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최일남 단편소설 『누님의 겨울』

by 언덕에서 2023. 9. 4.

 

최일남 단편소설 『누님의 겨울』

 

 

최일남(崔一男, 1932~2023)의 단편소설로 [문학사상](121호. 1982.11)에 발표되었다. 최일남은 1959년 [민국일보] 문화부장을 시작으로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문화부장을 지내고, 1980년 [동아일보] 편집부 국장에서 해직될 때까지 언론 활동에 주력하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의 소설이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1970년대 이후이다. 이 시기에 그는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고향을 배경으로 그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 이른바 '출세한 촌놈들'이 겪어야 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더러는 쓸쓸한 비애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는 주제는 이처럼 흔들리는, 좌절하는 한국 사회의 소시민들이 누리는 삶의 허구이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직시하며 편중되지 않는 시각과 예리한 비판으로 사회성을 견고하게 갖춘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데 진력해 왔다. 이와 함께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스민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어루만지려는 글을 써왔다. 

 이 작품은 창작집 <누님의 겨울>(정음사. 1984)에 실린 표제작으로, 한 가족사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 내지 애정이 사상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나'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사상보다도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도외시하던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위인 누님은 두 번이나 결혼했으나, 소박을 맞고 쫓겨나 친정살이를 하고 있다. 나는 누님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결같이 나를 감싸주는 누님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누님을 쥐어박으며, 욕을 해대고, 어떤 때는 같이 죽자며, 서럽게 우는 것을 볼 때는 마음이 심란하고 아프다.

 그러던 중 광복이 되어 신탁통치를 두고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세상은 뒤숭숭해진다. 양측은 서로 질세라 군중대회를 열었고, 상대방에 대한 습격과 파괴가 잇달았다. 누님의 세 번째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상대방은 아웃 동네에 사는 홀아비로, 마흔이 넘었고, 딸린 식구가 셋이나 되었으며, 직업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 집도 사정이 급했으므로 누님을 시집보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못 되어 누님은 돌아왔고, 매부도 독 따라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매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속닥거리고 등사판을 밀어 무언가 찍어내고, 또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매부는 공산당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에 누님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누님에게 일에서 손을 떼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누님은 매부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어머니도 차차 매부의 일을 도와주었다, 매부가 당신의 딸을 위해주고, 사람대접해주니, 거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머니께도 그만두도록 말했으나, 어머니 역시 막무가내였다. 그러다가 누님이 경찰에 붙잡혔다. 매부는 다행히 잡히지 않았으나, 그 뒤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얼마 만에 풀려나온 누님은 혼자 4, 5년을 살다가 신장병으로 죽었다. 누님은 죽기 전에 그때 왜 그렇게 열을 냈는지 모르겠다며, 남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소설가 최일남 ( 崔一男 , 1932~2023)

 

  1980년대 초기 최일남의 소설 가운데 돋보이는 문제 영역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해방 전후 상황의 소설적 재구성 작업이었다. 이 같은 소재의 발굴은 왜곡된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치고자 하는 역사적 비판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질곡 속에서 벗어난 해방이 민족 국가의 건설에 이르기 전에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개인사적 차원에서 정리하고 있다. <노래> <영웅들> <증인> 「누님의 얼굴」 등이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대개 두 가지 차원에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문제 삼는다. 하나는, 일제 지배하에서의 친일문제와 연관된 사회 윤리적인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민족 분단 과정에서의 이념의 충돌과 갈등에 관한 객관적인 설명이다. 작가는 해방 직후 친일파의 득세 과정을 보면서 민족정기를 내세워 단죄하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형태가 가능해진 사회구조적 모순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제에 항거하면서 곤궁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해방 조국에서도 여전히 좌절과 몰락의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 현실로 인하여 민족의 분열이 초래되고, 결국은 이념적 대립에까지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 이들 작품의 골격이다.

 

 

 최일남은 대표적 단편 <노래>와 「누님의 겨울」에서 <흐르는 북>, <그때 말이 있었네>에 이르기까지, 그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민감한 정치적 감각을 바탕으로 타락한 정치, 위선적인 지식인의 모습, 물질 만능의 세태 등이 역설과 풍자의 언어, 유창한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 가족사를 통하여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에 대한 사랑 내지 애정이 사상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인간적인 면을 완전히 도외시하던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의 과제로 남는다.

 이 작품에서 소년의 눈에 비친 누님의 행적을 통해 해방의 혼란기에 전개된 이념 투쟁이라는 것이 어떤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는가를 파헤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것이며, 그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이 작품은 해방 직후 전개되었던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투쟁의 모습을 소년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작중 소년은 이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누이가 남편에게 버림받을까 봐 투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였다. 작가는 소년과 그의 누이를 통하여 이념의 잣대로 인간애를 도외시하던 당시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