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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바위』

by 언덕에서 2023. 11. 15.

 

김동리 단편소설 『바위』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36년 [신동아]지 5월호에 발표되었다. 그의 작품 중 초기작에 속하며 처음 발표된 뒤 두 차례의 개작을 거쳤다. 그의 문학은 오랜 기간 동안 보여준 한국적 주제의 강렬함과 향토적 미학의 색채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의 문학 세계는 보통 한 작가에 대해 말할 때 거론하는 소재의 특이성과 강렬한 주제 의식, 작가 정신의 변모 등을 통해서 보더라도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해 왔다. 일반적으로 그의 문학 세계는 크게 샤머니즘의 세계, 향토적인 토속의 미, 종교적 주제, 그의 일련의 작품 등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작가는 ‘허무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는 허무를 온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허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니힐리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허무는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렬한 인생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허무가 인류의 운명이라면 이것을 타개하는 것이 인류의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복종하기도 하며 도전ㆍ반항하기도 한다. 김동리의 문학이 종교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허무를 해결하는 노력의 표현이며, 지금까지 허무를 해결하는 가장 큰 몫을 종교가 해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 문둥이 여인의 비극적 삶과 죽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정과 ‘복바위 신앙’을 바탕으로 한 토착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모성의 아름다움, 혈육의 끈끈함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말해 주고 있으며, ‘복바위’라는 샤머니즘적 사물을 등장시켜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읍내 근처의 기차 다리 밑에는 한 떼의 병신과 거지와 문둥이가 산다. ‘여인’은 그 문둥이들 중 한 사람이다. 여인이 그곳까지 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여인에게는 그녀의 남편인 ‘영감’과 아들 ‘술이’가 있었다. 그러다가 여인이 문둥병에 걸리자 장가 밑천으로 모아 둔 돈을 어머니의 약값과 노름으로 날려버린 아들 ‘술이’가 집을 나가 버린다. 아들을 잃은 영감은 여인을 학대하다가 급기야는 여인을 독살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감을 이해한 여인은 결국 집을 나온다. 그리하여 세 사람의 가족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기차 다리 밑에 토막을 짓고 그곳에 거처를 정한 여인은 아들 ‘술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날을 보낸다. 이때 아들은 여인에게 유일한 삶의 의미로 자리 잡는다. 마침 근처에 복을 빌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복바위’가 있음을 안 여인은 매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복바위’에 가는 일에 몰두한다. 바위를 갈기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여인은 그리던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난 아들은 그 후 소식이 없다. 아들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 여인은 다시 복바위를 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뭇매질을 당한다.

 어느 날 장터를 헤매던 중 여인은 아들 ‘술이’가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다시 복바위에 갔던 여인은 자기의 토막이 불타고 있음을 목격한다. 여인은 그날 밤 복바위를 안은 채 숨을 거둔다.

 

 

  김동리의 장·단편 <무녀도>, 「바위」, <황토기>, <밀다원 시대>, <등신불>, <까치소리> 등 많은 작품에서 주인공의 죽음으로 스토리가 끝나고 있다. 이 ‘죽음’에 대해 작가는 [서강 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가 문학을 하게 된 동기는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너무 두려워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작품의 대부분은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초기의 작품에서만 해도 <무녀도>, 바위」, <황토기>가 모두 그렇고, 나중의 장편 <사반의 십자가> 역시 그렇다. 죽음에 대한 집착은 나의 문학을 종교와 결부시켜 놓은 건지 모른다.(중략) 내가 병을 자주 앓던 소년 시절에서 이미 오십여 년이 지나, 지금은 나의 성격이나 취향 따위가 모두 딴판으로 바뀌인 것 같으나, 죽음에 대한 전율은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죽음의 의식과 그 공포에서 비롯되었던 죽음은 바로 김동리의 문학에 있어서 커다란 주제적 지주에 해당한다.

 『바위』의 문둥이 여인은 남편에게서 쫓겨나고 아들을 잃어버린다. 아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복바위를 갈면서 빈다. 그것도 남이 안 보는 밤중이나 사람 없는 때를 틈타서 그럴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들켜서 맞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자기가 몸을 담고 살던 토막마저 불태워지고 마침내 문둥이 여인은 싸늘한 바위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죽는다. 흔히 그렇듯이 이 작품을 단순한 샤머니즘적 취향의 표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작품의 참담한 결말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비관적 세계 인식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작품으로 하여금 당시의 우리 땅에 있어서 하나의 침통한 현실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보기에 따라서 복바위를 안고 죽은 문둥이 여인의 운명은 식민지적 비극의 상징적 축소화이다. 

 

 

 이 작품은 육신의 저주받음과는 상관없이 지극한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소망과 구원이라는 인간적인 실상을 문제 삼고 있다. 즉 '복바위 = 영험의 성소(聖所)'라는 토속적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아들과의 재회라는 비원(悲願)을 바위에 기구하면서 천형(天刑, 문둥병)을 참으며 살다 죽은, 어느 문둥이 여인의 한스러운 일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여인의 일생은 겹치는 불행 속에서도 묵묵히 운명에 순종하는 전통적 한국인 삶의 한 방식으로 김동리의 숙명론적 인생관을 보여 준다. 그러기에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받고 있는 주인공의 삶이 처절하다는 느낌과 함께 그 어떤 신비적인 느낌을 준다. <무녀도>와 주제면에서 '전근대적 요소의 소멸' 내지는 '무속 세계의 소멸' 혹은 '토속적 샤머니즘의 패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단편소설 「바위」는 김동리가 두 번이나 개작을 할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며 김동리의 주술 미학의 본령과 시적인 수사학으로 짜인 작품이다. 제재가 문둥이라는 면에서 서정주 시인의 <문둥이>라는 시와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다.

 이 작품 「바위」는 간결한 문체를 사용하여 긴 시간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면서 사건 전개에 긴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작가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에서 작품을 서술해 나감으로써 문둥이 여인의 참담한 삶의 모습을 진한 감동으로 독자에게 전해 준다. 또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당시 하층민의 삶을 보다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