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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현진건 단편소설 『타락자(墮落者)』

by 언덕에서 2023. 10. 3.

 

현진건 단편소설 『타락자(墮落者)』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이 지은 단편소설로 1922년 1∼3월 [개벽(開闢)] 19∼22호에 연재되었다. 현진건의 작품 <술 권하는 사회>와 함께 식민지치하에서 지식인이 겪어야 하였던 좌절과 타락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비교적 장황한 화제와 사건을 통해서 타락자와 기녀(妓女)의 달콤한 애정관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요릿집에서 춘심과 사귀면서 애틋한 연정을 편지로 교환하는 부분과, 춘심의 집을 출입하다가 급기야는 성병까지 걸리게 되고, 몹쓸 병을 아내에게까지 옮기게 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돋보인다.

 무려 13장에 걸친 사연은 다소 지루한 느낌마저 주지만 전편에 실사된 표현은 실감을 돋우어준다. 작가가 강조한 것은 기녀 춘심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의 발로이며, 저주할 것은 사회이고 한(恨)할 것은 자신이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어서 화류계를 모르고 살아왔다. 화류계를 잘 아는 C와 함께 신입사원 환영회 때문에 명월관에 가게 되어 거기에서 춘심이라는 기생을 만나게 되고 서로 관심을 갖게 된다. 춘심이 내게 주소를 알려 주며 회식이 끝난 후 같이 자신의 집에 가자고 하자,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 나는 기분이 좋아 만취가 되었고 주정도 한다. 술이 깨어 눈을 떠보니 집이고 아내는 웃으며 잠꼬대하며 춘심이를 찾았다고 한다.

 그 다음날 밤 C에게 도움을 청해 춘심이의 집에 찾아가나 춘심이가 없어 그냥 돌아온다. 춘심이 생각에 살이 마르자 아내는 춘심이를 만나 한을 풀라고 한다. 그 후 춘심이에게서 편지가 와 찾아가 하루 밤을 같이 지낸다. 기생이기 때문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18금 시계를 35원에 잡혀 춘심에게 주려고 하니 아내는 20원만 주고 소원을 풀었으니 관계를 끊으라고 한다. 나는 춘심을 만나 20원을 주자 춘심은 싫다고 하여 몰래 옷 속에 넣어 준다. 10시까지 집에 오라는 아내의 말을 어기고 다음 날 아침 늦게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거짓 유서를 써 놓고 다락에 숨어 있었다. 나는 다시 안 간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단성사에서 춘심이를 만나자고 한 날이 다가오고 나의 마음은 흔들린다. 우연히 C에게 이끌려 단성사로 가게 되고 춘심을 보나 몰래 빠져나온다.

 며칠 발을 끊었으나 다시 춘심을 찾게 된다. 어느 날 춘심이 아파 누워 있을 때 찾아가 춘심을 첩으로 삼으려고 눈독을 들인 김승지를 만나게 되고 그의 재력에 눌려 춘심의 집을 떠난다. 나는 임질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춘심이 밉지는 않으나 일주일간 찾아가지 않는다. 나는 춘심이의 부고장을 받게 되고 춘심이의 사진을 찢은 아내와 싸우고 나서 춘심의 집에 갔더니 춘심이는 살림을 들어갔다고 한다. 울면서 거리를 방황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임질로 고통을 당한다. 나는 병독으로 인해 몸부림치는 어린애를 생각해 본다.

 

소설가, 언론인 빙허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현진건은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을 발전시켰으며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를 개척한 작가이기도 하다. <빈처(貧妻)>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불>(1925) <B 사감과 러브레터>(1924) 등은 그의 선명한 묘사, 정확한 표현, 빈틈없는 구성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단편들로 ‘한국의 체호프’라는 격찬을 받기도 하였다.

 외딸 화수(和壽)를 며느리로 맞아 사돈이 된 소설가 월탄 박종화에 의하면, 빙허 현진건은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을 통독하고 낱말 연구에 열중하는 독실한 성품으로 또 한편으로는 곧잘 술을 마시고 주정 잘 부리기로 유명했다. 심훈, 안석영과 더불어 당대 3대 미남으로 불릴 만큼 잘 생겨 장안 기생들의 흠모를 받아왔지만 「타락자」에 나오는 ‘춘심’이에게 잠시 빠진 것 외에는 당시의 유례없는 금실 좋은 모범 남편이었다.

 

 

 현진건은 작품의 소재를 처음에는 신변 가까이에서 구했다. 그러나 곧 객관적 현실로 눈을 돌려 이지적이고 치밀하게 작품을 썼다. 그의 단편소설에는 빈곤의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그 빈곤은 일제 지배하 민족의 수난적 운명에 있었던 한 시대의 상징이다. 그는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의식에 조응하는 우리나라 사실주의 문학을 수립하였다.

 현진건은 <빈처>를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김동인과 함께 우리나라 단편 소설 발전에 기여한 작가로서 흔히 한국의 ‘체홉’이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기교가 세련되고 소시민적인 감정이 풍부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처녀작 <희생화>를 제외하고 모든 작품의 기교가 뛰어나, 김동인은 그를 ‘비상한 기교의 천재’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염상섭과 더불어 한국의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기도 한데, 그의 사실주의는 일반적인 사실주의의 제삼자적인 관찰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응시와 관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말의 풍부한 활용으로 인한 정확한 적용과 치밀한 구성, 일관된 통일성과 사실성 등이 다른 작가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