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어원
아마 20여 년 전쯤이란다면 ‘화장실’이라 쓰인 곳으로 변의(便意)를 배설하러 가다가 깜짝 놀랄 수도 있었을 일이다. ‘火葬室’ 쯤으로 생각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아니, 그만큼 ‘화장실’이라는 말은 보급이 안 되어 있었다. 서양 물결 따라 서서히 들어온 ‘화장실’이었다.
고층건물의 화장실들은 대체로 그래도 합격권에 드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요즘의 우리 실정이다. 더운 여름날이면 그곳에 설치된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으면서도 냄새 같은 것은 도무지 없는 것이니, 가위 ‘화장실’ 그 이름에 손상은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름은 ‘화장실’이건만, 머리 위에서 ‘팬’(다방 레지들은 이걸 일러 ‘후앙’이라 한다)이 냄새를 날리느라고 윙윙거리며 돌고 있는 것도 있다. 이건 어느 대학 교수가 지금, 이 구린내 나는 것에서 향료를 뽑는 연구를 하고 있다니, 그것이 성공될 때나 ‘화장실’이란 이름에 값할 화장실이 될 수 있겠다는 건지.
본디 프랑스어 ‘Toilette'는 ‘보자기’에 ‘화장대’ㆍ‘화장품’ 같은 것을 일렀고. 거기에서 출발한 영어의 ‘Toilet'은 화장(化粧)이란 뜻을 지닌 외에 복강수술 후에 그곳을 씻어내는 세척 따위의 뜻으로 쓰이던 것인데, 가옥의 구조가 목욕간에 수세식 변소가 딸리면서 '목욕간'을 이르게도 되고, 그러자니 ‘세면장’ 같은 뜻을 곁들이게도 되었던 것이다.
사실 수세식 변소의 뜻으로는 ‘water closet’라는 말이 있었고, 그래서 ‘화장실(toilet)'이라는 표지가 붙기 전에는 그 약자 ’WC‘가 우리의 변소에도 많이 쓰였던 것이어서, 그때만 해도 '나 워싱턴 카페(Washington Cafe)에 다녀올게!' 하는 말이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화장실’이든 ‘토일레트’든 ‘WC’든 간에 아무튼 그쪽 동네를 바로대어 말하기를 꺼리고 있는 심리 경향 그것만은 확실하다.
우리의 말 ‘변소’는 외면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便所’에서 출발된 ‘변소’나, ‘厠間’에서 출발된 ‘측간’만이 아니라, 지금도 더러 쓰이는 ‘뒷간’이라는 말이 있고, 이 또한 직설적인 표현 그것은 아닌 것이다. 뒷간 말고도 서각(西閣)ㆍ정방(淨房)ㆍ측실(厠室)ㆍ측청(厠圊)ㆍ혼측(溷厠)ㆍ회치장(灰治粧) 같은 말이 사전에 올라있는데, ‘장방’ 같은 것은 toilet 그것과 출발한 사상이 상통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건 그렇더라도 ‘똥 누러 간다.’는 말 대신 ‘뒤 보러 간다.’는 말도 있었던 것이니, 세면장과 화장대를 마련한 근대식 고층건물 속의 ‘화장실’은 또 몰라도 팬을 돌려 냄새를 가시게 하고 있는 곳에서는 슬쩍 ‘뒷간’ 정도의 표지가 어떨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말이 나오면 선뜻 ‘뒷간’보다야 ‘변소’가 낫지 하는 말이 나올 것도 같은데, 이 사상, ‘똥’이라 하면 더 누르끄름해서 더 더러운 것 같고, ‘변(便)’이라고 해야 덜 냄새나며, 덜 누르끄름하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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