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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정한숙 단편소설 『전황당인보기(田黃堂印譜記)』

by 언덕에서 2023. 8. 16.

 

정한숙 단편소설 『전황당인보기(田黃堂印譜記)』

 

 

정한숙(鄭漢淑. 1922∼1997)의 단편소설로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은 한 전각가의 생애와 전각의 격조를 전하는 이야기이다. 잊혀가는 전통예술의 고아함을 일깨워주며, 한편 세속인들이 유구한 고전적 미를 상업적 감각으로써 몰각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우정의 미묘성과 사라져 가는 전통의 미풍을 단아한 문체로 그린 작품으로, 속에 눈이 먼 사람과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 사이의 갈등과 삶의 애수를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사라져 가는 우정과 전통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그리고 있는데, 작가의 문체상의 특징인 전아함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에서 수하인의 인격과 취미가 적절히 내면화된 점은 오늘날과 같은 세태에서 마음을 기울일 만한 숨은 뜻이 담겨 있는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소설가 정한숙(鄭漢淑.1922-199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친구인 석운이 벼슬을 하자, 수하인 강명진은 정표로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선사하고 싶어 하던 중 우연히 석재 한 방을 발견하고 흥분에 찬다. 그것은 십오륙 년 전쯤 서화를 즐기던 거부 이모가 보여주던 바로 그것이었다. 전황석의 값을 따지면 금값의 열 배가 넘지만, 수하인은 그것보다는 석운에게 줄 만한 내력 있는 물건을 구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도장을 파기 시작한다. 온갖 정성과 땀으로 완성된 인장 한 방을 산홍이 풀칠한 양단 헝겊으로 만들어 준 갑 속에 넣고, 수하인은 새로운 싹이 돋아 오르는 모양 흐뭇해한다.

 석운을 찾아갔으나, 그는 없었고, 그의 아내를 만나는데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무슨 골치 아픈 부탁이라도 하려고 찾아온 것으로 넘겨짚어 수하인을 대한다. 그의 아내는 가끔 청탁조로 들어오는 뇌물을 받아 축적하는 재미가 한창인 터라, 수하인의 선물이 그저 하찮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석운이 들어오자 그의 아내는 수하인이 머리가 돈 것이 아니냐며, 격이 낮다고 험담을 한다. 석운 역시 수하인의 인장 선물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수하인다운 일이라는 생각밖에는.

 석운에게는 교분이 두터운 오준이라는 친구가 있어 늘 그의 집을 무상으로 출입하고 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석운을 찾아왔다. 그러자 석운은 수하인이 가지고 온 인장을 내보이는데, 오준 역시 수하인을 조금 아는 터라, 천지가 변해도 수하인의 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나누며 인장이 별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리하여 오준은 석운에게 결재 도장 하나를 새겨다 줄 것을 약속하고는 그 인장을 들고 나와 도장 가게로 들어가 맡기고 다른 인장을 판다. 마침 도장 가게 주인이 수하인을 아는 사람이어서 다른 도장을 파는 대신 수하인의 인장을 사들여 그것을 다시 수하인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도장방 주인은 수하인으로부터 그 인장을 새긴 돌이 전황석이라는 말을 듣고는 취기가 싹 가심을 느끼는데, 수하인은 그것이 도장방 주인의 복이라며 받지 않는다.

 다음날, 수하인은 오준이 주문한 도장을 직접 계혈석에 새기며 전황석을 새기던 때의 솜씨가 이님을 느낀다. 도장방 주인 역시 인면(印面)을 들여다보면서 수하인의 솜씨라 하기엔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수하인은 산홍을 옆에 앉힌 후, 참지 한 권에 천 개나 되는 인장을 연대순으로 찍고, 맨 나중에 전황석 한 방을 찍어 놓은 뒤, 산홍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을 그림 인보를 보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산홍이 연적의 물을 따라서 먹을 갈자, 수하인은 인보의 표지에 전황당인보라고 썼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사라져 가는 인장예술(印章藝術)의 말로에 대해 애석해하는 눈을 감출 수 없었고, <고가(古家)>(1956)에서도 정도는 덜하지만, 지난 시절을 돌이켜 추억하는 정(情)은 머물러 있었다. 전황당(田黃堂)의 ‘전황(田黃)’은 ‘전황석(田黃石)’으로서 인장용 석재 중 최고의 것이다. 명장 ‘수하인’이 친우 ‘이적운’의 이름을 그 돌에 정성껏 새겨, ‘석운’이 관계(官界)에 오른 기념으로 선사하지만, ‘석운’은 그 값어치를 모르고 한 부하직원의 말에 좇아 돌보지도 않는다.

 그 인장은 부하직원의 손을 거쳐 어느 도장포로 넘어가는데, 그 도장포 주인은 옛날 ‘수하인’으로부터 인장술을 배운 사람이어서 대번에 그 인장의 솜씨가 누구인 것인가를 알아채고 ‘수하인’을 찾아가 그걸 돌려준다. 친우에의 정성을 이처럼 허망하게 반환받은 ‘수하인’은 부박한 현실에 대해 심한 환멸을 느낀다. 작자가 이 소설을 한물 간 글투로 쓴 것은 고풍한 맛을 들이기 위한 것 같고, 또 대단한 생략적 문장을 쓴 것은 암시적 효과를 노린 것 같다. 그 결과 고풍한 운치는 살아있지만, 산문 본래의 리얼리티보다는 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한 전각가의 생애와 전각의 격조를 알리는 이야기로 잊혀가는 전통예술의 고아함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한편 세속인들이 그러한 고전적 미를 상업적 감각으로써 몰각하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작가는 기품 있고 품위 있는 고전적 가치가 세속적인 속취미에 의하여 잊혀가고 무시되고 몰각되어 가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수하인의 인격과 취미가 적절히 내면화된 점은 오늘날과 같은 세태에 있어서 마음을 기울일 만한 숨은 뜻이 담겨 있는 좋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운 이경수가 벼슬을 하자, 야인으로 머물러 있는 수하인 강명진은 정표로서 전황석(田黃石)으로 새긴 도장을 선물하지만, 배금사상에 물든 석운 일가의 눈에는 망측한 돌덩어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속세에 눈이 어두운 사람과 문방사우를 만지며 사는 깨끗한 선비 사이에는 갈등과 애수가 깃든다. 이 작품은 전통의 현대적 파악이라는 측면을 가장 잘 뒷받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