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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안국선 단편소설집 『공진회(共進會)』

by 언덕에서 2023. 8. 29.

 

 

안국선 단편소설집 『공진회(共進會)』

 

신소설 작가 안국선(安國善, 1878∼1926)의 단편소설집으로 1915년 안국선 자택에서 간행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단편집으로 의의가 크다. <인력거꾼> <시골 노인 이야기> <기생(妓生)> 등 3편의 단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밝힌 작가의 후기에 보면, 원래 3편 이외에 <탐정순사(探偵巡査)> <외국인의 화(話)> 등의 단편이 더 수록될 것인데, 당시 경무총장의 명령에 의해 삭제당했음을 알 수 있다. 『공진회』는 최초의 근대적 단편소설집이라고는 하나 소설집에 실린 개개의 작품은 신소설이나 고대소설과 흡사한 내용을 짧게 축약하기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적 묘사와 일상어 표현이 주가 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발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세 작품 중 <기생>에는 여성의 순정과 절개가 강조되어 있고, <시골 노인 이야기>는 동학란을 전후한 시기의 부패한 정치를, <인력거꾼>에서는 하층 계급의 생활 속에서 근로와 금주치부설(禁酒致富說)을 주장하고 있다.

 작가 안국선이 남긴 다른 작품 <금수회의록>이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공진회친일적이고 체제순응적이어서 매우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공진회』는 소설 속에 다시 사건이 이어지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서문'이나 '이 책 보는 사람에게 주는 글' 같은 것을 앞에 제시하여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과, 세 편의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쓴 것이 특색이다. 또한 일상어에 의한 표현이 주가 된 점에서 개화기 소설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기생>

 주인공 향운개는 진주에 사는 열다섯 살 된 기생이다. 그녀의 이름은 '춘향전'의 정절의 상징인 춘향의 '향'자와 '구운몽'의 만판 재주를 다 부려 양소유를 가지고 노는 가춘운의 '운'자, 그리고 일본 장수를 껴안고 물 속으로 뛰어든 충심의 상징인 논개의 '개'자를 뽑아 지은 것으로, 이 세 여인을 존경하고 따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인 퇴기 추월은 딸의 미모와 재주를 이용하여 부잣집 사람들의 재산을 긁어 모으려고 벼른다.

 한편 진주 성중에는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않고 화초첩 한 번 두지 않으며 검소하게 대대로 물려오는 재산을 지키고 있는 김부자가 있었다. 그런 그가 촉석루에서 논개의 제사를 지내던 향운개를 한 번 보고는 가슴이 떨리어 잠을 못 이룬다. 김부자는 사람을 시켜 재물을 그녀의 집으로 보내고 자기도 비단옷을 꾸며 입는 등 갖은 회유책을 다 써서 향운개를 소실로 데려온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김부자에게 오긴 했으나 향운개는 꾀를 내어 그곳을 빠져 나간다. 아편전쟁 때에 간호원으로 지원한 그녀는 많은 부상자 가운데서 '최유만'이라는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향운개가 어렸을 때 장난으로 같이 자고 나서 남편으로 섬길 것을 마음먹은 장본인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가연을 맺게 되고, 물산 공진회에 구경을 하러 온다.

▶<인력거꾼>

 주인공 김서방은 양반의 후예지만 게으르고 술을 좋아하여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간곡한 권고로, 앞으로 삼 년간 술을 끊고 인력거를 끌어 남부럽지 않게 살기로 한다. 그런데 인력거꾼이 된 김서방은 첫날 길에서 이만 냥이라는 큰 돈을 주웠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이 돈을 믿고 술을 마시자, 남편을 속여 그 일이 꿈에서 일어난 것인양 꾸미고는 돈을 경찰서에 갖다 준다.

 그 후 김서방은 삼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는데, 뜻밖에 경찰서에서 주인이 안 나타나니 돈을 찾아가라 하여 아내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경찰서에서 찾아온 돈을 내놓는다. 이에 김서방은 아내의 현명함에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인력거를 끈다.

▶<시골 노인이야기>

 마치 위의 <기생> 이야기처럼, 어린 시절 조부 사이 약속에 의해 정혼한 남녀가 정조를 지키고 지혜를 발휘해 행복하게 결합한다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한다. 동학운동 직후의 강원도 철원과 서울을 무대로 하여, 의병 봉기 및 진압 등 난리를 겪는 우여곡절 속에서 지난날에 혼인 약정이 되어 있는 남녀 주인공의 애정을 그린 작품이다.

 두 남녀주인공 김용필과 박명희는 어릴 적 같은 한 동네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만, 불가피하게 필연적 만남과 이별로 얽혀진 가정사와 전통윤리 및 봉건적 운명 속에서 겪게 되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은 단편소설 양식으로서의 액자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 세 편을 통해 공통된 것은 소설의 결말과 1915년의 '조선물산공진회'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생> 및 <시골노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공진회장에서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나고, <인력거꾼>의 김서방은 근면한 경제인으로 탈바꿈한 위에 습득했던 돈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횡재까지 하게 되어, “총독정치의 공명함을 평생 감사하게 여기던 터”에 공진회 보조로 돈 2백 원을 희사한다. 공진회를 소설집 발간의 동기로 하고 식민지 통치에 대해 긍정적 진술을 남기는 등, 『공진회』는 안국선이 중년 이후 일제에 순응하고 협력하였음을 잘 증명해 준다.

 단편집 『공진회』는 단편소설의 형태가 확립된 1920년대의 작품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으며, 근대적 단편소설의 형태를 정립하는 단계에 기여했다. 그 형태적으로 제한적인 질서하에 자(字)수와 매수의 제약이 전제되었으며, 단순 형태의 짧은 서사체와 달리 이 작품집에 수록된 3편의 작품은 균일하게 자수의 범위가 12,000~14,000자인데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6~70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근대뿐만 아니라 현대 단편소설의 분량에도 근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생>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을 배경으로, 진주ㆍ서울 및 중국 칭다오, 일본 동경 등의 무대에서 한 기생이 온갖 유혹과 환난을 물리치고 어렸을 때의 친구인 유만이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애정소설이며,

 <인력거군>은 1910년대 서울 거리에서 날품팔이하는 인력거꾼을 주인공으로 하여 서민층의 생활단면을 그리고, 그의 과도한 음주를 징계하기 위하여 그의 아내가 짜낸 지혜와 근면, 절약하는 삶의 자세를 부각한 작품이다.

 〈시골노인 이야기〉에서는 액자소설 구성을 실현하고 있다. 이는 현대에서도 시점의 원근법적인 객관화와 거리 조정, 호기심 유발, 서술 내용에 대한 신뢰성 고양을 위해 많이 활용되는 작법이다. 그의 이러한 전제가 있었기에 액자소설의 대표작인 김동인의 단편소설 〈배따라기〉를 보다 촉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작자는 이 작품집 서문에서 제목의 연유를 당시 열렸던 물산 공진회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소설의 오락성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에게 주는 글’에서도 소설의 교훈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소설관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인력거군>을 제외하고는 신소설이나 고대소설과 흡사한 내용을 길이만 짧게 축약한 단편이라는 점에서 근대적인 단편소설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그러나 <시골 노인 이야기>에서 보이는 액자구조나 <인력거군>에서 드러나는 사실적 묘사와 단편적 양식 등은 이들이 장편 신소설과 1920년대 이후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교량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 작품집이 최초의 근대적인 단편소설집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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