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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효석 단편소설 『황제(皇帝)』

by 언덕에서 2023. 8. 28.

 

이효석 단편소설 『황제(皇帝)』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이 지은 단편소설로 1939년 7월 [문장](제7집) 임시 중간호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최후를 표현한 작품으로, 고도에 추방되어 마지막 죽음에 직면한 영웅의 고통이 고통으로서보다는 극적인 비장미로 승화되어 있다.

 이효석은 초기에 경향문학의 동반작가로 출발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부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세계를 성의 문제로 해석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38년 이후에는 한편으로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세계를 지향하여 주의를 끌었다. 특히 「황제」는 서구적인 동경과 향수가 두드러진 작품인데, 일물일어식(一物一語式)의 분석적인 표현법 대신 시적 구문을 사용하고 있어 그의 후기 문학의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제와 3명의 의사, 시녀와 시종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은 나폴레옹이 과거를 회상하는 독백 형식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회상은 나폴레옹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게 된 과정과 로마 교황이 직접 파리로 와서 황제의 관을 씌워 주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만 해도 모든 유럽의 국가들이 무릎을 꿇고 자기를 무서워했건만, 발칙한 영국만이 자기를 거역하였다.

 그리고 결국 그들에게 패하여 절해고도로 유배를 왔다. 병이 들어 소풍을 원했는데도 수비대장 로오는 그 소원마저 들어주지 않는다. 한때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유럽 천지를 뒤흔들었던 자기였건만, 이제는 로오 한 사람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생각나는 건 지나간 영광의 나날들, 조세핀의 화려한 생활들이다. 내가 사귄 7명의 여자 가운데 그래도 가장 사랑했던 것은 조세핀이었다. 회상은 조세핀과 이혼한 후 황후로 맞은 오태리(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루이스에 대한 생각을 거쳐 지난날에 대한 후회로 이어진다.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범부의 일생을 보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워털루전투에서 전사했더라면 이런 치욕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걸, 모스크바에서 돌아와 목숨을 끊으려고 했을 때 측근들이 살리지만 않았던들 이런 비참한 최후는 맞지 않았을 걸 등. 조물주는 왜 이런 무대를 꾸며 놓았을까. 나는 조물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회상은 임종을 지켜보는 의사와 시종, 시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끝이 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회화[나폴레옹의 죽음].
 

 

 이효석은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거주지를 평양으로 옮긴 뒤에도 여름방학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주을 온천에서 피서생활을 즐겼다고 하니, 당시 시대 상황으로서는 상당한 서구적이고 이국적인 취미를 지닌 현대인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향토적 서정성과 상반되는 효석의 이런 취향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메주 내 나는 문학이니, 버터 내 나는 문학이니 하고 시비함과 같이 주제넘고 무례한 것이 없다. 메주를 먹는 풍토 속에 살고 있으므로 메주 내 나는 문학을 낳음이 당연하듯, 한편 서구적 공감 속에 호흡하고 있는 현대인의 취향으로써 버터 내 나는 문학이 우러남도 이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닌가. 메주 문학을 쓰든, 버터 문학을 쓰든 같은 구역, 같은 언어의 세계 안에서라면 피차의 명분이 유동되는 요소가 있을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메주 문학과 버터 문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요리해 놓은 작가가 이효석이다. 그는 자연 속에 나타나는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서정적인 미학으로 표현해 내 한국 근대 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였다.

 

 

 이 소설은 작중 인물 ‘나’의 체험적 일대기를 최후의 순간에 회상적 수법으로 1인칭 화자가 주로 압축, 요약하여 들려준다. 즉, ‘서술하는 나’와 ‘체험하는 나’가 일치하는 소설이다. 이것은 슈탄첼(Stanzel, F. K.)에 의하면 ‘의사자서전적(擬似自敍傳的)’ 화자가 존재하는 순수한 1인칭 소설에 속한다.

 임화(林和. 1908∼1953)는 당시의 창작평을 통해 “「황제」는 인간적 위대성에 대한 아름다운 로맨티시즘이 높게 물결치는 작품”이라 평가한 바 있다.

 “오늘이 올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무엇을 모르랴. 내 무엇을 겁내랴. 차라리 이 불측한 곳을 한시바삐 떠나고 싶다. 시저도 결국 세상을 떠나고야 말지 않았던가.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내 세상을 떠나면 다시 구라파로 돌아가 샹제리제를 거닐고 세느강가를 헤매이며 부하들과 만날 것이다.”

 여기에는 만물은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우주의 법칙에 굴복한 주인공의 비장한 고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생의 비참함이나 고통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지 않고 정신적 미의식으로서 표현되어 있다. 이 말은 「황제가 그와 같은 고통과 비참함을 행복한 것으로 미화했다든지, 현실에서 고의로 눈을 회피한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떠한 비참함이나 고통마저도 그것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임화가 「황제를 로맨티시즘이라 평한 것도 바로 이 점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