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익 단편소설 『장삼이사(張三李四)』
최명익(崔明翊. 1903∼1972)의 단편소설로 1941년 4월 [문장(文章)]지 폐간호에 발표되었고, 1947년 같은 제목의 단편집이 발간되었다. 흔히 우리 문학의 최악의 암흑기로 묘사되는 시기에 발표된 소설로 그 문학사적 의의가 있다. 암담한 역사적ㆍ사회적 환경이 암암리에 이 소설의 분위기에 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명익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일제 강점기의 한 시대를 지배했던 사회 분위기의 한 단면을 증언해 주는 기록들이며, 동시에 현재적인 문제의식으로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소설이다. 현실 세계의 폭력적 구조와 지식인의 소외 의식을 심층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소설의 이야기는 혼잡한 기차 안이 중심 무대로 기차 안에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데서 시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과 신사가 모두의 흥밋거리가 되고, 그들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인간의 치부와 소시민성 그리고 시대적 고통이 깊어진다. 이 모든 것이 '나'에 의해서 포착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3등 열차를 타고 기차여행을 하는 나는 우연히 같은 자리에 앉게 된 일단의 사람들을 방관자의 눈으로 관찰한다. 기차 안은 지저분하고 혼잡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리가 어느 정도 정돈되었을 때, 목도리를 두른 한 농촌 젊은이가 무심코 내뱉은 가래침이 나와 마주 앉은 신사의 구두 콧등에 떨어진다. 두꺼비 같은 인상의 신사는 가래침을 털어내느라 호들갑을 떨어 주위사람들에게 반감을 산다.
그는 도망친 여자를 붙잡아 돌아오는 포주로, 회색외투를 걸치고 담배를 줄곧 피워대는 젊은 여자를 옆에 앉혀 놓고 감시하는 눈빛이다. 그가 변소에 간 사이에 검표원이 차표를 검사하자, 젊은 여자는 그 신사가 가져가서 차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당꼬바지'가 먼저 돈벌이로는 색시장사가 제일이라며 불쑥 말문을 열고 '가죽재킷'이 맞장구를 친다. 결국 포주인 신사를 화젯거리로 삼아 흉을 보다가 그가 돌아오자 입을 다문다. 자리에 돌아온 신사는 사교적인 웃음과 말씨로 사람들에게 술을 권해 어설픈 술판을 벌이고는 자신의 사업(색시장사)이 돈벌이로는 그만이지만 이 장사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속물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주위사람들은 그의 말에 동조하며 약자인 천한 여자에 대한 정신적 가해를 즐기고 그런 모습에 나는 심한 역겨움을 느낀다. 여자는 좌중의 희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만 피워댄다.
기차가 S역에 도착하자, 다시는 도망치지 말라고 여자에게 으름장을 놓고 내릴 채비를 하던 신사가 한 청년을 발견하고 소리쳐 부른다. 신사는 아들인 듯한 그 청년이 다가와 옥주라는 색시가 달아나 형이 찾으러 갔다고 말하자 느닷없이 청년의 뺨을 때린다.
청년으로부터 달아난 옥주 역시 잡혀서 돌아오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신사는 분이 좀 풀린 듯 여자와 차표를 인계하고 차에서 내린다. 신사가 내린 뒤 자리에 앉으려던 청년은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화풀이를 하듯 여자의 뺨을 몇 차례 때린다. 여자는 울음을 참는 듯 입을 꼭 다물었고 눈에는 눈물이 어린다. 나는 그 눈을 마주 볼 수 없어 얼굴을 돌리고 만다. 잠시 후 변소에 간다며 여자가 자리를 뜨자 기차에 새로 탄 사람들은 그녀가 왜 매를 맞았는지 궁금해하고 청년은 '우스운 일'이라며 아버지에게 맞은 화풀이를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여자가 쉬 돌아오지 않자, 나는 그녀가 모욕을 참기 힘들어 혹시 혀를 물고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초조해한다.
그러나 잠시 후 나의 망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여자는 무사히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어느새 화장까지 고친 뽀얀 얼굴로 태연스레 "옥주년도 잡혔어요?"라고 청년에게 묻고는 이제 가서 만나면 더 반갑겠다고 말한다. 그녀의 귀환에 안심하던 나는 뻔뻔스럽게 느껴질 만큼 강인한 그녀의 생명력에 무슨 까닭인지 껄껄 웃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제한다.
이 작품은 관찰ㆍ지각자인 은둔 작가 ‘나’의 눈과 의식으로 사건의 흐름이 서술되고 있는 일인칭 형식의 소설이다. 한 시대의 역사적·사회적 건강성을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의 예사로운 사건으로 진단, 측정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평범성은 소설의 제목과 그들을 가죽재킷이나 당꼬바지, 곰방대 영감 등으로 지칭하는 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자기 나라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시절의 민족적 슬픔이 이 소설에서 간결히 형상화되어 있다.
몸과 정신을 잃고 또는 더럽히면서 생존하여야만 했던 시대적 고통이 예사로운 사람들의 눈을 통하여 고발되고 있다. 작가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서술 주체의 진술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강한 결백성을 살필 수 있다.
♣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혼잡한 3등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사건을 중심으로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 세태소설이다.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를 일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섬세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암울한 식민지시대의 말기적 증후와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정인택(鄭人澤)ㆍ이상(李箱) 등과 더불어 심리주의소설을 개척한 최명익의 대표작으로, 제목처럼 3등 열차를 탄 사람들의 속물적인 행태를 묘사함으로써, 인간관계의 단절성과 인간본성의 비열함을 리얼하게 형상화하였다. 특히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한 성격의 창녀를 통해 척박한 식민지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했다.
☞정인택(鄭人澤.1909∼1952) :
소설가. 서울 출생. 유명(幼名) 정태양(鄭太陽). 언론인 정운복의 차남으로 출생.박태원(朴泰遠)ㆍ윤태영(尹泰榮)ㆍ이상(李箱) 등과 가깝게 지냈다. 이상의 단편소설 <환시기(幻視記)>에서 ‘송군’이 실제 정인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상이 경영하던 카페 [쓰루(鶴)]의 여급 권순옥을 사랑한 나머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매일신보]와 [문장사] 등에서 기자를 역임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면 우리 소설들도 다양한 서술 양상을 보여준다. 정인택은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소설을 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심리소설로 분류된다. 과잉된 의식세계와 생의 무기력성이 그려지고 있거나 신변적인 일상과 애정이 내부 초점화로 기술되고 있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은 흙과 흰 얼굴> 등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정책의 이념을 허구에 반영하고 있는, 이른바 친일 문학으로 비판되기도 한다. 또한 <색상자(色箱子)> <해변> 등도 친일적 색채가 매우 농후한 소설이라 지적되고 있다.
정인택 소설의 내용과 그의 문단 활동 및 교우 관계로 볼 때 사회주의적인 의식이 뚜렷한 작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6ㆍ25전쟁 때 월북한 탓으로 ‘월북작가’라는 낙인이 찍혀 우리 문학 연구의 담론에서 외면되어 왔었다. 이제 그의 전 작품이 해금된 이상 그의 소설의 기법상의 가치를 중심으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가의 소설집으로 1948년 금룡도서에서 출판한 <연연기(戀戀記)>가 있으며, 그 외에 평론으로 <불쌍한 이상(李箱)-요절한 그들의 면영(面影)> <작중인물의 진실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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