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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단편소설 『곰 이야기』

by 언덕에서 2023. 5. 31.

 

양귀자 단편소설 『곰 이야기』

 

양귀자(梁貴子.1955~)의 단편소설로 1996년 발표되었다. 신화를 통하여 인간 내면에 은폐된 출세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1996년 제41회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이 소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 웅녀 이야기로 시작된다. 작가는 이 신화를 모티프로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한 가난뱅이 화가가 어느 날 갑자기 재벌의 딸과 결혼하여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작가는 1980년대에는 전망 없는 소시민의 문학으로, 1990년대에는 통속문학으로 폄하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은 능란한 구성과 섬세한 세부묘사,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 문학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삶을 형상화하는 작가적 기질이 뛰어나며 박진감 있는 문체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였다. 그녀는 '소설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체 구사. 일상적 삶의 모습을 따뜻한 등불 같은 정다운 모습으로 그려내었는데, 특히 1995년 전생에 이루지 못한 영혼과의 사랑을 주제로 동양 정서를 현대화한 문제작 <천년의 사랑>을 발표, 한국 소설의 지형을 바꾸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았다.

 

소설가 양귀자 ( 梁貴子.1955~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43세의 변변찮은 화가로, 인생 첫 전시회에서 몇 점의 그림이 팔린 것이 전부인 실패한 예술가이다. 그는 술에 취해 사는 나날을 보내며, 아내와 두 딸을 둔 채 가정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남자는 두 아내와의 이혼 후, 세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않다. 그는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남편으로서, 자신의 처지를 술로 달래며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

 남자의 인생은 재벌가의 막내딸을 우연히 만나면서 급격히 변화한다. 자신의 그림을 비싼 값에 사준 그녀와의 관계는 점차 깊어지고, 남자는 술에 취해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만난다. 그들의 관계는 연애로 발전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결혼을 제안한다. 그는 프로포즈를 받은 닷새 만에 지네의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다른 나로 변하고 싶다는 열망을 확인하자 네 번째 결혼에 응한다. 

 결혼 후, 남자는 재벌가의 사위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의 내면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전혀 부족함이 없는데도 아내의 권유로 화가의 작업실을 갖춘 성북동과 삼청동의 고급 주택들 구경다닌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작은 자아와 부족함을 감추려 하며, 아내의 기대에 맞추려고 애쓴다.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고급스러운 집들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한다. 열 달 전까지는 도저히 자신의 것으로 여길 수 없었던 저택들을 구경하면서 ‘괜찮군’만을 뱉어오던 그가 드디어 땅을 사서 손수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점점 자신이 재벌가의 사위로서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괜찮다’라는 애매한 표현 뒤에 숨는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점점 더 자신의 자아를 잃어간다.

 남자는 세련된 외모와 생활 방식으로 변해가며, 신문과 잡지의 인터뷰를 통해 ‘화제의 화가’로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그는 점차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잃어버린 상태다. 그의 삶은 성공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남자는 공허함과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다. 작품은 남자가 결국 출세와 성공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 그러나 모두가 한두 번은 간절히 꿈꾸는, 삶이 희망으로 바뀌는 이야기를 기정사실화하여 다루고 있다. 돈벼락에 대한 꿈, 혹은 백마 탄 기사나 평강공주를 기다리는 온달의 심정을 가져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삶이 고단하면 할수록, 또한 그 고난의 극복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러한 탈출 욕망은 더욱 크다. 작가는 이러한 세속의 욕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의 시작을 신화로써 시작하고 지네이야기라는 설화로 마무리하고 있다.

 양귀자는 인간의 금지된 욕망, 그러나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소망들을 특유의 솜씨로 무리없이 다루고 있다. 절대 다수에게 금지된 욕망을 성취한 소수의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인간의 이중적인 태도 또한 놓치지 않는다. 결혼에 성공하여 가난의 때를 벗은 남자가 친구에게 불려나가 술자리 끝에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곰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함의는 깊다. 통속적인 소재를 문학적 깊이로 끌어올린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곰 이야기는 신비스럽다. 나이 마흔셋에 네 번씩이나 장가가는 남자도 있을까. 그리고 그런 사내와 결혼하는 미혼의 35세의 재벌 딸도 있을까.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하는가. 아니면 천년의 사랑이라 부르는가. 화장기가 느껴지지 않는 40대 여자처럼 별로 이렇다 할 미모가 드러나 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세히 보면 덤덤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다.

