동자를 그릴 그 자리에 튀었다. 화폭에 튄 먹물이 만든 눈동자의 모양은 처녀가 솔거에게 멱살을 잡혔을 때 그녀의 눈에 나타났던 바로 그 원망의 눈빛이었다. 솔거는 광인(狂人)이 되었고, 그녀의 그 화상을 들고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길에서 객사한다.

 나는 인왕산에 올라 자연을 감상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꾸미게 되었고, 늙은 화공의 쓸쓸한 일생을 조상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흔히 「광화사」는 김동인의 유미적 경향이 짙게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예술지상주의적인 그의 취향이 「광화사의 솔거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솔거가 김동인의 취향을 대변하는 등장인물일까 하는 데는 의문의 소지가 있다. 한 작품의 등장인물은 비록 작가의 의도에 따라 창조되지만, 일단 그것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이미 작가와는 상관없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액자소설로서 도입 액자의 ‘여(余)’가 산책 도중 우연히 발견한 샘물과 암굴에서 힌트를 얻어 꾸며낸 이야기로 되어 있다. 작품 자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여’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솔거는 독립적인 생명체로써 인간의 가장 소중한 욕구와 소망의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인도 제작의 원동력이 되는 복수욕과 모성의 세계로 회귀하고자 하는 소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결과적으로 그가 소망한 바를 성취했느냐 못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사실 이상의 감동과 재미와 깨달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허구의 위력이 증명되는 작품이다.

 

 

「광화사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이 짙게 나타난 작품으로, 작가의 예술 지상주의적 취향이 작중 인물 '솔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그(솔거)의 예술에 대한 열정도 그렇지만, 대상을 향한 심미안, 밤을 지내고 난 소경 처녀의 눈빛에 일어난 변화, 그에 대한 안타깝고 절망적인 분노는 그런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더구나, 소경 처녀가 죽으면서 엎은 벼루의 먹방울이 튀어 그림의 눈동자를 이루고, 그 눈동자가 죽은 처녀의 원망의 눈으로 나타나며, 결국 화공이 미치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거의 악마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모든 것의 희생 위에서 희귀한 예술이 완성된다는, 따라서 예술적 완성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작가의 성향을 반영한다. 동시에, 솔거로 대표되는 예술가의 강렬한 예술혼의 결과가 '원망의 빛이 서린 미인도'라는 점에서 절대미의 추구는 그토록 지난한 것임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의 가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인물 설정과 특이한 주제를 노골화한 작품이어서 보편적 가치론에 수용되기는 어렵다. 솔거가 소경 처녀와 정을 통한 뒤, 순수성이 없다는 한 가지 이유로 그녀를 교살하는 장면 등이 특히 그러하다. 따라서, 솔거라는 인물의 격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과 비정상적 가치에 대한 경도, '눈동자'라는 결말의 작위적 장치 등과 더불어 이 소설은 김동인 특유의 극단적 예술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