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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얼’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8. 4.

 

‘얼’의 어원

 


 

 

겨레의 얼, 나라의 얼 등에 보이는 ‘얼’이 ‘정신’ 또는 ‘혼’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옛말에서는 ‘얼’이 ‘정신ㆍ혼’으로 쓰인 예가 없다. 정신이나 혼의 뜻으로 쓰인 말은 ‘넋’이 있을 뿐이다.

 얼이 혼이나 정신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舊韓末)에 보이기 시작한다. 정인보(鄭寅普) 선생이 쓰신 <조선민족 5천 년의 얼>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처음 쓰이지 않았나 한다.

 ‘얼’이 옛말에서는 명사로 쓰인 예가 없다. ‘얼’은 옛말에서 ‘어리다’ 즉 ‘어리석다ㆍ홀리다’의 뜻을 지니는 어간인 것이다. 옛말에서 ‘얼빠지다’는 갈피를 못 잡다의 뜻이지 얼, 즉 정신이나 혼이 빠졌다(拔)의 뜻은 아닌 것이다. 얼간, 얼치기와 같이 얼은 어리석다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얼’의 경우는 어느 한 사람이 잘못 알고 쓴 말을 언중(言衆)들이 그대로 따라 공인을 받은 말이라 하겠다. ‘얼’이라고 하는 말은 이미 정신ㆍ혼의 뜻을 지니는 말로써 공인을 받은 말이라 하겠고, 아무 저항감 없이 쓰이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 서정범 : <어원별곡(語源別曲)>(범조사. 1989) -

 


 

 

정신ㆍ넋 따위 뜻으로 ‘얼’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특히 신문ㆍ잡지가 이 말을 즐겨 씀으로 해서 이 말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3ㆍ1절이나 8ㆍ15를 전후한 신문은 이 ‘얼’이란 말 한 번쯤 난 들먹이고는 못 지내겠다는 양 쓰고 있어 ‘겨레의 얼’ 같은 말은 그야말로 겨레의 얼을 되새기고 전진해 나갈 힘의 근원으로 쓰이고 있다. 넋이란 뜻으로보다 그것은 올바른 주춧돌로서의 정신 상태 쪽으로 치중하여 쓰이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얼이라는 말을 그러한 뜻으로 쓰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얼빠진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양주동 박사 같은 분이 그러한데, 얼이라는 말의 시작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쓰이는 것 같은 ‘얼’은 그야말로 180도의 방향 전환이라는 것이다.

 '얼빠진 자식'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른 생각하면 ‘넋 빠진 자식’, 또는 ‘정신 나간 자식’으로 되어, ‘정신’이나 ‘넋’을 이야기하는 ‘얼’ 같이 생각된다고 해도 ‘얼’이라는 말의 본의는 흠이 있고, 덜 되고, 미련하고,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고, 어리고 같이 되어, 하나같이 지금 쓰고 있는 ‘얼’과는 거리가 180도 저쪽이라는 말이었다.

 ‘얼간이’나 ‘얼간망둥이’는 ‘주책없고 모자라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요, ‘얼떨떨함’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이며, ‘얼뜨기’는 ‘다부지지 못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며, ‘얼버무림’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함’이며, ‘얼뚱아기’는 ‘제정신이 없는 아기’인 외에도, ‘얼빠지다’는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정신이 나가다’는 뜻보다는 ‘멍멍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어서 ‘얼’이란 말은, 그 시작을 모르고 더뻑 쓰기로 드는 ‘얼뜬’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가령, 그렇다고 해도 이제 이르러, ‘얼’이라는 말이 그런 어원론에 의해 스러질 수는 없다. 또 반드시는 그쪽에서만 어원을 캐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말이란 묘한 것이어서 본디의 시작에서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소지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인데, 그 한자에서 온 말이 순수한 우리말 같이 쓰이면서 작은말호서의 ‘얌치’라는 말 역시 ‘염치’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리고 그 ‘얌치’가 ‘얌칫머리 없는 녀석’ 같은 말 때문이었을까, 그 정반대의 뜻으로 일반에서 쓰고 있음을 보며,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로서 ‘여간’을 써야 옳은 것인데도, 일부 지방에서는 그냥 ‘여간 좋다’고 하면서 ‘아주’라는 뜻으로 쓰기도 함을 보는 것이다.

 ‘얼’이라는 말이 ‘정신’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면, 사실은 그것이 합리화될 논거가 없는 것도 아닐 것 같다. 우리의 고어에서 ‘알’ 같은 말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알’은 말하자면, 모든 일과 몬(事物)의 핵심이며, 종심과 같은 말이었다. 지금 우리의 지명에 쓰이고 있는 ‘아리’ㆍ‘아라’ㆍ‘어라’ㆍ‘어란’ㆍ‘오란’ㆍ‘오라’ 같은 것이 어떤 한자로 쓰이고 있건 간에 그 ‘알’을 음사(音寫) 한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그 ‘알’은 ‘알(卵)’ 같은 말의 시작이었다 할 수 있고, 동시에 ‘얼(정신)’의 시작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알’은 가시적 형체를 지닌 ‘알’이요, ‘얼’은 형체를 지니지 않은 형이상학적 ‘알’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얼’을 상징하는 것은 결국 인체에 있어서는 ‘얼굴’이라고 할 수도 있어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얼’이 어떤 것인가 하는 가상(假像)이 그대로 나타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얼우다’라든지 ‘얼이다’ 같은 중세어는 혼인시킴을 이르는 말이지만, ‘얼’을 정신으로 생각할 때 우리네 할아비들의 결혼관은 오히려 육체의 결합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훌륭한 사상적 편린까지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정신과 정신을 합치면서 ‘혼인한다’는 개념을 형성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얼’은 ‘정신’이라는 뜻을 나타낸 훌륭한 우리 고유어이다. ‘염치’를 알아야 할 ‘얌치’가 ‘얌치 → 얌체’로도 쓰이는 판인데, ‘얼’의 경우야 떳떳하게 그루터기까지 댈 수 있는 말이 아니겠는가?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을유문화사. 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