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와 유사한 단어들
- 매음녀, 창녀, 은근자, 더벅머리, 여사당, 색주가, 기생, 공창, 사창, 양공주, 삼패, 양갈보
갈보라는 말은 매음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 나가는 여자. 특수한 매음녀, 즉 창녀에게만 이 말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매음하는 행위를 갈보질한다, 또는 갈보 노릇한다고 한다. 매음녀를 갈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말부터이다. 갈보는 교태와 색정으로써 남성을 유혹하여 금품을 흡취하는데, 그것이 마치 ‘갈(蝎: 전갈)’이라는 벌레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것과 같아서 갈보라고 부르는 것이라 한다. ‘보’라는 말은 항시 천시되는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어이다. 털보ㆍ곰보ㆍ째보ㆍ울보ㆍ떼보ㆍ쫌보 등이 그 예이다. 갈보는 ‘갈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고려 말기에 송도에는 ‘덕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덕이는 오늘날 갈보와 같은 매음녀였는데 진드기의 준말로서, 매음녀는 진드기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피를 빨아먹는 벌레에 비유하여 매음녀의 이름을 붙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음녀에 대한 인식이 같음을 나타내 준다.
전통사회에서 미색(美色)과 교태로써 매음을 업으로 삼는 것에는 갈보ㆍ은근자ㆍ더벅머리ㆍ여사당ㆍ색주가 등이 있는데, 넓은 뜻으로는 기생도 이에 속한다. 기생은 원래 궁중에서 일하는 여성 기술자, 즉 약방기생(藥房妓生)ㆍ상방기생(尙房妓生)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궁중에서 물러나서는 민간인의 연회 장소에서 취흥을 돋우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또한 궁중에서도 연악(宴樂)의 흥을 돋우는 여자를 뽑아 가무음률을 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연예 위주의 기술을 가진 여자들을 기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각 군의 관아에서도 기생을 두어 관기(官妓)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일반인의 유흥수요에 응하기도 했지만 방백 수령이 요구할 때는 무보수로 봉사했다. 궁중의 연악에는 각 지방의 명기들을 뽑아서 보내기도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기생이 많기로 유명한 곳은 평양ㆍ진주ㆍ해주ㆍ함흥ㆍ강계였다. 평양은 색향이라고 했고, 진주에는 파리 수보다 기생이 하나 더 있다고 했고, 강계는 미인 기생으로 이름났었다.
기생은 나이가 30세쯤 되면 기생업에서 물러나 퇴기(退妓)가 되는데, 이들은 10세쯤 되는 여자 아이를 구해 동기(童妓)를 만든다. 동기는 선배들로부터 춤과 노래, 악기 다루는 법, 서화, 한시와 시조의 작법, 말과 행동에 대한 예법 등을 익힌다. 따라서 기생 중에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후세에까지 높이 평가되는 작품을 남긴 이도 있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예술을 발전시키고 계승한 이들이기도 했다. 그러한 탓으로 서울에서는 기생을 갈보 중의 일패(一牌)라고 불렀다. 그러나 남자의 금품을 뜯어내기 위해 환심을 사는 데 급급하고 매음을 일삼는 기생도 많았다. 광복 이후에는 아무런 예술적 소양도 없이 미모만을 가지고 기생임을 자처하는 여자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매음 위주의 창녀였다.
'은근자’라는 갈보는 그 음에 맞추어서 한자로 은군자(隱君子)로 표기한다. 이는 도둑을 양상군자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풍자적 경고를 뜻하는 호칭일 뿐이다. 은근자는 외모나 옷차림이 양갓집 부녀자처럼 정숙해 보이나, 은밀히 매음을 일삼았다. 이들은 가무나 악기주법 등의 기예는 없고, 다만 색정만을 밑천으로 삼았다. 이들 중에는 첩살이하는 여자와 허영심 많은 유부녀가 많았으며, 과부도 있었다. 은근자의 매음은 뚜쟁이라는 중개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뚜쟁이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는데, 이들은 손님과 은근자 양측에서 상당한 소개료를 뜯어낸다.
