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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꽃’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2. 7.

 

‘꽃’의 어원

 

 

집의 공간이라는 것이 온통 시멘트로 범벅이 된 데서 사는 신세에, 단 한 평이라도 정원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싶은 마음은 항상 간절하다. 남의 집에 가서 뜨락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또 그것이 꽃을 피우는 나무일 때, 항상 부러운 마음이 인다. 봄날이면, 라일락의 향내가 집안에 번져, 생래의 늦잠꾸러기를 깨워 물뿌리개를 들게 해 줄 것이며, 아니더라도 늦가을의 국화는 삭막한 마음에 자꾸만 꿈을 부어줄 것 같은 생각에서다.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꽃을 보면서 혼탁해진 마음을 씻어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인간사회의 남정네는 , 여성을 꽃에 비유하게도 되어 버렸다.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어쩌고 하는 유행가가 있었다. 비록 노방초(路傍草)에 엉긴 꽃이라도 역시 꽃이었다. 여성을 꽃에다 비유한 것은 ‘화용월태(花容月態)’라는 말이 있는 동양 쪽뿐만 아니라,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달기(妲己)만이 요화(妖花)가 아니요,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요화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꽃으로 비유된 데는 두 가지 뜻을 곁들였던 것이리라. 그 하나는 꽃과 같이 아름답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꽃이 마침내 씨를 뱉어내어서 그 종족을 유지함이 여성과 같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말에 그러한 예가 있는지 없는지 미처 살피지 못했지만, 우리말은 이 두 가지 뜻을 아우른 출발점을 가졌다. 즉 꽃과 여자가 한 핏줄 말이기 때문이다. 문헌상으로는 상고(詳考)하지 못한 채이지만, 우리는‘ 곳(곷)’이라는 우리 옛말의 한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곳에서 새끼 친 말에 ‘곶’이 있었고 ‘갖(갓)’이 있었다.

 “고즌 무삼 일로 퓌어서 쉬이 지고…” (윤선도의 <오우가>)

하는 ‘곶’은 곧 꽃이었다. ‘비록 가지 하나’ 하는 ‘가지’는 씨(種)를 뜻하는 말이었다. 지금도 쓰이는 ‘가지가지’(갖가지)나 ‘여러 가지’가, 이 ‘갖’에 근원을 두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은 나뭇가지의 가지까지도 이 ‘갖’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생각이 반드시 억설로 될 수는 없다. 가지 역시 땅 위에서 씨 뿌리듯 번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갖’은 ‘갓’으로도 통해서 여성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중세어뿐만 아니라 현대어에서도 ‘ㅅ-ㅈ’이 뒤엉켜 쓰이는 예를 보이고 있어서 ‘갖’은 씨앗으로, ‘갓’은 여성 쪽을 이르는 말로, 모음변이하였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말의 꽃과 여성과 씨앗이 사실은 한 줄기에서 태어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꽃은 씨앗을 위한 것이요, 또 동시에 그것은 여성이었다. 우리 조상들의 언어감각이 참으로 짜임새 있는 것이었다는 한 단면을 드러내어 주는 본보기가 된다 할 것이다. 꽃은 씨앗(여성)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일까?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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