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익 단편소설 『심문心紋)』
최명익(崔明翊, 1903∼1972)이 지은 단편소설로 1939년 6월 [문장(文章)]지에 발표되었다. 최명익은 해금작가(解禁作家)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납북이나 월북한 작가는 아니고 태어난 곳(평양)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8ㆍ15 후에도 평양에서 창작 활동을 한 작가였다. 하지만, 그가 짧은 기간 동안 발표한,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 뚜렷한 성격을 지니며, 강렬한 예술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상의 <날개>에 비견되는 심리주의 작품 「심문」은 탁월한 심리묘사 속에 시대와 생활의 문제를 밀착시킨 작품으로 한국 소설이 도달한 높은 수준의 하나로 평가된다.
최명익은 해방 후 9월에 [평양예술문화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46년 3월에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상임위원, 평남도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주로 역사물의 창작에 전념하면서 임진왜란을 그린 <서산대사>(1956)를 발표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평양문학대학에 재직하면서, 1957년에는 항일 무장투쟁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집필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의 사망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정도로 추측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명일은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화가이다. 어린 딸은 학교 기숙사에 있고, 그는 신혼 당시 신축해서 살던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난다. 그는 친구 이 군을 만나려고 하얼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은 여옥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리러 온 곳이었다.
여옥은 과거 동경에 유학한 문학소녀였고, 청년 투사 현혁의 연인이었으나, 명일이 출입하던 다방의 새 마담으로 오게 되어 그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낮과 밤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여 주관적인 모습과 객관적인 사실이 교차되어 나타나 명일의 처의 모습과 닮았으나, 또 다른 면이 있는 여인이었다. 1년 전, 여옥은 명일을 사랑하였으나 그가 부인을 못 잊어하는 것을 알고 그녀는 첫 정을 주었던 현혁을 찾아 만주로 떠난 과거가 있다.
명일은 이번 여행에서 여옥을 만날 의도는 없었으나, 이 군의 안내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한때 사회주의 운동가로 유명하였던 현혁과 여옥이 동거하며, 둘 다 아편 중독자가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혁은 화를 내며 명일에게 둘 사이에 개입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나, 결국은 아편을 얻기 위해 여옥을 명일에게 양도한다. 그러한 현혁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낀 여옥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최명익이 그의 고향 평양을 중심으로 간행한 동인지 [단층]이 등장한 1930년대 초는 이 땅의 문학이 근대문학적인 성격에서 현대문학적인 성격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고 ☞조연현은 그의 <한국문학사 개관>에서 지적하고 있다.
「심문」을 포함한 이 무렵의 최명익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인 허무에 사로잡힌 생활의 무능력자이거나, 아니면 절망적인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 말기의 어둡고 암울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 같은 말기 문학의 특성 중의 하나가 심리적ㆍ사상적으로 허무적이고 절망적인 색채를 농후하게 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최명익은 1930년대 지식인 소설의 대표적 작가인 이상(李箱), 1950년대의 손창섭(孫昌涉)으로 이어지는 심리소설의 지평을 열어 놓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말기적 증후를 드러내었다.
♣
이 소설은 시대적 현실에 의하여 전락하고 있는 세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있다. 한때 젊은 독립투사로 사회주의 사상운동의 지도적 이론가였던 현혁은 감옥 생활 후 자포자기한 마약중독자로 전락하였고, 여옥도 유학생 문학소녀에서 다방 마담ㆍ모델ㆍ댄서로 점차 전락하였다. 주인공 김명일도 아내의 죽음 이후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점차 방랑하는 방탕아로 전락해 왔다. 최명익 소설의 주인공들은 흔히 「심문」의 주인공 김명일처럼 현실에 절망하는 무기력함을 보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현재에 비하여 행복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의 파라다이스를 잃어버리고 현재에서 실낙원의 이방인 삶에 고뇌하고 있다. 1930년대라는 역사적ㆍ사회적 현실의 악화가 이러한 양상으로 소설에 반영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시대적 병리 속에서 고뇌하고, 좌절하는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구성과 기차 속에서 의식의 흐름 및 명일과 현과 여옥의 심리 관찰은 탁월하다. 그 위에 하얼빈을 무대로 했다는 점과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파탄을 파헤쳤다는 점 등은 생활과 시대를 밀착시킨 증거이다.
☞조연현(趙演鉉. 1920∼1981) :
문학평론가. 호 석제(石濟). 경남 함안군 여항면 출생. 창씨 명 덕전연현(德田演鉉). 배재고보 졸업, 혜화전문 중퇴.
1938년 시동인지 [아(芽)], 1939년 [시림(詩林)]을 통해 활동하고, 1945년 순문예지 [예술부락] 주재, 이때부터 역사적, 사회적 혼란에 자극받아 시보다 평론에 주력하고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인 1946년에는 김동리, 서정주와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 [문학가동맹]의 좌경적 문학운동을 분쇄하고 민중문학을 건설하는 데 앞장서는 등 한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무렵 [민국일보] [민중일보] 등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했다. 1949년 창간된 [문예]지의 주간을 맡았다.
예술원 회원(1954), [현대문학] 창간, 발행인 겸 주간(1955), 동국대 교수(1960), 예술문화윤리위원회 위원장(1971), 문학평론가협회장(1971), 예술원 문학분과위원장(1972), 팬클럽 한국본부부위원장(1972), 한국문인협회 이사장(1973), 한양대학교 문리대 학장, 잡지협회장 등 역임. 예술원 공로상, 국민훈장 동백장, 3ㆍ1 문화상, 문화예술상, 5월 문예상 수상.
1981년 부부가 함께 동남아 순방 여행 중 귀국길에 11월 22일 일본에 도착했으나, 24일 일본 동경 가이엔(外園) 호텔에서 갑자기 심근경색증세를 일으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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