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순이'의 어원
그 이름의 타이틀 롤을 한 ☞‘또순이’는, 그것이 연속방송극으로 전파를 타면서부터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그 지독한 ‘함경도 기질’은 두 가지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놈의 여자가 고 따위로 생겨먹을 수 있어. 여자가 고 모양이라면 징그러워서도 못 데리고 살겠더라.”
“허허. 어디 사내만 믿고 살 세상이라던가? 그렇게 억척으로 살지 않으면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누구는 남도 쪽 여자를 일러 ‘안방만 지키고 앉아서 바가지 긁어댈 거리만 찾아내고, 스스로는 비생산적이며 비능동적이며, 그러고도 퇴영적인 노리개’라는 평을 한다. ‘노리개’란 ‘동물’이 아닌 것이다. 누구는 또 남도 쪽 여자를 일러. ‘남편의 횡포에 대해 옷고름으로 눈물만 씻다가 그 횡포가 고비에 이르렀을 때 친정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알고 있는 기계’라고 평을 한다. ‘기계’란 자의식이 없는 무기물이어서 남편이란 이름의 ‘오퍼레이터’가 조작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꼭두각시이다.
누구는 다시 또 남도 쪽 여자를 일러, ‘남편의 축첩을 참아내는 체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못 참고 쏘아대는 것보다 더한 오기와 앙심을 머금는, 덜 돼먹은 위선의 도의 마지막 보루’라는 평을 한다. 철저한 위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그 길로 성공하여 공자는 못되더라도 안회(顔回) 정도는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도 못 되는 위선투성이라는 것이다.
‘또순이’는 ‘함경도 여자’라는 뜻으로도 쓰였지만, 연속방송극 이후 ‘생활에 악착같은 여자’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연속방송극은 그 뒤에 다시 영화로도 되어 히트했지만, 남쪽 하늘 밑에 살아온 이른바 ‘부도(婦道)’에 대하여 재평가해야 할 심각한 기회를 주었던 말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옷치장ㆍ몸치장하고 앉아서 그 포악 일변도일 수 있는 남편을 자정이 넘도록 기다려보다가 ‘오늘도 못 들어오시나 보군!’ 체념하고 자리에 드는, 죽어서도 ‘부녀칠거(婦女七去)’의 계율을 어겨가면서, ‘어떤 년 차고…’하는 강샘 속에, 뜬눈으로 첫 닭 홰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부도(婦道)’의 시대는 갔다는 것을, 새로 생겨난 말 ‘또순이’가 홰를 쳐 알려 준 것이다.
좀 야하게, 그리고 조금쯤 그 악착을 이죽거리면서 빗대어 쓰던 '또순이'란 말도 요즈음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그런 측면만을 띠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또순이의 그 생활의 욕이 차츰 공명을 얻어가는 증좌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간 남편의 영령만을 붙안고 살 수도 없어, 어쩌면 개가(改嫁)로써 그 ‘핀치’를 모면하고, 더 소극적으로는 자살로써 ‘뒤따르는 것’을 능(能)으로 알던 그런 때는 벌써 지나간 것이다. 설사 남편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또순이의 길은, 우리 여자 일반의 철학으로 되어야만 하겠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1963년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KBS 라디오 연속극 「행복의 탄생(또순이)」은 김회창 극본의 라디오 드라마로 이후 영화화 되었다. 도금봉과 이대엽이 주연한 영화 <또순이>는 1963년 개봉 당시 15만 명 이상을 동원한 흥행작이자 주연 여배우 도금봉에게 제10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겼다. 독립적이고 생활력이 강하며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여성을 칭하는 ‘또순이’라는 대명사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함경도 출신으로 월남하여 자수성가한 아버지를 둔 또순(도금봉 분)은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선언한다. 주체적인 인생을 꿈꾸는 그는 세차, 쥐덫팔이, 떡장사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그러는 와중에 일자리를 구하러 아버지를 찾아왔지만 퇴짜를 맞고 백수로 살고 있는 심재구(이대엽 분)를 도와주다가 서로 애정을 갖게 된다. 또순은 재구와 ‘새나라 택시’를 마련하자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중간에 사기를 당하며 꿈과 사랑 모 두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타고난 긍정성과 유쾌한 의지로 결국 사랑과 꿈 모두를 성취해 낸다는 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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