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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태준 단편소설 『고향(故鄕)』

by 언덕에서 2023. 9. 26.

 

이태준 단편소설 『고향(故鄕)』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소설로 1931년 4/21~4/29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다.  

 이태준은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현 철원읍 대마리출생으로 아버지 이문교는 지방관원이었는데당시 한말의 개혁파로 수구파에 밀려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망명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이태준은 어려서부터 어렵게 수학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동경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가 1929년에 [개벽] 기자로 일하였고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 작품은 사회적 문제에 관한 작가 특유의 경험과 개인적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김기림의 지적대로 우수한 ‘스타일리스트’로서, ‘윤건’이라는 지식인의 울분을 세밀한 문체의 힘으로 구성해 낸다. 또한 자신의 체험적 요소와 결부시킨 탁월한 묘사와 심리의 재현을 특징으로 하는 <해방 전후>와 같이 지식인의 내면 의식과 시대적 고뇌를 묘사하는 데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가 말하는 ‘고향’이란 식민지 체험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는 뿌리 뽑힌 삶과 비애의 현장이다. 그는 문학사적으로도 이광수 이후 계몽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소설의 경지를 보다 확대해 자식인의 심리, 사회적 암울함을 세밀하면서도 구체적인 묘사로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상허 이태준(李泰俊.190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김윤건은 일본의 대학 정치학부에서 교수들이 혀를 내두르는 훌륭한 논문을 쓰고 졸업한다. 고아였던 그는 홀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 배달해서 학교를 졸업한다. 윤건은 금의환향을 꿈꾸며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거기서 다른 조선인 유학생들을 만나는데 하나같이 돌아가면 어디 취직하냐고 묻는 그들에게 주인공은 경멸감을 느낀다. 더구나 '관청'이나 다름없는 OO 은행에 취직한다는 사람들 보고 "아니꼬운 생각대로 한다면 맥주병을 들어 그 친구 상판을" 갈기고 싶다며 분노를 삭이기도 한다. 또 조선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행색은 어찌나 추레한지, 생기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이 가진 '조선-고향 판타지'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겨우 도착한 경성에서는 연고도 없어 하숙을 잡고 신문사에 취직해보려 하지만, 빈번히 거절당하고 하숙에서는 숙박비가 밀려 쫓겨나고 만다. 경성에서 학교 다닐 때 같이 휴학 운동하고 일제에 투쟁했던 친구 '창식'을 찾아보지만 그는 이미 운동하다 감옥에 들어갔고, 투쟁 당시 학교 측의 첩자 노릇을 했던 녀석은 모교의 교사로 취직해서 번듯한 생활이 잡혀 있다.

 윤건은 자신이 꿈꾸고 이상향으로 여기던 조선과 현실의 조선이 다르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 간다. 취업이나 출세에만 혈안이 된 족속들을 경멸하고 주인공은 계속 그 너머의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래서 사회운동 이론가로 유명하다는 '박철'이란 사람을 찾아간다. 박철에게 간 윤건은 이틀 만에 밥을 구경했다. 두 사람은 양편의 이론이 통일되지 않아 언쟁하다가 윤건이 박철의 뺨을 올려붙였다. 박철은 답변 대신에 나가떨어졌다.

 이후 윤건은 거리에 나와 우연히 만난 그 OO 은행원을 마주쳐 같이 술집에 가는데 그곳이 학연, 지연이 경합하는 현장이자 사교모임이라는 걸 알고는 술김에 맥주병을 휘두르고 만다. 꿈꾸고 그리던 고향으로 6년 만에 돌아온 그는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작품은 ‘지식인의 불안과 좌절 의식’을 한 귀국 졸업생의 행동반경 안에서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비록 소품적이라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당대 프로소설이 지니고 있었던 의식 과잉적이고 내용 위주의 거친 언어 구사라는 결점을 극복한 작품이다. 작가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분석을 정제된 언어로 묘사해 냄으로써 보다 진전된 형식과 언어의 차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중 검문 당하면서 낭패를 당하는 윤건의 모습은 식민지 치하의 비애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윤건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도일(渡日) 유학한 후 금의환향하려 하지만, 당장 취직자리마저 구할 데가 없는 처지에 빠진다. 이 같은 점은 당대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침체한 경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식민지는 하나의 제도’라는 사르트르의 언급처럼 제도 속에 놓인 윤건의 의식은 그것이 피식민지 사회의 모순에 대한 자신의 무력한 상황임을 무언중에 드러낸다. 은행원이나, 사회운동 이론가 박철 등을 구타하는 윤건의 의식은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암담한 현실과 비애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데 대한 항거와 비판적 자세의 결과이다.

 

 

 이태준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하층민의 삶과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1930년대 대표 작가이다.  작중 인물들은 회의적․감상적․패배적 성격으로 부각되어 작품 전체가 허무와 서정에 깊이 침윤되었지만, 때로는 그 속에서 현실과 밀착된 시대정신에의 추구를 지향하기도 했다. 이태준은 특히 탁월한 미문가(美文家)로서, 주로 예술적 정취가 짙은 단편에 능했다. 그러나 예술지상주의적인 이효석이나 시정저회적(市井低徊的)인 박태원과는 달리, 허무와 서정의 작품세계 속에서도 시대정신의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숙박료를 지급하지 못해 여관에 가방을 빼앗긴다거나, 굶주림에 처한 자신의 상황이 ‘감옥을 세우는데’ 드는 엄청난 예산과 암암리에 비교되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식민지적 모순을 직시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열정에 타올랐던 동맹휴학에 대한 과거 회상과 사회적 냉대를 만취한 상태에서 휘몰아간다. 그것은 회화적인 풍자일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좌절감을 감옥 신세로 보상받는다. 주인공에게 ‘고향’은 결국 자기의 뜻을 펼 수 없는 냉혹한 현실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 해수애 또는 블라디보스토크

 도시 이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 블라지바스똑)는 '동방(восток, 바스똑)의 지배자(지배하다 - владеть 블라졔쯔 에서 파생)'라는 뜻의 러시아어이다. 블라디미르 및 보스토크와 관련이 있다. 현지인들이 부르는 도시의 애칭은 블라디크(Владик / Vladik). 문화어로는 울라지보스또크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만주어 ᡥᠠᡳᡧᡝᠨᠸᡝᡳ(Haišenwai)를 한자로 음독한 해삼위(海參崴) 또는 해삼시라 부른다. 해삼이 많이 나는 산지여서 해삼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함경도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해안은 해삼산지로 유명했고 중국으로 많이 수출되었다. 운송기술이 발달하고 심지어 해삼 양식도 가능해진 현대에는 해삼이 싼 식재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비싸지도 않고, 서민이라도 가끔씩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식재료 정도로 여겨지지만 전근대 중국에서 해삼(보관 및 운반을 위해 말린 건해삼)은 전복(건전복)과 함께 대단히 값진 식재료로 여겨졌다. 한나라 시대부터 극동아시아 교역망에서 중국이 수입하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손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해삼인 것. 고종 때 해삼위 통상사무관을 이곳에 파견한 적이 있다. 해수애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우라지오스토쿠(ウラジオストク)라고 부른다. 이를 아테지화해서 줄인 우라지오(浦塩)라는 표현도 과거에 쓰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쓰인 이용악의 시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의 '우라지오'가 바로 이것. 앞글자만 따서 포항(浦港)이라 부르기도 했다.

 
 신호(神戶) : 고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