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훈 장편소설 『순정해협(純情海峽)』
함대훈(咸大勳, 1906-1949)의 장편소설로 1937년 [조광]에 연재했다. 함대훈은 1931년부터 러시아의 체호프, 고골리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고 러시아 문단 상황을 소개한 작가다. 특히 1933년에는 해외문학파에 대한 프롤레타리아문학 측의 비난에 답변하기 위한 <해외문학과 조선문학>이라는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외국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부족했기 때문에 만족할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여기서 그는 프로문학측의 비난이 해외문학파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데서 비롯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비난이 근거 없음을 논박했다. 이후 함대훈은 자신의 전공인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체홉, 고골리 등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고, 러시아 문단의 상황을 논하는 <체홉의 생애와 예술>, <고리키를 논함>, <톨스토이의 생애와 예술> 등의 시평을 발표하였다.
장편소설 「순정해협」은 [조광]에 연재가 시작되면서 작자의 말에 ‘정이란 가장 높은 인생의 보물’이며 ‘틔없는 순정일진댄 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최고 최귀의 것’이라는 언급과 함께 ‘참된 순정에서 다란한 인생항로를 걸어가는 남녀들의 모양을 그려 보려’했다고 썼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주제로 순정 제일주의를 대단원까지 강조해 나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등장인물은 법대생 영철, 소학교 교사 소희, 영철의 애기를 밴 혜옥, 소희를 미련할 만큼 끈기 있게 사랑하는 준걸 등이다. 여기서 여자관계가 제일 많은 인물은 영철이다. 그에겐 이미 임신까지 시켜 놓은 혜옥이 있다. 그만큼 정을 나눈 여자가 있건만, 방학으로 귀향한 그는 자기 어머니가 친자식처럼 아끼는 소학교 교사 소희에게 반해 버린다. 그래서 소희에게 청혼을 하지만, 소희는 고아인 자신의 신분을 이유로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한편, 소희와 비슷한 처지의 준걸도 소희를 사랑하며, 기회를 기다리다가 소희와 함께 교육 강습을 받으러 상경해서 절호의 찬스를 얻는다. 그러나 준걸은 병이 난 그녀를 하루 간호해 준 것뿐이다. 곧 뒤쫓아 온 영철이 그녀를 의전병원에 입원시키고 면회 사절 딱지를 붙여놓고 독점 간호하는 바람에 준걸은 참패한다.
마침내 영철의 간호에 감동한 소희는 그에게 정조를 바치고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가 이동 발령으로 영철과 잠시 헤어진 사이에 딴 인물이 들어서서 양자간의 편지를 가로채어 오해를 하게 한다. 영철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절망한 소희는 사생아를 영철 엄마에게 맡기고 백화점 점원 노릇을 하다가 카츄사처럼 어떤 사장을 살인했다는 오해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다. 현대판 네프류도프 같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영철이 소희를 변호, 구출하게 된다.
마침내 소희가 출감하자, 밖에는 소희가 낳은 영철의 아들이 생부(生父)와 함께 서 있고, 준걸도 마중 나와 있었다. 영철이 아내와 이혼하고 소희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소희는 자기가 윤락한 그날까지 끈덕지게 순정을 바쳐온 준걸에 감동하여 그와 결혼해 버린다.
이 작품은 1937년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회 작자 부기에는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전발성 영화로 경성촬영소에서 촬영이 개시되었으며 그해 구월에 경성 시내에서 봉절(=개봉)된다는 예고가 남겨져 있다. 영화의 감독은 신경균이 맡았는데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추가된 ‘자서’에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자서 말미에 ‘정축신춘(丁丑新春)’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등 1937년경 초판이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위의 줄거리는 1937년 당시 판본이 확인되지 않아 [한성도서주식회사] 1950년 본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황해도 풍천 출생의 함대훈은 중앙고보를 마치고 2년간 금융곡물무역에 종사한 후 니혼대학 경제과에 적을 두었다가 도쿄 외국어학교 노어과에 입학했다. 1926년 재학 중 김진섭ㆍ이하윤ㆍ정인섭ㆍ함병업ㆍ장기제ㆍ이헌구 등과 [외국문학연구회]를 조직, 동인지 [해외문학]에 주로 러시아문학 작품을 소개했다. 1931년 도쿄외국어학교를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외국문학연구회]가 중심이 된 [극예술연구회]의 조직에 참가했다. 그는 정경(政經) 일반에 걸친 번역 및 소개로 프로 소설ㆍ희곡 및 평론에 주력했다. 특히 체호프의 <벚꽃동산>, 고골리의 <검찰관> 등 희곡을 번역, 상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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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을 전후해서 우리 문단에 한때 행동주의가 소개되고 휴머니즘이 논의되자, 함대훈은 이헌구․홍효민․김문집 등과 함께 이를 소개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지식계급의 불안과 조선문학의 장래>라는 논문을 발표, [한국 지식인연맹]의 결성을 촉구, 주장했다. 그러나 1937년 [조광]에 연재한 장편 「순정해협(純情海峽)」은 의식적으로 통속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함대훈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정인섭, 유치진과 함께 친일 연극 단체인 [국민연극연구소]를 세우고 소장을 맡았고, [조선문인협회]에서도 활동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는데 1940년 [매일신보]에 〈우리들과 지원병〉을 기고하는 등 총 11편의 친일 저작물이 확인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통속성이 짙은 편인데, 그것을 살려서 성공한 작품은 1938년 [조광]에 게재한 단편 <호반>을 들 수 있다. 함대훈은 해방 후 [한성일보] 편집국장, 군정청 공안국장 및 공보국2장 등을 역임하고, 1947년 국립경찰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1949년 순직했다.
<영화 ‘순정해협(純情海峽)’>
1937년에 [청구영화사]가 제작하여 [우미관(優美館)]에서 개봉한 흑백 무성영화(無聲映畵). [조광(朝光)]에 연재되었던 함대훈(咸大勳)의 장편소설 <순정해협(純情海峽)>을 영화화한 신경균 감독의 데뷔작으로 각색ㆍ제작ㆍ연출을 맡았고 양세웅이 촬영과 편집을 맡았다. 김일해ㆍ김영옥ㆍ손일포 등이 출연한 통속적 애정물이다. 섬세한 심리묘사를 세련되게 연출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어느 작은 시골 마을 남선생과 여선생은 사랑하는 사이로 가난하지만 행복하였다. 그런데 건달이 나타나 그녀를 유혹하여 그녀와 함께 서울로 간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긴 그는 교사직을 그만둔다. 그는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한다. 한편 그를 버리고 떠났던 여자는 건달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재산을 탕진하자 고생을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옛 남자는 그녀를 다시 찾고 싶어하지만 결국 건달의 사업을 도와준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사람에게 여자의 행복을 빌면서 악을 선으로 갚는다는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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