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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호철 단편소설 『판문점』

by 언덕에서 2023. 11. 8.

 

이호철 단편소설 『판문점』

 

 

이호철(李浩哲. 1932∼2016)의 단편소설로 1961년 발표되었다. 작가의 초기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제7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작이다. 이호철 작품의 바탕에는 분단과 실향이라는 민족적, 개인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고향이 원산이고, 6ㆍ25 전쟁 때 혼자 월남하여 살아온 그의 인생 역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호철은 분단과 실향이라는 의식이 바탕에 깔린 채 당대 현실에 비판적인 작품을 주로 썼는데, 직접 독재 체제에 대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현실 참여의 선두에 섰던 문인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판문점』도 분단으로 비롯된 우리 민족의 현실을 어느 기자의 판문점 취재기를 통해 함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남쪽의 기자인 진수와 북쪽 여기자의 신랄한 대화를 통해 남북간의 체제와 사고방식의 이질성을 부각하고 있다. 우리 문학 중 분단을 주제와 소재로 한 문학 갈래를 ‘분단 문학’이라고 이름한다면, 이 작품은 분단 문학의 초기를 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초반, 주인공 진수는 신문기자이다. 그는 취재를 하려고 판문점을 가게 되었다. 진수로서는 판문점에는 처음 가는 길이었다. 판문점에서는 무슨 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이다. 진수는 동행하는 외국인 기자들에게서 느끼는 이역감(異域感)과 처음 와 보는 판문점 주변 풍경에서 느끼는 낯섦을 한편으로 하고, 서로 낯이 익어 농담을 주고받는 남과 북의 기자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예쁘장하게 생긴 북쪽의 여기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진수는 처음 겪는 경험에 당황하기는 하지만, 곧 그 여기자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야기는 서로의 체제에 대한 논쟁으로 격화되고, 이념과 현실의 철학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된다. 그러나 곧 두 사람은 서로의 개인적인 신상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게 되면서 점점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온통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수와 그 여기자는 순간적으로 비를 피하여 어느 지프차에 올라탔다. 지프차 안에 단 둘만이 있게 된 것이다. 그 여기자는 진수에게 이북으로 가자고 계속 권한다. 그러나 진수는 그 여기자에게서 여자로서의 감정을 느낄 따름이다.

 이렇게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비는 그치고 둘은 각각 왼쪽문과 오른쪽 문으로 나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판문점에서 두 사람은 만나지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의 이야기는 계속 어긋날 뿐이었다. 다만, 진수는 ‘기집애, 조만하면 쓸만한데, 쓸 만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쓸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판문점은 단순히 진수가 겪은 판문점의 사건을 서술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시점이 핀문점의 사건과 서울의 일상적인 생활 사이를 오가면서 전개되고 있다. 특히, 그의 형과 형수 사이의 관계, 형의 회사 전무와 그의 아내와의 관계 등에서 발견되는 가식적인 언행과 역겨움이 판문점의 사건과 대비되면서 서술되고 있다.

 남쪽에서 여유 있는 자들의 허위와, 그와 대비되는 북쪽 여기자의 면모, 이것은 어쩌면 분단이라는 상황에서 서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질감인지도 모른다. 북쪽에서 남쪽을 보고 헐벗은 사람들이라 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진수의 주변 사람들은 너무 풍족하고 무거워서 탈인 사람들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남쪽 사람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고 북쪽 여기자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만, 북쪽 여기자는 남쪽은 헐벗고 타락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도 느끼는 진수에 대한 연민의 정을 애써 감춘다. 여기에서 분단의 비극은 사람들의 생활, 사고, 감정에까지 뻗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은 판문점의 분위기, 북쪽 여기자에게서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 형수, 조타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여 준다. 즉, 그는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분단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은 없으며, 어느 개인의 사사로운 생활일지라도 거기에는 분단이라는 원죄적인 운명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작가에게 분단의 원인이나 분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대체 이 같은 현실이 우리 만족의 삶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판문점이라는 해괴한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판문점은 분명 ‘판문점’이었고, 이 나라 38도 선상 근처에 있었던 해괴망측한 잡물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가슴패기에 난 부스럼 같은 거였다. 부스럼은 부스럼인데, 별로 아프지 않은 부스럼이다. 아프지 않은 원인은 부스럼을 지닌 사람이 좀 덜 됐다, 불감증이다, 어수룩하다는 데 있다.”

 작가는 판문점으로 상징되는 분단의 현실을 위와 같이 날카롭고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남북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의식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북이 군주정(君主政)으로 전락하였다는 비판과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살림살이를 도외시하며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이 작품 전체에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이념이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과 사고방식에서 드러나는 분단의 결과물들이 작가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