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어원
남편의 짝으로서의 여자. 여자는 일생을 살아나가면서 딸·아내·며느리·어머니·시어머니·할머니 등 여러 가지의 지위를 경험하게 된다. 거기에는 독특한 권리와 의무가 따르고, 각기 상응하는 행위규범이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아내라는 신분은 남편과 함께 한 쌍의 부부의 한 짝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라는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부계제이고 남자중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는 항시 남편에 딸린 제이차적인 사람이거나, 심지어는 예속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러기에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는 대등한 인간관계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남편은 한 가정의 ‘주인’으로, 그리고 아내는 그를 내조해 주는 ‘안사람’ 또는 ‘집사람’으로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하여 전통사회의 관념으로는 남편과 아내의 지위가 대등하게 되게끔 아내의 주장이 강화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가정의 균형을 깨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여 가정의 화합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철저한 예속과 희생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가 결코 대등한 인간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의 친족호칭체계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아내에 대한 호칭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점은 아내를 직접 부르는 친족용어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보’ㆍ‘당신’ㆍ‘자기’ 등으로 아내를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이 엄밀한 의미에서 친족호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러는 ‘애기엄마’ㆍ‘마누라’라고도 부르지만, 이것 역시 아내를 부르는 궁색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임자’라는 호칭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존댓말 또는 반존댓말과 함께 이런 호칭을 사용하면서 약간의 거리를 두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근래에는 특히 젊은 부부들 사이에 아내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이들도 혼인 후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경향은 줄어든다.
여하튼 이런 경향은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관계지시호칭의 경우에는 아내를 가리키는 다양한 호칭이 있다. 처ㆍ내자(內子)ㆍ내권(內眷)ㆍ실인(室人)ㆍ형처(荊妻)ㆍ내상(內相) 등을 비롯하여 부인ㆍ현합(賢閤)ㆍ망처(亡妻)ㆍ망실(亡室)ㆍ가인(家人)ㆍ존합(尊閤)ㆍ영부인ㆍ합부인(閤夫人)ㆍ사모님ㆍ고현합(故賢閤)ㆍ고영부인(故令夫人)ㆍ고실(故室)ㆍ졸처(拙妻)ㆍ세군(細君)ㆍ집사람ㆍ안댁ㆍ마누라ㆍ계집ㆍ아내ㆍ안사람ㆍ색시ㆍ여편네 등이다.
이것은 자신의 아내를 일컫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아내를 일컫는지, 또는 윗사람의 아내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아랫사람의 아내를 지칭하는지 등의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되는 맥락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아내를 지칭하는 경우
① 생존하고 있는 아내 : 처ㆍ내자ㆍ내권ㆍ졸처ㆍ형처ㆍ가인ㆍ집사람ㆍ마누라ㆍ아내ㆍ안사람ㆍ여편네,
② 아내가 사망한 경우 : 망처ㆍ망실
(2) 다른 사람의 아내를 지칭하는 경우 (존칭어)
① 생존하고 있는 아내 : 현합ㆍ존합ㆍ영부인ㆍ합부인ㆍ세군ㆍ사모님,
② 아내가 사망한 경우 : 고영부인ㆍ고현합ㆍ고실
(3) 다른 사람의 아내를 지칭하는 경우 (비존칭어)
① 생존하고 있는 아내 : 처ㆍ내자ㆍ실인ㆍ내상ㆍ부인ㆍ아내ㆍ안댁ㆍ집사람ㆍ안사람ㆍ마누라ㆍ계집ㆍ색시ㆍ여편네,
② 아내가 사망한 경우 : 망처ㆍ망실
우리의 친족호칭에서는 누구의 친족원을 지시하거나, 직접 부르는 것인지, 그것이 존댓말로 사용되는 것인지, 그 친족원의 생사 여부 등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상의 아내에 대한 직접호칭과 관계지시호칭을 비교해 보면, 직접호칭은 별로 발달되지 않았으나, 관계지시호칭은 비교적 풍부하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또한, 아내에 대한 관계지시호칭에서는 ‘내자’ㆍ‘실인’ㆍ‘아내’ㆍ‘안댁’ㆍ‘집사람’ㆍ‘안사람’ㆍ‘마누라’ㆍ‘계집’ㆍ‘색시’ㆍ‘여편네’ 등과 같이 존댓말의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는 호칭이 오히려 더 발달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윗사람의 아내를 가리키면서 이런 호칭들을 사용하는 것은 무례한 표현으로 간주된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남편과 아내 간의 관계가 아니고 아내를 상대적으로 낮추어보는 남성 또는 남편 중심의 가족제도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떤 사내의 짝이 되어 사는 계집이 아내다. 거기에 합법성을 띤다. 씨앗과 같이 제대로라면 눈총 맞는 존재를 쉽게 아내라 부를 수는 없다. 옛날이라면 가마 타고, 원삼 족두리 썼어야 하고, 요새 같으면 웨딩드레스라는 거 입고, 주례 앞에 섰던 계집. 그러고도 ‘내연’이라는 말이나, ‘혼인을 빙자한’ 같은 관사가 혹시 나중에라도 안 붙게, 그 혼인신고라는 것까지 한 계집, 그게 한 사내의 아내다. 이슬람교의 나라 아니니, 그 아내는 한 사내에게 물론 하나다.
