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지신세’의 어원
“내레 덩말 둑다 실았시오. 삼팔선이레 넘을 때 워카갔시오. 아, 안고 있던 새끼레 젖 달라고 울디요, 뒤에서 인민군 놈들이레 들입다 통딜이레 하디요, 남편이레 치근덕대디요, 덩말 둑다 살았시오.”
이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일반을 일러 ‘따라지’라고들 한다. 여기엔 성별이 없다. 여자건 남자건 38선을 넘어온 사람이면 ‘따라지’다. 뭐, 별로 경멸하는 뜻으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레 따라디 신세 아닙네까. 내레 굶어둑는대서 누구레 눈 하나 깜짝 하갔시오. 그저 악탁가티 살아야디 않겠시오?”
스스로도 ‘따라지’를 자처하는 월남 동포들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쯤은 ‘양반 기질’이라는 생리에서 잠을 깨지 못한 채, 재떨이에 담배통만 퉁탕거리던 남쪽의 ‘비(非)따라지’들은 이 억척으로 생존권과 싸우는 ‘악탁(억척)들에게 차츰 시장권을 잃어갔다. 어?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남대문시장이며 동대문시장의 주도권은 이 ‘따라지’들이 차지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내려오는 관습 따라 으스대고만 있는 사이, 어느덧 문전옥토까지도, 건넛마을의 성(姓)도 없던 돌쇠 놈 손아귀에 들게 된 그 못된 전철을 다시 한번 더 되풀이하는 셈으로 되었다.
‘따라지’는 말하자면 난장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사람이다. <후한서>의 ‘동이전’에 의하면, 키가 고작 3∼4척의 따라지들이 사는 ‘주유국(侏儒國)이 있었다는 것인데, 지난날에는 창우(倡優)에 이어 이 따라지들이 많았던 듯, ‘주유(侏儒)’ 그것이 곧 창우를 이르고 있기도 하다.
이 ‘따라지’가 어느 만큼 결말을 필요로 하는 놀음판에 도입되었다. 한 끗이 ‘따라지’로 되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한 끗도 못된 ‘제로’ 끗이면 다시 겨뤄볼 새 기회라도 있는 법인데, 이놈의 따라지면 그도 저도 안 되어 그저 밑바닥에서 슬슬 길 수밖엔 없는 것이다. 위를 쳐다보면 바로 위의 두 끗부터 시작해서 길길이 녹림(綠林), 야코죽을 밖엔 없게 된다. 가장 작은 존재요, 동시에 가장 미천한 존재가 ‘따라지’ 그것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해방이 되고, 미소(美蘇) 양군이 진주하면서 우리가 원치도 않던 남북의 분계선이 국토를 허리 잘랐다. 잘리고 보니, 북위 38도선. 3과 8, 즉 세 끗과 여덟 끗은 따라지였다. 그리고 38선이라는 '따라지선'이 우리 겨레에게 운명 지어 준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라지신세'였다. 6ㆍ25의 엄청난 비극이 이 따라지선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로부터 자유를 찾는 북의 겨레는 따라지선을 따라지처럼 넘어 따라지를 자처하면서 남으로, 남으로 밀어닥친 것이다.
그러나 넘어올 때의 따라지라서 넘어와서까지 따라지로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이쪽 하늘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의 공기를 마신 끝에 ‘가보’로 발돋움하여 간 것이다. 자유라는 영양소는 따라지를 그와 같은 거인으로 키워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설사 가보다 못 되더라도 두 끗, 세 끗으로 자라서 한 번 맞서볼 만한 배짱의 소유자로는 자라게 된 것이다. ‘따라지’는 ‘난장이’와 ‘놀음판에서의 한 끗’을 뜻함만이 아니다. ‘우리 겨레의 비극’을 대신하는 말이기도 하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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