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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패랭이’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12. 1.

 

‘패랭이’의 어원

 

 

  石竹花 一名瞿麥 我國此花只是紅色 唐種則有五色 (석죽꽃은 달리는 구맥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이 꽃은 붉기만 하나, 중국 것에는 오색이 있다.)

하는 정다산(丁茶山)의 설에서 미루어보면, 중국 패랭이는 다섯 가지 색이었음을 알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난장이패랭이꽃ㆍ각시패랭이꽃ㆍ술패랭이꽃 같은 10여 종이 6∼8월에 홍백의 색조를 띤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전국의 산야에서 자라면서 피고 져 온 것이다.

 요즈음 꽃집에서 재배하는 것은 우리나라ㆍ중국 종자로서의 패랭이가 아니고, 그 서양종인 ‘카네이션’인데, 그것이 비록 겹잎이지만, 홀잎인 우리쪽 것이 도리어 유현(幽玄)한 맛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꽃말은 ‘순결한 사랑’이다.

 고려조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이 패랭이꽃을 두고 시를 읊었으니,

 [節肖此君高 花開兒女艶 飄零不耐秋 爲竹能無濫]

 (순한 마디에 높은 줄기ㅡ 꽃은 계집애 마냥 여리고 곱구나. 가을을 못 견뎌 흩날려 떨어지는 것은 대나무를 위해 참람할 수 없었다는 것인가?)

이었다. 곱기는 해도 필경은 가을에 떨어져 버림이, 행여 그것이 그대로 겨울에 살아있을 양이면 대(竹)에 대해 외람된 것으로 될까 봐 그런 것이 아니냐면서, 가냘픈 패랭이에 탁(託)하여 다시 한 번 대의 고고한 절개를 노래해 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그것을 굳이 쓸 필요도 없어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난날 패랭이라는 이름의 머리에 쓰는 갓 비슷한 것이 있었다. 댓개비로 엮은 것인데, 상인(喪人)도 썼지만, 평상시라면 역졸이나 보부상 같은 천민계급이 썼다. 일반적으로는 댓개비의 본디 빛대로 썼던 것이지만, 역졸은 거기다가 까만 칠을 한 것을 썼고, 보부상은 갓끈을 꿰어 단 꼭대기에 면화송이를 얹어서 썼다.

 나중에 까만 빛깔의 갓이 나오게 되면서 양반이 쓰게 되고, 이 패랭이 따위는 상민이 쓰게 되면서 머리에 쓰는 혹백(黑白)이 곧 반상(班常)의 구분을 지어주기도 했던 것인데, 초립(草笠)보다 더 오래된 천민계급의 쓰개였다고 한다.

 중국 이름이 ‘석죽(石竹)’ㆍ‘구맥(瞿麥’ㆍ‘천국(天菊)’인 패랭이꽃에 대하여 우리 사람들이 ‘패랭이’라 이름 붙인 까닭인즉 이 꽃이 패랭이를 거꾸로 한 것과 모습이 같은 데 연유한다는 것이거니와 중국으로부터는 고려 때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패랭이꽃’이란 이름은 그 이후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패랭이갓’의 한자는 ‘평량자(平凉子)’ 또는 폐양자(蔽陽子)’이다. 그리고 이 한자 이름은 뜻으로 보아서도 그럴싸하거니와 동시에 음으로 읽어도 또 그럴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패랭이’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서 한자로 쓰려는 필요성이 그와 같은 표기로 되었던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아무튼 패랭이꽃과 패랭이갓은 생긴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름까지가 같아져 버린 셈이니, 여름날의 들녘에 한들거리는 패랭이꽃은 패랭이갓의 신세와 같이 서민의 무심한 듯한 애완(愛玩) 속에서 그 종족을 유지하여 왔다는 말인지.

 어쨌거나 패랭이는 서민과 함께 있어 왔기에 에피소드도 많다.

 앞서 보부상들이 면화송이를 달고 다녔다는 말을 했지만, 거기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각지와 통신을 할 때 30리마다 보부상 한 사람씩을 배치, 하루에 몇 차례씩 교대로 통신을 전달하는데, 너무 급히 달려서 중도에 사망자가 많이 생겨났었다. 그래서 입에다 면화를 물리고, 또 적탄에 맞은 부상병의 구호를 위해서도 이것이 필요했던 데서 그들의 패랭이에다 어명으로 면화를 달게 했던 것이 유래가 되고 있다 한다.

 그 임진왜란 때 일본 병졸들이 양반은 닥치는 대로 죽이는데, 그 목표는 검은 갓으로 삼는다는 말이 있어서 모두가 패랭이만을 쓰고 다녔었다. 이윽고 명 나라의 원군이 당도하였는데, 상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패랭이만 쓴 것을 본 명나라 장수가 한 선비에게 어쩐 일이냐고 물었을 때, 둘러대어 대답하기를,

 “군부(君父: 임금)가 파천중(播遷中)이므로 상관(常冠)을 벗고 이로써 대(代)한다.”

고 했더니, 명장(明將)이 갸륵하다고 칭찬하였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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