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중편소설 『매잡이』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중편소설로 1968년 [신동아]지에 발표되었다. 이청준의 다른 소설 <줄>과 같이 이 소설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옛 것을 지켜나가는 장인 정신을 다룬 작품이다.
세상은 쉬지 않고 변한다. 시류에 따라 변한다. 가장 소중했던 옛것은 버리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한다. 그러기에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비현실적인 꿈이 되고 만다. 이 작품은 매잡이 사냥을 하던 곽 서방이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지키려는 처절한 삶의 모습을 산골짜기를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중 화자인 '나'가 친구 민태준의 수기를 서두에 내놓고 매잡이 곽 서방을 찾아가 그의 삶의 자세를 그려낸 1 인칭 시점의 액자 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지난봄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만 민태준 형은, 그가 이승에 있었다는 흔적으로 단 한 가지의 유물만을 남겨 놓고 갔었다.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은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있는 비망록이었다. 우리는 그가 원래 시골집에 논섬지기나 땅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인 나는 민태준 형의 자살에 접하여 당황한다. 결핵을 앓고 있던 형은 지난해 봄 갑자기 단 한 가지 유물만 남기고 세상을 떴다. 아는 이는 다 알 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별로 값지지도 않은 몇 권의 대학 노트로 되어 있는 비망록이었다. 형의 생전에 나는 형으로부터 여행 비망록의 한 부분을 본 바가 있었다. 그것은 전라북도 창원에 있는 어느 지방에 살고 있는 매잡이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돈과 취재 요령을 적은 메모지를 주며 그곳을 취재해 보라고 권하였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다. 이 작품에는 이렇게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경위와 내용을 소개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두 번째 '매잡이'가 된다.(사실 이는 허구이며 작자- 이청준-는 첫 번째 '매잡이'라는 소설도 쓰지 않았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 창작과정을 작품 속에 수용하는 모더니즘적 기법이다.)
나는 민태준이 준 소설의 소재가 적인 메모지를 들고 민태준이 매잡이에 대하여 취재한 마을을 찾아 벙어리인 중식이라는 소년을 찾아간다. 중식은 쉰 살짜리 매잡이인 곽돌(郭石)과 같이 '번개쇠'라는 매로 꿩 사냥을 하는 소년이다. 나는 중식과 함께 매잡이를 나서지만 허탕치고 만다. 여기에 첫 번째 매잡이 소설에 대한 내부 이야기가 소개된다.
매잡이 곽 서방은 매잡이라는 옛 관습을 지키는 최후의 사람이다. 중식이가 한 사흘을 굶긴 매를 들고 산골짜기에 가면 곽 서방이 꿩을 몬다. 그러나 이제는 꿩도 없어 매잡이가 되지 않고, 하지도 않는다. 마지막 매잡이에서는 매는 꿩을 배불리 먹고 다른 데로 날아간다. 날아간 매는 시장에서 매값과 바꾸게 되어 있다. 겨우 서영감에게서 매값을 구한 곽돌은 매를 가지고 나온 친구에게 매값을 주었으나 받지 않고 가 버린다. 곽돌은 매값으로 술을 마시고 매를 가지고 와 중식이네 닭을 먹인 후 날려 보낸다. 곽돌은 그 뒤에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않고 죽는다.
한편 날아간 매는 다시 중식의 손에 돌아오고 나는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다. 얼마 지나 세 번째의 유언에 따라 봉투를 뜯어본 나는 깜짝 놀란다. 그것은 완벽한 '매잡이' 소설이었다. 이렇게 해서 '매잡이'란 세 편의 소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의문의 소설가인 민형은 완벽한 '매잡이' 소설을 작성해 놓았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민형의 취재 노트에서 왜 석 장이 찢겼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 또 소설을 쓰게 된 나의 관심은 아무래도 민형과 그의 소설에 대한 쪽이며, 곽서방과 소년을 포함한 매잡이의 풍속 자체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형에게서처럼 나에게 절실한 나의 풍속이 될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이 이미 그렇게 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창작 과정을 소설로 수용하는 모더니즘적 기법을 쓰고 있다. 이것은 작자가 창작에 이끌려가는 과정에 독자를 동반시킴으로써 독자의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것이다. 이런 소설 형태를 짜는 고도의 지적 조작은, 작가 특유한 문체의 불분명함과 함께, 진실한 인간의 삶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형체 없는 사회적 폭력에 대항하는 일종의 암유이다.
작가는 시류에 물들지 않고 우직하다고 할 만큼 자기의 것을 지키려는 장인 정신의 소유자인 매잡이 '곽돌'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진정한 가치를 알고 그것을 담아 보려는 '민태준'의 소설 쓰기를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참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청준은 여러 작품에서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에 있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줄>에서의 줄 광대나, <과녁>의 활 쏘는 노인, <불 머금은 항아리>의 장인 노인과 <서편제>의 유봉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소설 역시 사라져 가는 전통을 고집하다가 죽어 가는 매잡이 '곽돌'의 기이한 삶을 그리고 있는데, 액자 소설의 구성 방식을 통해서 그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가 액자 양식을 택한 것은 밖의 민태준과 안의 매잡이의 삶이 유사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서술자 '나'는 민형(민태준)과 곽 서방(곽돌)의 삶을 하나의 끈으로 엮어진 유기적 관계로 본다. 민형이 소설을 쓴다고 하면서 한 편도 못 쓰는 것처럼, 곽 서방 또한 사냥을 하지 못하는 매잡이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류를 따르는, 얄팍한 기술로 돈벌이에 집착하는 세속인이 아니라, 진정한 장인 세계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실현시켜 주지 못하고 마침내 그들을 죽게 만든다. 그렇다면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끝내 죽게 만드는 이 사회는 무엇인가?
♣
민형이 남긴 소설 「매잡이」는 그가 단지 재능의 부족으로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즉, 그로 하여금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시대 상황을 암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작가 정신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모습 ― 그의 미발표 유고 「매잡이」는 이를 결정적으로 암시해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문학 행위와 관련 지어 볼 때, '글쓰기의 어려움'을 제기하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숱한 자료를 수집해 놓고도 뜻대로 되지 않자 목숨을 끊은 민태준, 결핵을 조금 앓을 뿐 특별히 자살을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는 '나'에게 여러 권의 자료 노트만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소설 쓰기의 한 속성이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가 보기에 이 세계에는 진정한 가치의 가능성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현실이 타락했기 때문일까? 곽 서방이 숨을 거두기 전 '나'에게 말을 하다 중단했듯이, 이 의문점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인지도 모른다.
☞ 매잡이 : 매를 잡는 사내. 매잡이의 ‘잡이’는 '잡는 이'라는 뜻이기보다는 ‘손잡이’의 ‘잡이’로 해석함이 옳을 것 같다. 매잡이 사내는 언제나 매를 팔뚝에 올려 앉히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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