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질놈'의 어원
네 살 먹은 사내놈이 동네방네 뛰어다니면서 배운다는 건 욕지거리다. 그래 배운 것까진 어쩔 수 없다고 쳐 두자. 하필이면 저를 낳아준 제 아비한테 그걸 풀어먹는지, 이놈 괘씸하다. 웃어넘길 수 없는 괴상한 욕을 하는데, 말 재산의 태반이 욕인 이놈에게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욕을 배울망정 다른 아이들과 얼려 노는 데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협동심을 기르는 따위, 얻는 것도 있다는 것으로 자위하려 해 보았다.
미국 사람들이 해방 후 이 땅에 진주하면서 이 땅 사람들이 맨 먼저 익힌 욕이 '갓 댐(God damn!)'인데 우리 생각의 표준으로 치면 욕이랄 수도 없는 것이 '신이여, 저주할지어다!'쯤의 뜻이 '갓 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군대 사회로 가거나 하면 좀 더 심한 욕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이보다 더한 욕에 ‘선 오브 어 비치(a son of a bitch)’ 같은 것이 있어서 굳이 따지자면, ‘개자식’ 정도에나 해당할 욕이라고 할 양이면, 우리에게 깔려있는 숱한 욕은 소름이 끼칠 것들이 많다.
남의 이야기보다도 어느 날 네 살 난 녀석이 울화가 터진다는 양으로 지껄이는 소리가 있었다. 왈, “우라질.”
요놈 봐라, 싶어졌다. ‘우라질’이라는 말은 서울ㆍ경기 일원에서 많이 쓰는 욕 비슷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라질’의 본디는 물론 ‘오라질’이다. 그렇대서 뭐 ‘오그라질’이 줄어진 그런 형태의 말은 아니다.
지난날 ‘홍줄’이라고 하고, 조금 유식하게는 ‘홍사(紅絲)’라고도 하던 것이 ‘오라’, 요즘 같으면 ‘수갑’이라 할까, 도둑이나 죄인을 묶던 줄이었다. ‘오라지다’는 말은, 그 오랏줄로 묶여 뒷짐을 지는 그런 형태였으니, ‘오라질 놈’ 하면 곧 나쁜 짓을 해서 포도청에 끌려갈 놈이라는 뜻이었다. 예나 이제나 죄가 있건 없건, 어떤 혐의를 받아 그쪽 동네에 끌려간다는 것은 물론 언짢은 일에 속했을 일이다.
그래, ‘오라질’은 ‘놈’이나 ‘년’이나 ‘친구’ 따위 이름씨(명사)를 전제한 어떤 꼴(관형사형) 구실을 했던 말인데, 지금의 쓰임은 그것 단독으로 오히려 느낌씨로 쓰이는 일이 많아지면서 ‘오’ 대신 ‘우’로 되어 ‘우라질’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본다.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때 상대방을 저주하면서 뱉는 느낌씨. 이 정도의 욕이라면 괜찮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오라질’이 ‘우라질’로 되는 것은, 이른바 우리말의 ‘어두운 홀소리 되기 경향(음성모음화 경향) 때문이다. '가시오'가 아닌 '가시우', ‘잡아먹다’가 아닌 ‘잡어먹다’가 실제의 말에서 쓰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