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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병주 단편소설 『매화나무의 인과(因果)』

by 언덕에서 2023. 10. 30.

 

이병주 단편소설 『매화나무의 인과(因果)』

 

언론인·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단편소설로 1966년 [신동아]에 발표되었다. 이후 작가는 이 작품을 <천망(天網)>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단편집에 게재했는데, 2010년 [한길사]에서 출간한 단편집 <소설·알렉산드리아>에는 『매화나무의 인과(因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어 있다. 

 소설가 이병주는 44세의 나이로 뒤늦게 문단에 나왔지만 이후 1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낸 한국문단의 가장 정력적인 ‘직업작가’로 손꼽혀 왔다. 이병주는 엄청난 분량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성을 묘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구사했다. 특히 그는 짙은 농도의 화려한 문체로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다양한 체험을 녹여냄으로써 일반대중은 물론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단편소설 <천망(天網)>으로도 알려진 이 작품의 스토리 패턴은 시골 어느 사랑방에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괴기담(怪奇譚)의 일종이다. 기괴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 소설에서도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괴기담이 오가는 시골 사랑방이 바로 한국의 전통적인 사교장이듯이, 이 소설에 드러난 그로테스크한 지옥의 이미지도 한국인 고유의 운명관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이 단편소설은 일인칭 액자소설로 불행한 사건이 인과적으로 계속해서 연결되는 스토리의,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특이한 구조를 지닌, 단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특징의 하나는 아무 데서나 풍부한 이야기, 파란만장한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 텔러로서의 능력에 있고 이 단편소설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나'는 출판사 편집장, 신문사 논설위원, 대학교수 등 세 친구와 함께 청진동 뒷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지옥이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그때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음산한 눈빛의 조췌한 사나이가 “지옥은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일행의 대화에 끼어든다. 그 사나이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일제시대 경남 지방의 어느 고을, 천석(千石) 거부(巨富) 성 참봉댁 마당에는 유독 탐스러운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봄마다 꽃이 필 때면 동네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날 참봉집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환의 근원이 유달리 요염하고 탐스럽게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 탓이라는 말을 들은 큰아들이 매화나무를 자르려 하자 흥분한 성 참봉은 몽둥이로 큰아들을 매질했고 그는 척추를 다쳐 병신이 되어 드러눕게 되고 말았다. 참봉댁 부인과 며느리가 점괘를 알아보니 매화나무가 화근이라는 답을 재차 얻게 되었다. 이를 전해 들은 미혼의 둘째 아들이 야밤에 매화나무를 잘라 없애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잠에서 깬 성 참봉이 상황을 파악하고 도낏자루로 때리려다 도끼날이 두개골을 명중해 둘째 아들이 즉사했다. 성 참봉과 가족들은 둘째 아들의 죽음을 우연한 사고사로 위장했다. 얼마 후 며느리는 아들을 살리고 집안을 구하기 위해서 매화나무를 없애달라는 유서를 써놓고 다락방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마냥 즐거운 사람은 참봉댁 머슴 돌쇠뿐이었다. 

 그간 집안의 갖은 허드레 일을 도맡아 하던 돌쇠는 그즈음 일손을 놓고 비단옷이나 양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대낮에도 술을 마시며 놀곤 했는데 더 이상한 건 주인이었다. 돌쇠를 나무라기는커녕 용돈을 줘가며 비위를 맞추느라 바빴다. 급기야 어느 날 돌쇠가 주인의 외동딸과 결혼하겠다고 나섰다. 화가 난 주인은 야단치다가 집안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는 돌쇠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을 승낙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과년한 딸 창숙은 충격을 받고 가출하여 행방을 감춘다. 자식들의 불구와 죽음, 며느리의 자살이 이유인지 아니면 머슴의 협박 때문인지, 딸의 가출 때문인지 이후 얼마가지 않아 성 참봉은 폐인이 되어서 죽는다.

 참봉이 죽자 문중사람이 모두 모여 장례식이 치러졌다. 참봉의 상여가 나가는 날, 돌쇠는 아침부터 술을 처먹고 “내가 이 집의 주인이며 사위다”하고 떠들어댔다. 흥분한 문중 젊은이가 그의 멱살을 잡고 나무라며 뺨을 때리자, 그는 “내 말 한마디면 너희 일문은 망한다.”라고 고함을 질렀다. 친척들이 그를 내몰려고 하자 그는 주인의 역린(逆鱗)이던 매화나무 밑을 파헤쳤다. 땅 속에는 썩은 송장의 뼈와 땅문서가 발견되었다. 인골의 당사자는 10년 전 행방불명된 '서익태'라는 마을 청년이었다.

