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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케케묵은 것’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4. 3. 7.

 

‘케케묵은 것’의 어원

 

 

미니스커트가 처음 나돌기 시작했을 때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에게 당사자들이 뱉는 말이 있었다.

 “왜 그리 케케묵은 생각들을 하고 계시는 거죠?”

 그래서 한때 거리는 미니스커트의 홍수. 시골엘 가도, 썩 어울린다고는 할 수 없는 채 유행이었다. 그래도 더러는 ‘케케묵은 사람’이 있어서 긴치마를 입기도 했지만.

 그런데 정작 케케묵은 것은, 케케묵었다는 뜻을 나타내는 ‘케케묵었다’는 ‘케케’라는 글자 쪽이 한 술 더 뜬 편이라고나 할 것인지, 도대체 어째서 그 괴상하기 그지없는 ‘케’ 자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냐 말이다. 이 '케'자가 쓰일 곳은 꼭 한 군데, 케케묵은 '케케묵었다'는 대목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글자 자체가 케케묵은 뜻을 뜻글자(表意文字)와 같이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케케묵다’는 ‘켜켜이 묵다’에서부터 비롯된 말이라고 생각된다. ‘켜’라는 말은 포개진 물건의 층을 이룰 때 쓰는 이름씨이다. 좀 낯설긴 하지만, 우리말이다. 그것이 어찌씨(부사)로 쓰이면서 ‘켜켜이’라고 하면, ‘여러 켜마다’의 뜻이 된다. 그러니까 ‘켜켜이 묵었다’ 면, 여러 층이 포개진 채로 오래되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출발하여 즉 유형적인 데서 출발하여 사상이나 사고를 이르는 데까지 발전한 ‘켜켜이 묵다’라고 한 것인데, 그것이 줄어지면서 ‘케케묵다’로 되어 케케묵은 그 채로 지금도 쓰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더러 ‘캐캐묵다’고 발음하는 사람도 있기까지 하는 터이지만, 그건 또 그렇더라도 ‘케케묵다’쯤으로 미니스커트화해 볼 때도 된 듯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케케묵었지만', 아직도 우리의 약속이 없는 바이매, '케케묵다'로 표기를 해야만 옳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계집’이라든지, ‘계시다’ 따위가 ‘게집’이나 ‘게시다’가 아닌 것도 ‘케케묵다’의 경우와 연관이 없다 할 수 없다. ‘계집’의 중세어는 ‘겨집’이어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겨집녀’라 나와 있고, 그때만 해도 ‘장가들다’라는 뜻으로 ‘겨집하다’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니 생각인데, 요즈음의 ‘계집질’이라는 말은, 어째 너무 야릇하게 쓰여버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계시다’도 중세어는 ‘겨시다’여서, ‘도자기 겨신딜 무러(賊問牙帳)’(용비어천가) 같은 것을 볼 수 있거니와, 옛말이 ‘겨’나 ‘켜’였던 것이 현대로 내려오면서 ‘계’나 ‘케’로 되었던 것이다. ‘계’나 ‘게’나 소리의 구별이 실제로는 안 되는데, 구별하여 적었던 까닭을 알 만하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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