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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안성맞춤'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8. 18.

 

'안성맞춤'의 어원

 

기성복 집에 가서 감도 괜찮고 색조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봤더니 딱 들어맞았다. 일부러 치수를 잰 것같이 찰싹 붙는 것을 본 점원이,

 “거, 안성맞춤입니다.”

 하며 너스레를 떤다.

 K시를 갈 일이 있어 혼자 가기도 뭣하고 하던 판에 마침 찾아온 P가 자기도 K시에 갈 일이 있다고 하며 동행을 청한다.

 “안성맞춤으로 됐군. 함께 가면 심심치 않게 됐구먼.”

 경기도 안성(安城) 고을은 옛날부터 유기(鍮器)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삿갓이나 종이로 안 알려진 바는 아니로되, 유독 유기로 알려져 왔고, 그것을 맞춤으로 할 때는 참으로 일품이어서 거기에서 생겨난 ‘안성맞춤’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말이 그러하듯 ‘안성맞춤’이라는 말에다가 안성이라는 고을 이름을 갖다 붙인 말이라 함이 더 옳게 될 것이다. 가령, 전라도에 담양이라는 고을이 있고 그곳은 예로부터 죽물(竹物)로 유명한 터이지만, 그렇대서 ‘담양맞춤’이라는 말은 없지 않으냐 해서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낙군수’라는 말이 안악(安岳)이라는 황해도 고을 이름에 빗대어지고, ‘행주치마’라는 말이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싸움과 관련된 듯이 말하여짐이 사실은 연관성이 없는 것임으로 해서의 말이다.

 옛날에 안악군(安岳郡)으로 새 군수가 부임해 갔는데, 이 친구가 시쳇말로 공처가인가 아내무섬쟁인가 돼서 주렴(珠簾) 건너에 앉아 지시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공사를 처결했다는 데서, 아내한테 쥐여 사는 형편에 있는 사내를 ‘아낙군수’라 한다는 것인데, ‘아낙’이나 ‘안악’이나 소리 나기는 ‘아낙’ 쪽이어서의 얘기지만, 안악(安岳) 고을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낙’도 말밑으로 따져본다면 ‘안’에 ‘악’이 붙은 형태로 되겠고, 또한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면서 거기에서 출발한 ‘아낙네’는 부녀자 일반을 이르고는 있다고 해도, ‘안악군’과 쉽게 관련지어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 사람들의 말버릇을 살필 때 긍정이 가게 되기도 한다. ‘아낙’ 밑에 ‘군수’가 붙었기 때문에 ‘안악’과 ‘군수’를 연관지었으나, 반드시 ‘아낙군수’뿐 아니라 지난날에는 관직명 같은 것을 끝에 붙여서 어떠어떠한 사람임을 나타내었던 낱말들이 있었다.

 비록 남도지방의 사투리이긴 해도 능력 없이 빈들빈들 놀면서 사람만 좋은 친구에겐 '무량태수'라 하여, 신라 때의 고을의 으뜸벼슬인 태수(太守)를 붙였는가 하면, 원두막지기에 대해서는 '외참봉'이라 하여 비록 종구품으로 최말단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백두(白頭)는 면한 참봉(參奉)을 달았다. 융통성이 없고 무언가 맺힌 데가 있는 것 같이 꽁해 있는 ‘꽁생원’에는 생원(生員), 어떤 자리에 오래 있는 ‘터줏대감’도 그런 종류라 할 수가 있다.

 ‘행주치마’만 해도 그렇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싸움에서 아낙네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주워서 날라 싸움을 승리로 이끌게 한 요인을 만들었다는 고사를 가지고 있지만, 임진왜란 전에 벌써 나온 <훈몽자회(訓蒙字會)>에 ‘행자쵸마호(帍)’라는 글자가 나오는 것인데도, 굳이 행주산성의 싸움에다가 갖다 붙인 것뿐이었다.

 ‘개평’이라는 말이 경기도의 가평 떡과 연관 지어 있는 것도 모두 그런 따위이니, 안성맞춤을 안성 땅에 관련시키는 것이 어학적으로는 무근한 것임을 밝혀두고 싶을 뿐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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