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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서해 단편소설 『큰물 진 뒤』

by 언덕에서 2023. 10. 6.

 

최서해 단편소설 『큰물 진 뒤』

 

 

 

 

최서해(崔曙海. 최학송. 1901∼1932)의 단편소설로 1925년 12월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최서해는 1924년 1월 28일 [동아일보]에 <토혈>을 연재하고, 같은 해 10월 춘원 이광수에 의해 [조선문단]에 <고국>이 추천되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5년에는 <탈출기>,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1923년을 전후하여 성장하고 있던 신경향파 문학론을 실제 창작면에서 실천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간도 유민, 혹은 빈농의 비참한 궁핍상을 제재로 다루고 있으며, 대체로 비극적 파국을 맞는 것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단편소설 「큰물 진 뒤」에서는 인간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고, 자연에 의해 재산을 잃은 빈궁한 자를 내세우고 있어서 복수라는 개념은 둔화되어 있다. 파괴보다는 공존의 테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장면의 재산 탈취를 분배라는 것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윤호가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감당하지 못해 강도짓까지 하게 되는 과정이 담담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줄거리는 6장으로 나뉜다.

 

소설가 최서해 ( 崔曙海 . 최학송 .1901- 193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진 비바람 속에 닭이 두 홰째 울 무렵, 윤호는 아내의 해산을 돕는다. 그러나 제방이 터졌다는 외침에 밖에 나가니, 정말 물은 마을을 삼키고 있었다. 아비규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윤호는 문득 아내와 갓난사내애를 생각하고 집에 달려가 물속에 잠긴 아내를 업고 아기를 안고 하여 초인적인 힘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아이는 죽었다.

 다음날, 날은 개었으나, 집도 밭도 간데온데없다. 굶주림 사흘 끝에 읍에 나가 흙 져 나르는 공사판에서 일을 했으나,. 건방지다는 이유로 매만 맞고 일자리를 쫓겨난다.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신조를 버리지 않고 살아온 윤호였건만,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초승달이 재를 넘은 지 오래, 윤호는 낮이면 돈을 만지고 밤이면 계집을 어르는 이 주사를 털기 위해 칼을 들고 뛰어든다. 위협에 혼비백산한 이 주사는 돈뭉치를 내어준다.

  “흥! 낸들 이 노릇이 좋아서 하는 줄 아니? 나도 양심이 있다. 양심이 아픈 줄 알면서도 이 짓을 한다. 이래야 주니까 말이다. 잘 있거라!

 

일제시대 만주의 한인

 

 ▶제1장 :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심한 진통을 겪으며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윤호와 아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2장 : 마을 사람들의 사력을 다한 노력도 헛되이 둑을 무너뜨리고 범람한 물이 논과 집들을 집어삼키는 모습과 집으로 달려간 윤호가 아내를 업고 갓난아기를 안은 채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3장 : 날이 새고 비가 갠 후의 상황이 펼쳐진다. 물에 잠긴 논과 마을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마을 사람들은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집과 사람을 보고도 구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윤호는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 아내를 업고 이웃 마을로 가서 거처를 마련한 뒤 여러 가지로 손을 써보지만 아내의 병은 점점 더 깊어져 간다.

 ▶제4장 : 30리나 떨어진 읍내로 나가 막일로 그날 생활비를 버는 동네 사람들과 공사판에서 흙짐을 나르는 윤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느 날 윤호는 아내를 간호하느라 한 잠도 자지 못하고 아침도 거른 채 공사판으로 나갔다가 지게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게으름을 피운다고 일본인 감독에게 얻어맞아 코피까지 흘린다. 윤호는 피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유를 묻는 아내에게 넘어졌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아내는 사정을 짐작하고 흐느낀다. 윤호는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왔지만 비참하기만 한 자신의 삶과 못된 짓을 일삼는 자들이 오히려 호의호식하는 현실을 비교하며 분노에 떤다.

 ▶제5장 : 윤호가 강도짓을 결심하고 한밤중에 이 주사의 집을 찾아가지만 단번에 결행하지 못하고 집 앞에서 망설이는 심리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제6장 : 윤호는 마침내 "낮이면 돈을 만지고 밤이면 계집을 어르는 것으로 한없는 쾌락을 삼는 이 주사"를 위협하여 그가 사타구니 사이에 감추고 있는 돈보따리를 빼앗아 간다.

 

 

 한국 근대문학의 주류가 민족문학에 역점이 놓일 것인가 아니면 근대문학 쪽에 역점을 둘 것이냐의 문제는 문학사(文學史) 기술에서 봉착하는 첫째 명제에 속한다. 그러나 민족문학일 때만 근대문학일 수 있다는 한국 근대사의 파행성을 인정한다면, 형식논리적인 분류 개념은 실상 의미를 잃는다. 저항과 창조의 개념이 동질성으로 파악되는 곳에 한국 근대문학의 바른 명제가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때, 작가 최학송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서해(曙海)라는 호를 가진 최학송(崔鶴松)은 그 출신 계층부터 매우 이질적이다.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며, 만주로, 간도로 방랑하여 여러 가지 작업을 거쳐 작가로 등장한 것은 <고국(故國)>(1924)으로 되어 있다. 방인근(方仁根)이 낸 [조선문단](이 잡지는 민족주의문학의 기관지에 준하는 것으로, [개벽]지 중심의 프로문학과 대립된 존재였다)에 이 작품이 발표되고 동시에 입사하였으며, 이어 <탈출기(脫出記)>(1925) <기아와 살육>(1925) 「큰 물 진 뒤」 <해돋이>, 그리고 대표작으로 꼽히는 <홍염(紅焰)>([조선문단] 1927.1)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