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나물’의 어원
곤쟁이젓이라는 것이 있다. 곤쟁이는 갑각류의 열각류에 속하는 새우의 일종이다. 한자로는 노하(滷蝦) 또는 자하(紫蝦)라고도 하는데, 서해안 쪽에서 잡히는 이 새우를 젓 담근 것을 두고, 그쪽 사람들은 ‘자회젓’이라고도 한다.
‘자회젓’이라 함은 ‘자하젓’의 와음(訛音)이다 싶거나와, 보랏빛이 도는 이 자그만 새우는 연한 게 특징이어서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난다. 그리고 그 맛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달콤하다. 이걸 일러 ‘곤쟁이젓’이라 함은, 조선 왕조 중종 때 남곤(南袞: 1471∼1527)의 ‘곤’과 또한 심정(沈貞: 1471∼1531)의 ‘정’을 합친 ‘곤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이 있어 왔다.
남곤이나 심정은, 다 함께 저 이상정치를 꾀하다가 좌절된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일파를 숙청하는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사람들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기묘사화로 해서 온통 집안이 망하게 된 자손들 말고도 조광조 일파에게 기대를 걸었던 여항(閭巷)의 불만이, 그러한 곳으로 쏠림으로써 빗대어 욕하자는 게 아니었던가 생각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젓 담아버릴 사람’이라는 적개심이 한낱 서해안에서 나는 자그만 새우젓에 비겨지면서 후세인의 마음에 반영되었던 것이라고나 할 일이다. 이 ‘곤쟁이젓’과 같은 종류의 말로는 '숙주나물'이라는 것도 낀다. 전라ㆍ경상 등의 남쪽에서는 그저 '녹두나물'이라고만 이르는 것을 경기ㆍ충천 같은 중부지방으로 오면서 '숙주나물'이라고 하는 것인데, 물론 녹두에다 물을 부어 싹이 나게 한 다음 삶아 먹는다는 점에서는 콩나물과 다를 것이 없다.
이 숙주나물의 ‘숙주’를 신숙주(申叔舟: 1414∼1475)의 ‘숙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자면 앞의 ‘곤쟁이젓’의 경우와 같이 ‘숙주나물’로 신숙주 그 사람을 욕 뵈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신숙주는 성삼문ㆍ박팽년 등과 같이 세종 때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다 함께 고명(顧命)을 받은 몸이었으면서도 몸을 빼쳐 수양대군 편에 듦으로써 세조의 공신이 된 사람이었다.
신숙주의 그러한 처신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윤리관으로 생각할 때 반드시 '그르다'고만 못 박아버릴 수 없는 측면이 없는 바 아니지만, ‘중천에 해가 하나인 것과 같이 임금은 하나이며…’ 하던 당시 윤리관, 그리고 함께 선왕을 돕던 처지의 친구는 죽어가는데 그 죽이는 처지에 서는 의리 없음이 용납 못할 도의적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어서 그 자손들이 굳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두고도 부인이 남편의 변절에 상심하여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했느니 하는 말을 낳게까지 했던 것이다.
그는 후일에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을 죽이는 일에도 관계가 되었던 사람으로, 비록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서의 부귀와 영화가 따른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세상 사람들의 미워하는 마음이 작용하면서 '숙주나물'이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갖다 붙여 놓고선 곤쟁이젓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질근질근 씹으면서 말 못 하는 어떤 맺힌 마음을 풀어봤던 것이라 하겠는데, 역시 그 또한 '곤쟁이젓'과 같이 후세인의 공연한 말재주였다 함이 더 옳을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곤쟁이젓’보다는 조금 더 근거가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왜냐 하면, 신숙주 그 사람이 바로 녹두나물, 즉 숙주나물의 수입자였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수입을 했기 때문에 숙주나물이라 한다면, ‘곤쟁이젓’의 경우와는 달리 적개심 같은 것과는 관계가 없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유독 중부지방에서 쓰인다고 할 때 수입자건 그렇지 안 건 간에 신숙주의 이름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는 말만은 나오게 되어 있기도 하다.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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