 `껍질을 깨부숴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때때로 기어들어가 마음을 숨겨야 하는 피난처`인 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 기이한 주인공 부부의 순례…웅녀 이야기, 지네 이야기 … 등 우리에게 낯익은 변신의 설화들을 끌어들여 우리 사회의 은폐된 욕망의 한 풍속도를 다분히 풍자적인 문체로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오늘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이 얼마나 뿌리깊고 간절한 것인지를, 또한 그 타락된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풍속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활달한 상상력과 언어를 좇다보면 결코 짧지 않은 길이인데도 단숨에 끝까지 읽힌다. ([현대문학상] 심사평 중에서 : 김윤식 김화영 이동하)

 


☞지네각시 설화 : 

 '지네각시'라는 제목으로 흔히 전승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갖는다.

 너무 가난하게 살던 남자가 죽을 생각으로 산에 들어갔다가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여자는 그러지 말고 자기와 함께 살자고 하였다. 대신 남자의 식구들은 자신이 잘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남자가 별수 없이 여자를 따라갔더니 산속에 고대광실 커다란 집이 있었다. 산속 집에서 여자와 함께 지내던 남자는 팔월 보름이 다가오자 집 생각이 났다. 여자는 집에 다녀오되, 잠을 자지는 말고 길에서 누굴 만나든 곧바로 돌아와야 한다고 하였다. 남자가 집에 가보니 과연 식구들은 잘 지내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던 남자 앞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지금 산속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그 여자는 지네이니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다 입에 고인 침을 그 여자에게 뱉으면 여자를 죽일 수 있다고 하였다. 고민에 싸인 남자가 산속 집에 돌아와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과연 벌건 지네가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모른 척하고 들어갔더니 다시 본래 여자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고민하며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결국 침을 문밖으로 뱉어 버렸다. 그걸 보고 여자는 깜짝 놀라며, 집에 오던 길에 만난 자는 사실 예전에 자신과 함께 살던 구렁이인데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하기 위해 남자 앞에 나타났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지네가 먼저 남자를 얻어 승천하게 되었으니 구렁이가 이를 방해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지네에게 침을 뱉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이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말과 함께 여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자는 본래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풍족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지네각시' 이야기는 구연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다. '구렁덩덩신선비'가 적어도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것만 보았을 때 백 퍼센트 여성 구연자인 것과 상반된다. 남성의 시각에서 자신을 유혹한 여성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벌건 지네의 실상을 가진 존재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남성의 의식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남자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여자가 있다. 아리따운 여자라면 더 좋다. 이 여자는 남자가 불편할 것 하나 없이 너무 잘해준다. 또한 본래 자기 식구들까지 이 여자 덕분에 굶어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네였다. 역겹다.
   그러나 이 남자는 담배 피우다 고인 침을 지네에게 뱉으면 지네를 처치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본 모습은 벌건 지네였을지언정 이 여자는 남자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으로 남자를 배려하고 보살폈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 식구들에게 다녀올 수 있도록 보내주었고, 남자의 식구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폈다.
   이는 여자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진심을 바탕에 깔고 한 행동이었다. 이걸 남성의 욕망에 복무하는 여성의 ‘헌신적인’ 배려와 보살핌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여자도 그래야 할 이기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식구들도 구하고, 자신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며 대해 주었기에 이 여자에게 침을 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이 행동은 결국 지네의 승천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역겨워”라는 표현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이 표현을 접한 독자들은 ‘얼마나 싫었으면’ 혹은 ‘정말 꼴도 보기 싫었나 보다’ 혹은 ‘엄청 크게 배신당한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 쉽다. 그런데 위의 '지네각시' 이야기를 떠올리며, ‘벌건 지네’가 ‘역겨워’를 형상화한 이미지라고 본다면, 이는 본래 자신이 인정하고 좋아했던 상대에게서 본 모습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