 예전에 서익태의 아버지가 참봉에게 논을 담보로 빚을 졌는데, 부친이 죽으며 “논을 다시 찾아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서익태는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귀국길에 참봉을 찾아가 빚을 갚으며 논문서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성 참봉 영감은 순간, 돈과 논을 모두 갖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장롱에서 문서 대신 망치를 꺼내 청년의 뒤통수를 때렸다. 이후 영감은 마당 구석을 파서 서익태의 사체를 묻고 그 위에 매화나무를 옮겨 심는다. 천망(天網)이 작동했을까? 비밀이 되어야 할 그날의 현장을 머슴 돌쇠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어쭙잖게도 참봉이 집 마당에 선비를 상징하는 매화 한 그루를 심은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매화가 하늘의 눈동자가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돌쇠의 폭로로 이 사실이 밝혀지자 마을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되었다. 장례는 미뤄졌고 돌쇠는 즉일로 구속되었다. 아무도 장례를 거들 사람이 없어 성 참봉의 시체는 한 달 동안 썩은 냄새를 풍기며 방치되었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우환이 많은 집안의 큰아들이 마당의 매화나무를 자르려 하자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 성 참봉은 그를 야단치며 폭행한다. 이때 장남은 척추가 부러져 반신불수 신세가 된다. 이후 매화나무가 화근이라는 점괘를 들은 참봉부인과 며느리는 둘째 아들을 동원해 나무를 자르려는데 마침 참봉이 그 장면을 제지하다 본의 아니게 아들을 죽이고 만다. 이에 좌절한 며느리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성 참봉의 약점을 쥐고 있는 머슴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 함에 충격받은 외동딸 창숙은 가출하게 된다. 창숙이는 서울에서 취직하여 타이피스트가 된다.  몇 년이 지나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창숙은 고향집에 돌아온다. 성 참봉의 범행이 밝혀진 후 아무도 장례를 거들 사람이 없어 시체는 한달 동안 방치된다. 그래 그 냄새가 마을을 휩쓰는 바람에 인부를 사서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 공동묘지 한구석에 평토장을 했다. 서익태 가족들의 시체에 대한 복수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창숙에겐 이어진 커다란 충격이었다. 창숙은 처음엔 기교한 웃음을 간혹 웃고 하는 정도이더니 성 참봉의 시체가 썩어감에 따라 그녀의 정신은 차츰 허물어져 갔다. 이후 장사(葬事)를 치른 후엔 완전한 정신착란증 환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창숙에게는 회사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서울 청년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낙향한 약혼녀에게서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자 청년은 생소한 길임에도 수소문하여 성 참봉 마을을 찾는다. 그는 마을의 주막집주인에게서 매화나무와 성 참봉 집안의 기괴한 사건 내막을 듣게 된다. 그는 그날 밤중에 성 참봉집을 찾는다. 대문이 잠기어 담을 넘어 들어간 그 집에는 백발의 노파와 얼마 전 헤어졌던 모습 그대로의 창숙이 조상(彫像)처럼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창숙의 눈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손은 죽은 사람처럼 차가웠다. 흔들어봐도 목상(木像)과 같은 반응 밖엔 없었다. 청년은 그 방에, 발광한 창숙이 옆에 청춘을 묻어놓고 혼이 나간 텅 빈 육체만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온다. 여기서 소설을 끝난다.

 여기서, 줄거리의 서두에서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일행의 옆자리에 앉은, 혼자 술을 마시던 음산한 눈빛의 조췌한, 사나이가 누군지 짐작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전략) 이 밤이 있은 뒤 지옥이란 관념이 나의 뇌리를 스치든지 지옥이란 말을 듣든지 하면, 황량한 겨울 풍경을 바탕으로 하고 요염하게 꽃을 만발한 한 그루 매화나무가 눈앞에 떠오르곤 (하는데), 광녀 머리칼처럼 흐트러진 수근(樹根)의 가닥가닥이 썩어가는 시체를 휘어감고, 그 부식 과정에서 분비되는 액체를 탐람하게 빨아올리는 생명의 비적(秘蹟)이 일폭의 투시화가 되어 그 매화나무의 환상에 겹쳐지는 것이다. - 본문의 마지막 부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언급하며 ☞조남현은 작가 특유의 관념적 서술, 낭만적 발상, 박식 과시 등은 미문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소통의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지적했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작품 서두에  ‘지옥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라며 충분히 주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천망(天網)'은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노자에 나오는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부실(疎而不失)에서 따왔다. '하늘의 그물은 헐렁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라는 뜻이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매화가 결국 천망, 하늘의 눈동자이자 그물이라는 소설 구도가 재미있다.

 ‘지옥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하고 작가는 작품의 첫 구절을 시작하고 있지만, 성 참봉 일가의 처절한 몰락, 그 소름 끼치는 형벌은 현존하는 지옥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원래 지옥은 천당에 대응한다. 지옥이 있으면 반대쪽엔 천당이 있어야 하고, 또 그 지옥과 천당을 놓고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자 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을 갖지 못한 우리에겐 지옥도 천당도 없다는 논리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옥은 있다. 적어도 이병주 작가는 그렇게 말한다. 인과응보를 전제로 한 우리의 운명관이 이 모순을 해결해 주고 있다. 물론 오늘날엔 그러한 인과응보설 자체를 케케묵은 교훈이라고 비웃을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있는 지옥이 아니라 지옥은 꼭 있어야겠다는 작자의 사상을 읽으면 될 듯하다.

 

 


☞  천망(天網) : 악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하늘에 쳐 놓았다는 그물. 그물코가 크고 성기나 절대로 놓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천라.

☞  평토장(平土葬) : 봉분을 만들지 않고 평평하게 매장함. 또는 그런 장사.≒평장


天綱恢恢 疏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天 하늘 천 / 綱 그물 망 / 恢 넓을 회 / 疏 트일 소 / 而 말이을 이 / 不 아니 불 / 失 잃을 실
 하늘의 법망은 넓고 커서 엉성한 듯하지만 놓치는 일이 없다. 「노자(老子)」에 나온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아니하는데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아니하는데도 만물이 잘 응하고, 부르지 아니하는데도 만물이 저절로 온다. 하늘의 도는 무심하게 천천히 하는데도 치밀하게 일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한없이 크고 또 너르다. 성글성글한데도 놓치는 것이 없다(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綱恢恢, 疏而不失)."
 악한 사람들이 어쩌다 한때는 세속적인 출세를 할 수 있지만 종국에 가서는 언젠가는 하늘이 그물을 끌어 올리는 날은 도망치지 못하고 잡히게 된다는 말이다.  


조남현(曺南鉉.1948∼  ) : 문학평론가. 인천 출생.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2년 [소설과 사상] 주간, 2005년 한국현대문학회 회장, 육사 교관, 건국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