그런데 사전에 따라서는 ‘아내’를 ‘안해’라 표기해 놓은 것이 있다. “나는 ‘아내’로는 표기 안 해!”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안해’로 표기 ‘안 해서’ 틀렸다느니, 그 ‘안’로 ‘안해’는 것이 옳다느니 할 계제는 아니다. 이건 ‘약속’의 문제니 ‘아내’든 ‘안해’든 그 방면 학자님네들이 정해놓는다면, 우리야 거기 따르면 된달 뿐이다.
그러나 ‘아내’를 ‘안해’로 표기하자는 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옛 문헌에는 한결같이 '안해'로 표기되어 있음을 보는 것인데, 오늘날에 와서 ‘안’과 ‘해’를 발음상으로 구별 짓지 않고 그냥 ‘아내’라 하니, 소리 나는 대로 ‘아내’로 적고 있음이 통례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과 같은 여성상위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말밑(語源)이야 어떻든 간에 '안해'로 적어 마땅하지 않냐고 조크를 한다. 이 사람의 말을 듣자니,
첫째는 '안에 있는 태양'이 '안해'의 존재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태양(해)은 남자 쪽을 상징해서 말했고 달은 여자 쪽을 상징해서 말하여졌던 것이지만, 오늘날에야 여성이 해 같이 되어 버린 사회 아니냐는 것이다.
둘째는, ‘아내’는 그야말로 집안에서의 발언권에 우위를 가져와 “안 해!”하는 거부권이 얼마든지 통하게 되어 있는 ‘남성무력시대’ 아닌가 하면서 싱긋 웃어 보인다. 복고 취향은 그만두더라도 어떻게 보거나 ‘안해’쪽이 적어도 오늘날의 세태에는 영합된 표기 태도가 아닌가고, 이죽거리는 말을 한다. 동석했던 대학 국문과를 나온 어떤 이는 이 말을 듣다가 다시 또 한 번 노란 해석을 한다.
“그건 당신 얘기구먼. 당신이 자꾸 주책없이 보채니까 당신 부인이 ‘안 해, 안 해’하고 거부할 수밖에.”
그는 다시 덧붙인다. 우리 중세어에 ‘해오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어우르다, 합치다’ 같은 뜻을 지녔으니, ‘안에서 어우르는 존재’가 ‘안해, 안해’ 하고 거부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할 수 없이 주어진 숙명 아니겠냐고.
‘안해’는 현대어로 '안에'라는 말이었다. ‘해’나 ‘헤’는 곳자리토씨(처소격조사)였으니, ‘안햇사람’ 하면 ‘안에 있는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었다. 요즘 같이 우먼리브가 어쩌네 하고 부리나케 쏘다니는 사람이 아닌, 다소곳이 집안을 가꾸며 남편 오기를 기다리는 ‘안에 있는 사람’이 곧 ‘아내’의 정상한 자리 아니었던 것일까? ‘아내’의 좌(座)가 곧 ‘안에’ 있음은 예나 이제나 본질적으로는 다름없다 해야 하지 않을는지. -
박갑천: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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