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 단편소설 『김강사와 T교수』
소설가·정치가 ·법학자 현민 유진오(兪鎭午, 1906∼1987)의 단편소설로 1935년 1월 [신동아]지 39호에 발표되었다. 유진오는 초기에는 경향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은 전향한 뒤, 사실주의를 추구한 심리 소설로, 인텔리의 현실과 타협과 그 이상 또는 세계관과 모순에서 생기는 고민을 다루고 있다.
단편소설 『김강사와 T교수』는 '김만필'이란 어느 식민지 지식인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와 함께 당대 현실의 부조리, 속물적인 인간의 속성을 제시하면서 지식인의 내면적 취약성도 냉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 사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S전문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대학을 갓 졸업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책상물림인 '김만필'이 시간 강사로 취직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김 강사는 현실에 적응하려다 결국 실패하는 지식인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식민지의 현실 상황 아래에서 지식인이 겪는 비극적인 모습을 통해 식민지 정책에 따른 민족적 차별과 일본인 지식층의 횡포를 다루고 있어서, 1930년대 지식인 소설의 한층 심화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문학사 김만필은 동경 제국 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 시대에는 한때 문화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 년 반 동안이나 실업자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 왔지만 아직도 '도련님' 또는 '책상물림'의 티가 뚝뚝 듣는 청년이다.
김만필은 동경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지만 취직난이 심한 때에 졸업을 한 탓으로 오랫동안 실업자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에 와 있는 관리 H과장의 주선으로 일본인 S전문학교에 시간강사로 나가게 된다. 그는 남에게 알려지면 별로 좋지 않은 학생 때의 전력이 있다. 학생 때 그는 좌익 학생운동 단체인 문화비판회에 관계한 적이 있는데 사상운동의 전력이 있는 자는 당시 사회에 잘 용납이 안 되는 사회분위기다.
그가 부임한 S전문학교는 분위기가 상당히 딱딱했다. 거기에다 새로 근무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김만필은 아주 서먹서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친절하게 접근해 오면서 대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T교수였다. 그는 김만필에게 이 학교의 학생들은 매우 질이 좋지 않으니까 주의하라, 그 가운데서 스즈끼, 야마다, 가도란 자가 특히 문제라는 둥 여러 가지 충고를 해준다. 김만필은 그가 매우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후 김만필은 취직에 힘을 써 준 H과장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런데 그 대문 앞에서 T교수와 마주쳤다. 그는 보퉁이를 들고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하녀와 이야기하고 나왔고 김만필은 그런 그의 행동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H과장 집에서 나오게 되자 T교수는 김만필에게 차 한 잔 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세르팡'이라는 찻집에서 마주 앉자 그는 김 강사가 작년 어느 신문에 원고료를 탈 목적으로 쓴 '독일 신흥작가군상'이라는 논문을 아주 좋은 글이었다고 칭찬을 한다. 김만필은 그의 말에 아주 기분이 나쁜데 글의 내용이 독일의 좌익작가를 다룬 것이어서 그로서는 학교가 그걸 알아서는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T교수는 그의 집 주소까지 알고 있다. 이래저래 김만필은 그를 싫어하게 된다. 그는 또한 같은 독일어 선생인 C를 주의하라고 일러준다. 김강사는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느 일요일 스즈끼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학생들이 패기가 없고 안일주의에 빠져 있다고 분개한다. 뿐만 아니라 김만필이 문화비판회 일원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김 강사는 적지 않게 그를 경계하면서 그런 말의 출처를 알아본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것이 T교수의 입에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스즈끼는 김 강사에게 독일문학연구회 모임을 조직하였으니 지도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김 강사는 그에게 불안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가자 김 강사는 차츰 학교 내의 사정을 짐작하게 된다. 학교는 교장과 T교수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물리학의 S교수, 독일어의 C강사 등이 한패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세모 대매출'의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다가왔다. T교수가 과자 상자나 사 가지고 교장을 찾아가라고 김 강사에게 일러준다. 그 말에 김 강사의 심경은 더욱 착잡해진다. 그는 일단 과자 상자를 사들기는 했다. 그러나 끝내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것을 어떤 일가 아주머니에게 주어 버린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학교에 나가게 되자 김 강사는 더욱 피곤을 느낀다. 그에 반해서 T교수는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하게 흐르고 아주 신수가 좋아진다. 겨울 이후로 그는 한국 민속을 연구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 들을 뻔질나게 물고 다니는데 그 속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어느 날 그가 H과장이 만나잔다고 전한다. 김 강사는 무슨 이유일까를 생각하면서 그를 찾는다. 그런데 H과장은 평소의 온후하던 모양을 일변시키며 독살스러운 눈으로 자기를 속였다고 야단을 친다. 김 강사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며 심지어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그때 이웃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언제 보아도 봄 물결이 넘실거리듯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T교수였다.
