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어원
해방 후에 좌익(左翼)ㆍ우익(右翼)의 투쟁이 있어 ‘좌익’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만이 아니라 대체로 세계가 공통되는 현상은 왼쪽을 ‘불길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영어에서 ‘sinister’라는 말은 ‘왼쪽의’라는 뜻 외에 ‘불길한’ㆍ‘재수 없는’ 같은 뜻이 있는데, 이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도나 미얀마ㆍ파키스탄 혹은 타이 같은 데서는 왼손에 대한 미신이 대단하여 ‘신성한 오른손’은 식사할 때만 쓰고 ‘더러운 왼손’은 변소에 가서 마지막에 닦는 손질을 할 때나 그 밖에도 깨끗하지 않은 것을 만질 때 쓰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다. 동서양이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흔히 쓰기로도 ‘좌천(左遷)’이면 자리가 낮은 데로 감이요, ‘좌성(左性)’이면 ‘삐뚤어진 심보’요, ‘죄어(左語)’면 ‘야만인의 말’이라는 식으로, ‘왼편’은 항상 불리하게만 되어 있다.
이에 반해서 ‘오른편’은 바로 ‘옳은편’이라는 것이 세계의 말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라틴어로부터 시작하여 인도ㆍ유럽어족의 말 거의가 그렇고, 중국의 한자 역시 그러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말에서의 ‘왼편’도 그렇게 달가운 뜻이 못된다. 우리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부터 보자.
호랑이가 사람을 업어가서 적당한 장소에 내려놓을 때면, 반드시 오른쪽으로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내려놓으면 고기맛이 써져서 먹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래 놓으니, ‘왼쪽’은 우리의 말로 따지더라도 '외로운 쪽'이며 '잘못된 쪽'이다. <용비어천가>에 '충신(忠臣)을 외오 주겨늘’ 할 때의 ‘외오’는 ‘잘못되게’ㆍ‘그릇되게’ 같은 뜻이었으며, ‘외랍다’가 ‘외롭다’와 같은 뜻이었다. ‘왼일’은 역시 ‘잘못된 일’이었으니, ‘왼쪽’은 ‘오른쪽’에 비겨 ‘잘못된 쪽’이고, 또 그래서 ‘외로운 쪽’이었던지도 모른다.
사전을 펼쳐보면, ‘외수’라는 데 눈이 간다. ‘속임수’라는 뜻인데, 거기에 한자로는 외수(外數)라 쓰는 양 토를 달아놓고 있다. 물론 ‘外’ 자로 뜻이 안 되는 건 아닐지 모르되, 이 경우의 ‘외수’는 바로 ‘왼수’ 즉 ‘그릇된ㆍ잘못된ㆍ남의 눈을 기이는’ 수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사전마다 한자의 ‘外數’에서 온 것인 양 기술해 놓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동지섣달의 사랑방에서 노총각 머슴들이 1년의 피땀인 사경(私耕: 머슴이 주인에게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을 걸어놓고서 투전(鬪牋)놀음 하는 것을 가끔씩 보았던 것인데, 그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 머슴들이 하던 말 생각이 난다.
“외수 쓰는 놈, 송곳으로 손등 찍기다!”
“아이갸, 지난 시안(세안: 겨울을 이렇게 말함)에 놈(남)의 눈 외어 갖고 손등 찍힌 놈이 누구관디 큰소리여?”
바로 송곳으로 손등 찍자고 말하는 네 놈이 작년 세안(겨울)놀음 때 남의 눈 ‘외었지’ 않았냐는 이야기였다. 참, 그때 생각인데, 왼손잡이 점돌이가 사경 다 털린 끝에 양잿물 먹었었지.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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