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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철쭉’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2. 14.

 

 

‘철쭉’의 어원

 

 

겨우내 웅그리고 있던 산야(山野)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면, 이윽고 진달래가 연지 곤지 찍은 신부의 얼굴마냥 볼그스름한 경색(景色)을 드러내다가 마침내는 온 산을 불태워간다. 그 다음에야 산은 푸른 기운을 머금어가게 된다. 그리고 철쭉은 진달래가 이울 무렵부터 피기 시작한다.

 진달래를 ‘참꽃’이라 하고, 철쭉을 ‘개꽃’이라고도 한다. ‘개’란 반드시 ‘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의 머리가지(接頭語)로서, 개꿈ㆍ개소리ㆍ개떡 같은 ‘개’이기도 하니, 참꽃에 대한 반대 개념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참꽃-개꽃 하는 말에서는 그것을 식용할 수 있고 없고에서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의 생김새로 보라서도 철쭉 쪽이 훨씬 더 참스러운 것일 때, 거기에다 굳이 ‘개’를 관(冠)한 것은, 피어나는 서열을 따져서 그랬던 것 같지도 않고, 중국에서 ‘양척촉(洋躑躅)’이라 했던 것은 양이 따먹었을 때 중독이 되었더라는 그런 내력과 함께, 역시 ‘먹는다’는 표준에서의 그것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참꽃은 따 먹어도 개꽃은 따 먹지 않는 것으로 시골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철쭉은 20여 가지나 되는데, 아름다우면서도 꽃과 꽃대에 끈적끈적한 점액이 있는 점부터 진달래와 다르다. 그리고 진달래의 한자 이름이 ‘두견화’인 것과 같이 애절한 내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척촉(躑躅)’이라는, 결코 그 화판(花瓣)의 미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졌음이 수상쩍다.

 ‘척촉(躑躅)’은 걸음걸이가 머뭇거림이나 제자리걸음을 이르는 뜻을 지녔는데, 그 위에 그 ‘척촉’이라는 발음이 우리의 ‘철쭉’과 비슷하고 보면, 한자의 ‘躑躅’과 우리의 ‘철쭉’ 사이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데서 그러하다.

 순자(荀子)의 <예론(禮論)> 가운데 ‘躑躅焉踟蹰焉’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때의 ‘躑躅’은 ‘以足擊地也(발로 땅을 친다)’는 뜻을 지녔으니, 양(羊)이 ‘躑躅’을 먹으면 훌쩍훌쩍 뛰는 데서 그 이름이 나온 것이나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본초강목>은 1590년에 명(明) 나라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책인데, 거기에도 ‘躑躅’에 대한 표기가 나오고, 거기서는 진달래와 철쭉을 함께 휩싸 잡아서 이르고 있다.

 그러나 ‘척촉(躑躅)’이라는 표기는 벌써 <삼국유사> 권 2에 수록된 <헌화가>를 설명하는 글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렇다면 '척촉'이라는 데서 차츰 ‘철쭉’이라는 쪽으로 발음되기에 이르러버렸다는 생각이 옳다는 것인가. 중국의 기록이 그렇고 우리의 기록이 그렇다면, ‘겸연(慊然)쩍다’가 ‘계면쩍다’로 발음되고 있는 것과 같이 한자음이 와전되면서 이루어진 ‘철쭉’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屛臨海高千丈 上有躑躅花盛開……]

라 하여 ‘척촉(躑躅)’이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산리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을 따라 그 임지로 가던 절세의 가인이었던 수로부인에게 한 노인이 지어 바쳤다는 <헌화가>를 설명해 주는 글이다.

 수로부인은 꽃을 사랑했다. 그들 일행이 바닷가에서 쉬게 되었을 때 몇 길이나 높은 절벽 위에 철쭉꽃이 피어있는 것을 본 수로부인이 가까이 있는 시종들에게 그 꽃을 꺾어 올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엄두를 못 낼 때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바쳤다는 설명이 곁들여 있는 <헌화가(獻花歌)>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慙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이를 현대어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검붉은 바윗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봄철의 철쭉꽃과 한 미인과, 그리고 누구인지도 모를 노인의 그 마음씀이 어울려 강릉 가는 길 어딘가에서 피어났을 아름다운 정경이 머릿속에 그림 그려진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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