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알고주알’의 어원
꼬치꼬치 캐는 것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캔다고 한다. 이 말속에는 조금 끈질기고도 치밀한 느낌이 곁들여 있다. 하여간 뿌리를 캐도, 잔뿌리까지 깡그리 캐버린다는 생각이다.
“아 글쎄, 처음 만난 처지에 그게 뭐야? 신상조서라도 받는 것같이 미주알고주알 캐지 않아? 난 거기 딱 질렸어. 대답은 보나 마나 노! 야.”
“미주알고주알 캐 보라지. 내게 뭐, 구린 데 한 군데나 있는지 말야.”
도대체 ‘미주알고주알’이란 뭐냐? 본디 ‘미주알’이라는 말은 있다. 항문을 이루는 창자의 끝부분이다. 수치질에 걸렸다 하면, 미주알 쪽에 무엇인가 생겨난 것이리라. 어쨌든 남의 항문까지 조사한다는 것이니, 이거, 아편 밀수 때에나 생겨난 말이었던 것인지 어떤지.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고주알’이란 또 뭐냐 하는 거다. 그냥 ‘미주알 캔다.’ 해도 될 걸 가지고 왜 거기 ‘고주알’이 붙느냐는 거다. 이에 대해서는, ‘고조(高祖) 알’이라고 말하는 이를 보았다. 고조할아버지까지 캔다는 생각에서였으리라.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싶어 생각해 볼 양이면, 혼사라도 치르게 될 때, 그 고조할아비까지 캐 들어가기도 하는 것인데, 고조할아비가 몹쓸 병이라고 지니고 있었다면, 그 유전인자가 박혀 있을 자손과 어찌 혼인하겠느냐는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캔다.’는 말이 있다. 이에서 살필 때 ‘밑두리’는 ‘미주알’과 통한다 싶고, ‘콧두리’는 ‘고주알’과 통한다 싶기도 하다. ‘코’의 옛 말은 ‘고’여서 ‘고주알’이라면 콧속에 있는 그 알맹이 같이 도드라 져 있는 것이라도 가리키는 우리말인 것을, 우리가 지금 깜박 잊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가정해 본다면, 두 곳이 다 꾸끔스러운 곳으로 되어, 그런 곳까지를 파려 두는 것이 미주알고주알 캐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왕 ‘미주알고주알’에 대해서 그야말로 미주알고주알 캐기로 나선 것이니까 한 번 더 되짚어 생각해 본다면, ‘고주알’이나 ‘미주알’ 같은 말에 특별한 뜻이 없는 채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또 ‘미주알’에는 뜻이 있었다 해도 ‘고주알’에는 별 뜻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을극불긋’ㆍ‘울퉁불퉁’ㆍ‘생게망게하다’ㆍ‘티격태격’ㆍ‘올망졸망’ㆍ‘옹기종기’ㆍ‘곤드레만드레’처럼 별 뜻이 없이 각운만 맞추어 나간 말들이 있는가 하면, 가령 노인네들을 욕하면서 ‘영감땡감’ 하게 되면, '땡감'에 '떫은 감'이라는 뜻이 특별히 있다고도 생각되겠지만, 그냥 '감'의 각운을 맞춘 것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끝도 가도 없다’ㆍ‘듣도 보도 못한다’ㆍ‘눈치코치’ 같은 말은 뜻을 가지면서 운을 맞추려 한 흔적을 보여 주는데, 부부를 낮춰 이를 때의 ‘가시버시’는 ‘벗’이 친구 또는 ‘숯불 피울 때 밑불에 닿는 숯’을 이른다고 해도, ‘버시’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게 아니고, ‘의지가 없다’는 ‘가지’에도 역시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옛날에 ‘휘뚜루’라는 고약이 있어 아무 종기에나 비르면 낫고, 그래서 그것이 아무 데고 쓰인다는 뜻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거니와, 요즈음 서울에서는 여기저기 아무 데고 소영이 닿는다는 뜻으로, ‘휘뚜루’라는 본디의 어찌씨(부사)에 ‘마뚜루’까지 붙여 ‘휘뚜루마뚜루’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본다. 미주알고주알 캐다 보니까 정말 이 말 저 말 휘뚜루마뚜루 지껄여도, 다 그럴듯하다 싶어진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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