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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카메라’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4. 3. 23.

 

‘카메라’의 어원

 

 

“아빠, 우리도 카메라 하나 사요. 남들은 놀러 갈 때 카메라 가져가던데, 우린 뭐예요?”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이렇게 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학년, 그리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라는 위인은 그 카메라를 못 사고 있다. 반드시 돈 때문만이 아니라, 어딘가 무성의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리라.

 사치품이던 시절은 갔다. 특별히 예술작품 안 만들 바에야, 그 몇십만 원씩 나가는 고급의 것을 살 필요도 없다.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셔터만 누르면 사진은 찍히게 되어 있는 카메라들이고, 그렇게 많은 돈 아니더라도 살 수는 있다. 실용화한 것이다.

 여행길에 나섰을 때 혹은 가족 동반하여 야외에 나갔을 때 마음에 드는 정경들을 찍어두는 것은, 추억을 시각으로 남기는 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 말에 kamara란 말이 있었고, 이 말은 ‘아치형 지붕이 있는 것’의 뜻이었는데, 이것이 라틴어의 camera(아치형 지붕)로 되면서 중세 라틴어에서는 ‘방’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기에 광학상(光學上)으로 암상(暗箱)을 라틴어로 camera obscura(어두운 상자)라고 했다. 이 '어두운 상자'야말로, 그 후의 렌즈의 발전과 함께 사진기에 있어서는 생명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라틴어 camera는 스페인어에서는 camara로 표기된 채 방을 일렀던 것인데, 중세의 여관들은 한 방에다 몇 명씩을 함께 재웠던 데서 같은 방을 쓰게 된 동지를 'camarada(카마라다)'라 하게 되고, 거기서 프랑스어 camarade(카마라드)를 거쳐 영어의 comrade(콤리드)로 된 것이니, 한 방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 동지 의식을 싹 띄우는 것으로 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 camera는 다시 옛 프랑스어 chambre(샹브르)를 통해서 chamber(체임버: 방)로 되었으니, 사형수가 들어가게 되어 있는 gas chamber도 ‘가스실’이었다.

 카메라는 결국 ‘어둠상자’에서부터 시작되어 그와 사촌뻘 되는 말로 다소 엉뚱하게 동지라는 뜻을 새끼 치기도 한 것이지만, 지금도 법률관계 용어에서 라틴어로 in camera한 것은 ‘(판사의) 사실(私室)에서’라는 뜻에서 출발하여 ‘비공개로’ㆍ‘비밀로’ 하는 뜻을 지니게 되어 재미있는 말의 변천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는 영어를 중심으로 한 일부층에 의해서 카메라 아닌 ‘캐머러’로 표기하는 일도 있어서 어느 자그만 팸플릿을 보자니까 ‘카메라’와 ‘캐머러’가 공존하여 잇던 것이다. 영어의 연원(淵源)으로 되는 라틴어가 ‘카메라’로 되는 외에도 굳이 따지자면, 프랑스어로도 카메라(camera), 독일어로도 카머라(kamera)가 된다는 데서보다도, 그 카메라를 지니는 사람을 이를 때의 카메라맨(cameraman)을 '캐머러먼' 하게 되면, 위화감이 있다는 데서도, 역시 카메라 쪽이 마음에 끌린다. 그러나 일부 카메라상(商)들이 간판에 적어놓기도 한 '카메라'는 그것이 일본식 발음의 표기 냄새가 나는 것이다.

 카메라맨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만, 여자 사진반원을 일러서도 역시 ‘카메라맨’이라고 해야 한다면, 맨 아래 ‘맨’의 처지가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그래서 특별히 ‘여자카메라맨’이라는, 이상야릇한 말이 쓰이기도 하는 터인데, 남자들만의 일의 영역을 침범해 오는 여성의 직업이 어디 비단 '카메라맨‘의 경우뿐이던가.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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