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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서방님'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8. 23.

 

'서방님'의 어원

 

 

 ‘서방님’ 하면 간데없이 <춘향전> 속의 이도령 생각이 날 정도로 지금에 와서는 ‘남편’이라는 개념과는 멀어져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그 말에서 풍겨 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측면뿐이다.

  백두(白頭)로 벼슬 없는 사람에게는 ‘서방’이라는 호칭이 붙어 다녔던 지나간 전통사회의 언어였다. 장가든 김 씨에게 벼슬이 없을 경우 ‘김서방’이라 불렀던 것이고, 미천한 사람을 지체 있는 사람들이 달리 부를 수 없을 때 부르기도 한 ‘서방’이며, 거기에 ‘님’ 자를 붙여서는 이를테면 결혼한 시동생을 부르면서 쓰이던 것인데, 요즘 남아있는 '서방'이라는 말은 '서방질'에 '샛서방'ㆍ'기둥서방' 같이 속된 말에나 그 흔적을 담고 있다 싶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게 그예 서방을 꿰차고 달아나고 말았단 말이야.” 하면, 생때같은 자식들 기줄근히 놔두고서 수절하지 못하고 개가해 버린 여인을 두고서 경멸을 섞어 뱉는 말로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서방’은 한자의 ‘서방(西房)’이 그 말밑(어원)으로 된다고 말해지고 있다. 지금 사전을 펴 보면, ‘서방(書房)’이라는 한자로 쓰게 나와 있지만, 그 ‘書房’이라는 한자를 가지고도 ‘서방’이라는 뜻에 걸맞아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글씨 쓰는, 혹은 글 쓰는 방(房)이 ‘書房’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것인데, 그러나 지난날 아직 벼슬길에 나서지 못한 새내들은 모름지기 글방에 있어야 한다는 데서부터의 ‘書房’이었다고 한다면 그런대로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좀 뜻이 아리송해서인지 옛날 노인네들이 편지 쓰는 것을 보면 ‘書房’ 대신 ‘書方’이라 쓰던 것도 있었다고 기억이 된다.

 ‘西房’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에는 그 근거가 따르고 있다.

 옛날에는 장가를 든 신랑을 위해서 신방을 차릴 때는 서쪽에 있는 방을 골라 마련했던 모양으로, 거기서부터 ‘西房’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혹 불교의 영양 아래 서방정토(西方淨土)나 서방극락(西方極樂)을 염두에 두어, 새 출발에의 행복을 비는 마음이 곁들였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그랬었다는 것은 아니다.

 <태평한화골계사(太平閑話滑稽事)>에는, ‘俗謂壻爲西房 盖在西房也 有一宰相多壻 新婚入西房 舊壻寓斜廊 一日宰相自公還家 日已昏黑 不辨人面 舊壻庭謁 丈翁曰汝西房 舊壻應聲曰 我是斜廊 俗戱舊壻曰斜廊’ (속세에서 사위를 서방이라고 하는데, 서쪽 방에 있기 때문이다. 사위를 많이 가진 한 재상이 잇었는데, 새 혼가 때면 서쪽 방으로 들여보내고 묵은 사위는 사랑방에 살게 했다. 하루는 재상이 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날이 저물어 있어 사람을 못 알아볼 만했다. 묵은 사위가 뜰에 나와 뵈온즉 장인 영감은 ‘네가 서방이냐?’ 하니 묵은 사위는 대답하여 ‘저는 사랑이올시다’ 한 데서 장난 섞인 속언으로 묵은 사위는 사랑이라 한다.)의 기록이 있는 모양이다.

 서쪽 방에 거한다 해서의 ‘서방’이라고 하는 말에 다소 긍정이 가는 것은, 이를테면, 왕궁으로 보아 동쪽에 기거해서의 ‘동궁(東宮)’이라는 말 외에도 남향집이라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었던 가옥 구조 시대에 북쪽 깊숙이 기거하는 어머니임을 일러서 ‘북당(北堂)’이라 하는 것으로 살폈을 때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한자에서의 발상 아닌 순수한 우리말 그것이나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書房’이건 ‘西房’이건, ‘書方’이건, ‘서방’을 표기하려면서 갖다 붙였다 하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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