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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광수 중편소설 『꿈』

by 언덕에서 2024. 2. 5.

 

 

이광수 중편소설 『꿈』

 

 

이광수(李光洙, 1892∼1950)가 지은 중편소설로 1947년 [면학서관(勉學書館)]에서 간행하였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에 나오는 ‘조신의 꿈’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단편소설 『꿈』은 용선화상(龍船和尙)이라는 고승으로 표상되는 불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섭리에 따라 욕망을 이루지만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살인과 배반으로 파멸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구조로, '현실의 욕망 → 욕망의 성취 → 파탄 → 자아인지의 갈등'과 같은 구조가 간결하고도 유려한 문체로 형상화되어 있다.

 전편이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권은 조신이 달례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탈출하는 이야기고,

 둘째 권은 달례와 조신의 행복한 생활과 방해자인 평목 스님을 죽이고 달례의 정혼자이었던 모례가 사냥을 나오는 내용이며, 

 셋째 권은 이제까지의 잘못으로 교수형을 당할 때 놀라서 꿈을 깨며 인간세계 욕망의 무상을 깨닫는 스토리이다.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조신의 꿈’ 설화와 비슷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바세계는 허망하고 덧없다는 불교사상을 밑바탕으로 하는 꿈소설이다.

 

영화 <꿈>, 199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대 배경은 통일신라 시대로 조신은 원래 세달사에서 수양을 쌓던 승려인데 우연히 태수 김흔 공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조신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힘들어 낙산사에 있는 용선 대사를 찾아간다.

 조신은 얼굴빛이 검푸르고 눈과 코가 찌그러진 못생긴 승려이다. 그런 그가 용선 대사에게 달례와 결혼하는 방법을 구하자 용선 대사는 법당에 들어가 관음 기도를 시작하라고 한다. 조신은 법당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기도한다. 한밤이 되자, 갑자기 달례가 웃으면서 법당으로 들어온다. 조신은 가사와 장삼을 벗어던지고 보화가 든 그녀의 보퉁이를 들고 그녀와 도망친다.

 조신은 태백산 깊숙한 곳에서 자식을 낳고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승려 평목이 그들을 찾아온다. 평목은 달례와 정혼했던 모례가 아직도 그들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모례는 칼을 잘 쓰고 말을 잘 타기로 유명한 화랑이었다. 평목은 조신을 협박하며 그의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한다. 조신은 평목이 모례에게 자신들의 거처를 알릴까 두렵고 딸도 줄 수 없어 평목을 죽인다.

 조신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죄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한다. 어느 날 서울에서 사또의 지인이 내려와 사냥하던 중 화살에 맞은 사슴이 평목의 시체를 내다 버린 동굴로 들어간다. 시체가 발견되자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 서울에서 온 손님은 바로 모례였다.

 조신은 자신의 죄가 발각되기 전에 가족과 함께 도망친다. 도망 중에 큰아들 미력은 고열로 죽고, 마침내 마을 주막에서 모례에게 붙잡힌다. 조신은 모례에게 아내와 자식들만은 살려 달라고 애걸한다. 이에 달례는 자신이 조신을 유혹했으니 자기에게도 죄가 있다고 말하며, 목을 베어 달라고 청한다. 모례는 승려가 되라는 뜻으로 달례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목에 가벼운 상처만을 낸다. 조신은 포승을 지고 잡혀가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 조신은 잊고 있던 승려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기도하고 염불을 하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헛된 생각이 그를 괴롭힌다. 옥리를 따라 형장에 이른 조신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관세음보살을 외친다. 두려움에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그에게 누군가가 엉덩이를 차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용선 화상이 웃으며 서 있고, 관음보살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신은 달례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알게 되어 다시 불도에 정진하여 대사가 되었다.

 

영화 <꿈>, 1967

 

 춘원 이광수가 삼국유사의 <조신설화>를 상당히 좋아해서 중편소설 「꿈」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감독 신상옥 또한 춘원의 중편소설 「꿈」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 작품을 두 차례나 영화화했는데, 1954년에는 최은희와 황남이 주연이었고, 1967년에는 신영균과 김혜정이 주연이었다.

 영화감독 배창호도 1990년에 <꿈>을 영화화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이광수의 소설보다는 <삼국유사>를 원작으로 했다고 판단된다. 안성기와 황신혜 주연인 영화의 시나리오는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이 같이 썼다고 한다. 꿈속에서 김흔의 딸이 스스로 조신을 찾아온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조신이 아가씨를 겁탈해 아내로 삼았고, 아가씨의 약혼자인 화랑이 조신 부부를 계속 추적한다는 내용으로 각색되었다. 어쨌든 <조신설화>처럼 '현실→꿈→현실'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 후에 <금오신화>에 등장하고 <구운몽>에서는 존경을 마음을 역력하게 담은 내용을 볼 때 '조신의 꿈' 이야기는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식자층에도 큰 충격을 준 듯하다.