남자 은근자들은 유한부녀의 성적 유희 상대자인데, '제비족'이라고 한다. 제비족 노릇을 하는 남자는 20대의 젊은이들로 여자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이다. 이들을 남자 갈보라고는 하지 않고, 일부에서 남창이라고 부르고 있다. 은근자는 서울에서는 이패(二牌)라고 불렸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호칭은 없어졌다.
‘더벅머리’라는 창녀는 서울에서 삼패(三牌)라고도 불렸는데, 이들은 예술적 기능을 지니기는 했지만 기생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저급하였다. 기생처럼 행세하였으나 지조가 없고 매음을 거리낌없이 하였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더벅머리가 많았으나, 그 뒤에는 없어져서 오늘날에는 볼 수 없다.
'여사당'은 사당패라는 유랑 연예집단에서 춤과 노래 등의 연희를 하던 여자들을 말한다. 사당패의 공연중에 관객이 돈을 입에 물고 “돈 봐라, 돈 봐라.” 하고 외치면, 여사당은 쫓아가서 관객이 입에 문 돈을 입으로 받아서 가져왔다. 공연이 없는 때는 아무 때나 매음에 응했다. 오늘날은 사당패가 없어져서 여사당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색주가’란 술집에서 손님들에게 술시중을 드는 여자이다. 이들은 손님의 청에 따라 쉽게 응하여 매음을 했는데, 민족항일기에는 ‘나가이’라고도 불렸다. 나가이란 일본말인데, 술집에서 술심부름과 잡심부름을 하고 매음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오늘날에도 술집에서 술시중을 하면서 매음을 하는 여자가 많이 있는데, 색주가와 나가이라는 호칭은 없어졌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한 이후에 유곽이라는 제도를 퍼뜨렸다. 유곽이란 법적으로 공인된 매음 영업집단이다. 유곽은 일반 인가와는 따로 떨어진 일정 지역 안에서 매음업자들이 집단영업을 하였다. 일제는 유곽 이외의 매음을 금하고 위반자는 처벌하였다.
유곽 안의 매음녀를 공창이라 하고, 유곽 이외에서 불법적으로 매음하는 여자를 사창이라고 하였다. 일제는 기생ㆍ색주가ㆍ공창에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도록 의무화하였다. 이는 화류병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광복이 되어 미군정이 실시되자 유곽을 폐쇄하고 공창을 해방시켰다. 공창은 인신매매의 악법이므로 인권존중에 위배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그런데 공창은 매음에서 벗어나 양녀(良女)가 되지 못하고 다시 사창화하였다. 미군의 주둔은 사창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 주었다. 즉, 미군을 상대로 한 창녀가 크게 늘어났는데, 이들을 양갈보라고 하고, 또 역설적으로 '양공주'라고도 불렀다. 특히 기지촌에는 더욱 많은 '양갈보'들이 득실거렸다.
이들은 상대하는 미군과 외국인의 환심을 끌기 위하여 단발을 하고, 파마를 하고, 아이섀도를 그리고, 마스카라를 붙이고, 입술에는 루즈, 손톱과 발톱에는 매니큐어, 귀에는 귀걸이, 목에는 목걸이를 하고, 양장에 하이힐을 신고, 손에는 핸드백을 들었다. 이와 같은 치장과 옷차림은 괴상하게 비쳐서 세인들의 빈축을 사고 조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양갈보의 치장과 옷차림이 일반 부녀자들에게까지 퍼져들어가, 도시의 부녀자뿐만 아니라 벽촌의 부녀자까지도 파마를 하고 루즈를 바르는 등 양갈보를 본떴다. 그리하여 미장원과 양장점이 번창하게 되었다. 오늘날에 와서 갈보의 양상과 생태는 많이 달라졌다. 예술적 소양을 지니고 있던 기생은 없어지고, 더벅머리·여사당·색주가도 없어졌다. 은근자는 그대로 있고, 사창도 남아 있다. 지난날에는 이국인을 상대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며, 강제로 침범당하면 자살까지 하던 은근자와 갈보가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이국인을 더 상대하려 들고 있다.
자료 출처 :
- 한국민족문화대대백과사전
- 이능화 : <조선해어화사> (1926)
- 임석재 : <임석재전집>
- 홍성철 : <매춘의 역사>
☞ 갈보의 어원 : https://yoont3.tistory.com/1130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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