"무엇! 그래도 자네는 나를 속이려나 ? "
H과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찻종을 덜그럭하고 놓고 의자를 뒤로 떠밀며 몸을 벌떡 젖혔다.
그때 이웃 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 물결이 늠실늠실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 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김 강사와 T 교수」는 식민지 지식인을 다룬 거의 유일한 단편으로 볼 수 있다. 일제 40년간의 문학은 특히 지식인 세계를 천착함에 있어서는 거의 불모지와 같았으며, 이광수와 이무영류의 엘리트 의식의 발로인 농촌 지도적 지식인상, 염상섭의 초기 단편에서 볼 수 있는 센티멘털하고 로맨틱하기조차 한 지식인의 불안 의식 그리고 유진오류의 시니컬한 지식인의 처세술 묘사가 그 유일한 작품이다. 그리하여 ‘불행히도 일제하의 지식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고, 무엇을 괴로워하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김 강사와 T 교수」는 유진오의 경성제대 예과 강사 때의 자신의 체험이 근거로 되었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직접적인 소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문제를 그런대로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지식인 소설의 전형으로 나약한 지식인이며 자아와 과거의 신분을 속이며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이 제시된다. 그 지식인은 '책상물림'이며 창백한 지식인의 유형에 속하는 김만필이다. 그는 세속적인 요령을 피울 줄 모르며, 지난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현재 생활에 대한 양심의 가책 속에서 살아가는 가녀린 양심의 소유자다.
그에 대해서 교활하고 비겁한 성격의 소유자인 T교수가 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첨이나 비겁한 짓을 서슴없이 한다. 이 소설에서는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대조시킴으로써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생활의 한 단면을 제시한다. 마치 전광용의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와 흡사하다. 이 작품은 지식인의 문제에 대해 진지한 자기반성과 분석을 하고 있어, 소설사적인 의의를 갖는 물론, 정신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
이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주인공 김만필의 강사 취임 시기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해인 1933년 2학기이다. 이 시기는 만주 사변에서 중일전쟁 발발의 사이로 지식인들, 특히 반일적 지식인들에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됨으로써 지식인의 활동이 극도로 약화된 시기였다. 이 소설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 사람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S전문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대학을 갓 졸업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책상물림인 '김만필'이 시간 강사로 취직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내용이다. 김 강사는 현실에 적응하려다 결국 실패하는 지식인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 준다.
김 강사의 패배의 원인은,
첫째로 현실의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김 강사는 일제의 체제하에서는 용납받을 수 없는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한 일이 있다. 그래서 김 강사는 불안해한다. 그는 인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지식 계급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중 사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요된다.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에 현황(眩恍)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이것은 일제 치하 한국 지식인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표현해 준 말이다. 지식인 문제를 다룬 소설은 실직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소설은 지식인이 어떻게 지식인답지 못한 모습으로 처세하는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얼마나 무력하게 사회 현실에 휘말리는가를 부각해 주고 있다. 주인공은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이 부족하여 이에 대처할 줄을 모른다.
둘째로 김 강사가 패배한 원인은 인물의 성격에 있다. '김만필'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려 하지 않고 여러 겹의 가면을 쓰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 교수이면서 약삭빠르고 비굴한 성격을 가진 T교수에 의해 한때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김 강사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결국 김 강사의 행동은 파국에 이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지식인들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형상화하지 못하고 인물의 성격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것은 작품이 쓰인 시대적 제약에도 원인이 있다.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상원 장편소설 『백지(白紙)의 기록』 (0) | 2023.10.09 |
---|---|
최서해 단편소설 『큰물 진 뒤』 (0) | 2023.10.06 |
현진건 단편소설 『타락자(墮落者)』 (0) | 2023.10.03 |
이태준 단편소설 『고향(故鄕)』 (0) | 2023.09.26 |
황순원 장편소설 『움직이는 성(城)』 (0) | 2023.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