 

 

 

 이광수의 중편소설 「꿈」은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에 나오는 ‘조신의 꿈’ 설화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삼국유사의 조신 설화는 '몽유록(夢遊錄) 문학' 혹은 '환몽설화(幻夢說話) 문학'의 원형에 해당한다. 몽유록이란 현실의 주인공이 꿈속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글을 일컫는다.

 소개한 조신 설화가 몽유록 문학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매우 크다. '조신 설화'는 소설 이광수의 「꿈」과 김성동의 <꿈>의 창작 모티브가 됐으며, 신상옥의 <꿈>, 배창호의 <꿈>이라는 영화의 원작이 되기도 했다. 이광수의 중편소설 『꿈』은 용선화상이라는 고승으로 표상되는 불교적 섭리에 따라, 욕망을 이루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살인과 배반으로 파멸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구조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이광수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조신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것으로, 주인공이 바라던 바가 꿈속에서 실현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꿈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는 환몽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사바세계는 허망하고 덧없다는 불교 사상을 밑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꿈소설이라고 판단된다. 해방 후 친일파로 지탄받았던 이광수가 불교에 심취해야만 했던 정신적인 상흔이 곳곳에 드러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간결하고도 유려한 문체로 형상화되어 있다. 총 2권으로 구성하여 첫째 권은 서문과 조신이 달례와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탈출하는 편이고, 두 번째 권은 달례와의 행복한 생활과 방해자인 평목 스님을 죽이고 달례의 정혼자이었던 모례가 인간 사냥을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이제까지의 잘못으로 교수형을 당할 때 그만 놀라서 꿈을 깨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어쨌든 이광수의 소설 『꿈』은 한낱 인간의 삶과 욕심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깨닫게 하는 교훈을 준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편 <조신의 꿈>

 

 주인공은 신라의 승려 조신(調信)이다. 조신은 본디 세달사(世達寺)에 있었는데, 절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내리군(㮈李郡)에 있었으므로 파견되어 장원을 관리하였다.

 조신은 명주 태수 김흔(金昕, 803~849)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낙산사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그 여인과 맺어지게 해 주십사 하고 남몰래 기도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연분이 맺어지기는커녕 다른 남자와 혼사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조신은 밤중에 불당에서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사모하던 낭자가 제 발로 절에 나타나 불당 문을 열고 조신을 찾아왔다. 낭자는 웃는 얼굴의 낭자가 흰 이를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제가 일찍이 스님의 얼굴을 알아 마음으로 사랑하였으니 잠시도 잊지 못하였으나, 부모의 명에 못 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무덤에 묻힐 짝이 되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김 씨 낭자 또한 부모가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조신에게 연정을 품고 과감히 집을 나왔다고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그대로 고향으로 도피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 가정을 일구었다.

 두 남녀는 40여 년간 같이 살면서 자식 5명을 낳았으나 집은 쓰러져 가는 초가에 불과했다. 나중에는 그 보잘것없는 누옥도 잃고 온 가족이 함께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기를 10년 간 했는데, 입은 옷마저 갈갈이 찢어질 정도였다. 어느 날 명주 해현령(蟹峴嶺)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15살 된 큰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부부는 대성통곡하며 시신을 길 옆에 묻었다. 그 뒤 남은 가족들이 우곡현(羽曲縣)에서 풀을 엮어 집으로 삼아 구걸로 먹고살았다. 부부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든데, 어느 날 10살 된 딸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다가 개에게 발목을 물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이 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아내가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아름답고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입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해가 거듭될수록 병은 깊어가는데 굶주리며 추위에 떨기가 일쑤입니다. 이제는 곁방살이나 한 병의 마실 물도 사람들이 용납하여 주지 않으니, 수많은 집 문 앞에서 당하는 그 수모는 산더미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해도 돌보지도 못하는데 언제 부부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얼굴이며 밝은 웃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언약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지나갔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 다 함께 굶어 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 되지만,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릅니다.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두 사람이 서로 잡았던 손을 막 놓고 길을 떠나려는데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다. 쇠잔한 등불이 가물거리고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새하얗게 세어버렸다. 마치 한평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듯 세상사에 뜻이 사라지고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또한 자기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

 조신이 돌아가는 길에 꿈속에서 큰아이를 묻은 곳에 들러 땅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조신은 미륵상을 물에 씻어 가까운 절에 봉안하고 세달사로 돌아와 소임을 내려놓은 뒤,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부지런히 선행을 하며 살았다. 이후 조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