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단편소설 『촌뜨기』
월북작가 이태준(李泰俊.1904∼?)의 단편소설로 1934년 3월 「농민순보」에 발표되었다. ‘촌뜨기’란 제목 그대로 시골 산마을에 사는 작중 주인공 장군이의 모습을 그린 단편소설이다.
이태준은 초기작품 <아무 일도 없소>에는 신출기자의 취재에 의하여, 3ㆍ1운동 당시 대동단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망명한 애국지사의 딸이 생계가 어려워 창녀가 되었고,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지사의 아내가 자결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 사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당시대의 세속적인 삶의 궤도는 잘도 돌아간다는 반어적 인식이 제기했다. 이러한 민족의식의 주제는 상당히 많은 편수에 이르고, 장편소설 <사상(思想)의 월야(月夜)>(1946)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 소외된 인물들의 현실적 고난과 그 인물의 내면세계의 순수무구함을 드러내어 인간애의 의식을 촉구하는 주옥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단편소설 『촌뜨기』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수필집 <무서록(無序錄)>(1944)과 문장론 <문장강화(文章講話)>(1946) 등도 그의 탁월한 문학적 저서로서 크게 공헌한 작품들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수탈은 극에 달하여 대부분의 논밭은 물론, 산까지 일본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따라 지주들은 몰락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소작농을 하던 사람들은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제반 상황들을 고려해 볼 때 단편소설 『촌뜨기』는 일제의 수탈과 문명의 발전에 쫓겨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는 ‘장군이’ 부부의 삶을 통해 식민지 시대 우리 산골 농민의 아픔과 부부간의 따뜻한 정을 그려낸 수작(秀作)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군이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안악굴 꼭대기에 있는 오막살이에서 잘 생기지도 않은 아내와 단둘이 화전(火田)을 일구며 숯을 굽고 산짐승을 잡아 연명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산 주인이 삼정 회사로 바뀌면서 화전은 물론 사냥이나 숯을 굽는 등 지금까지 생계 수단이 되었던 모든 일을 못 하게 된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빚을 얻어 물방앗간을 개설하려 했으나 다 완성하기도 전에 마을에 발동기가 들어와 그 일도 실패하고 빚만 지게 된다.
마침 사냥을 나온 순사부장이 장군이가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다치게 되고, 이 일로 장군이는 경찰서 유치장에 20일이나 갇히게 된다. 유치장에서 나온 장군이는 마을을 떠날 결심을 하고 이틀 후 아내와 마을을 떠난다. 눈이 충혈되도록 운 아내와 헤어지다가 다시 불러 장에서 떡을 사 먹이고는 친정으로 보낸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장군이는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짐승을 잡고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순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삶의 터전이라 할 산을 잃고, 게다가 생계 수단이던 모든 일(화전, 숯, 사냥 등)을 못 하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물방앗간을 차리려 한다. 그러나 그것도 발동기가 들어옴으로써 실패하고 빚까지 지고 만다. 즉, 일제의 수탈과 문명의 발전으로 장군이는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그런 장군이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치는데, 그것은 사냥을 나온 순사부장이 바로 장군이가 짐승을 잡으려고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다치게 된 일이다. 이 일로 장군이는 경찰서로 끌려가고 뺨이나 몇 대 맞으려니 했던 것이 20일 동안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장군이는 유치장에서 나가면 마을에서 떠날 것을 결심한다. 아내는 당분간 친정으로 보내고, 자신은 도시로 나가 돈을 벌어 농사지을 밑천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유치장에서 나온 이틀 후, 장군이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떠난 후, 아내는 친정으로 향하고 장군이는 읍내로 향한다. 그러나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워 다시 아내를 부른 장군이는 아내를 읍내로 데려가 떡을 사 먹인 후 헤어진다. 이 부분에서 비록 못생기고 밉기만 한 아내이지만 그녀를 향한 남편의 애틋한 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
광복 이전 이태준의 작품은 대체로 시대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을 띄기보다는 구인회의 성격에 맞는 현실에 초연한 예술지상적 색채를 농후하게 나타낸다. 인간 세정의 섬세한 묘사나 동정적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여 예술적 완성도와 깊이를 세워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광복 이후에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의 핵심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에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종군기자로 전선에 참여하면서 쓴 <고향길>(1950)이나 <첫 전투>(1949) 등은 생한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드러냄으로써 일제하의 작품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훨씬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가 월북한 것도 자의적인 것이 아닌 강제된 것이라는 후문을 남기고 있고, 결국 한국전쟁 이후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그가 철저한 사회주의적 작가가 아니었으며 그의 열정은 오히려 순수성으로 해서 오해를 받는 인간적 서정성에 기초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이태준은 서정적 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흔히 상고주의(尙古主義)라 일컫는 과거로의 회귀, 혹은 옛것에 대한 미련을 잘 그려낸 작가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가난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여 저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한 농민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그 안에 따뜻한 부부의 정까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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