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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호철 단편소설 『닳아지는 살들』

by 언덕에서 2023. 6. 5.

 

이호철 단편소설 『닳아지는 살들』

 

 

이호철(李浩哲.1932∼2016)의 단편소설로 1962년 [사상계]에 발표되었다. 196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5월의 어느 날 밤 12시까지 어느 가정의 사건을 다루면서 분단의 모순적 상황을 암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퇴역한 은행 중역으로 거의 백치가 된 아버지, 시아버지와는 다른 성격으로 백치가 되어 있는 며느리, 아내와의 애정이 동결된 채 노상 2층에 칩거하는 아들로 구성되는 그 가정은, 희망도 의욕도 잃은 채 응접실에 모여앉아 막연히 누구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밤 12시에 온다는 맏딸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그들의 귀에는 ‘꽝당, 꽝당’하는 불길한 쇠붙이 소리만 들릴 뿐이다. 작품 속의 ‘꽝당 꽝당’하고 울리는 쇠붙이 소리를 두고 그것을 전달하는 작가의 객관적 시점과 그 소리를 듣고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작중인물의 주관적 시점이 거의 한덩어리로 밀착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이호철 문장 스타일의 뚜렷한 특색을 엿볼 수 있다. 그 쇠붙이 소리가 조성하는 분위기 자체는 작품의 주제라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호철 초기작 분위기로서 서설의 특색을 여실하게 보이는 작품이라 평가된다.

 이호철의 작품 세계는 역사적ㆍ사회적 현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현실 상황 속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정직하게 투영해 내면서, 인간의 한계와 그 극복 의지를 정직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의 분단 상황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상황에 의해 부당하게 억압되고 부대끼는 소시민의 삶의 고통과 애환을 통해, 통일된 삶의 총체성을 회복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밤 12시까지 돌아오겠다는 맏딸을 기다리는 썰렁한 집 안에는, 은행에서 은퇴하고 명예직으로 남아 있는 귀가 먼 반백치인 아버지, 며느리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다.

 어디선가 ‘꽝당 꽝당’ 쇠 두드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신경을 자극하면서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그 소리를 피하려는 듯 막내딸 영희는 억지로 지껄인다. 정애는 아직 선재가 돌아오지 않았음을 식구들에게 말한다. 선재는 이층의 구석방에서 지내고 있으며, 영희와 약혼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피차간에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또한 주위에서도 그리 알고 있다.

 이때, 이층에서 내려오는 아들 성식의, 여위고 파자마 차림의 늘 같은 모습을 영희가 비꼰다. 차가운 안경알만 번쩍이는 성식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정애는 우수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북에 있는 맏딸이 12시에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막연하게나마 그녀가 돌아올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두들 밤늦도록 그녀를 기다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집안 전체를 통제해 나가는 줄이 끊어지면서 식모는 자유스럽고 활달하고 뻔뻔해졌다. 식모는 선재가 돌아왔음을 영희에게 알린다. 술 취한 선재를 부축하면서 이상한 그리움과 흥분을 느낀 영희는 그의 어두운 방에서 스스로 안기며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로부터, 저녁 내내 도망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전히 쇠 두드리는 소리가 투명하게 조급해진 듯 들려오고, 영희는 왜 우리가 자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느냐, 어쩌다가 우리 집이 이렇게 되었느냐는 등, 이것저것 자꾸 지껄인다. 점점 12시는 가까워지고 늙은 아버지는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코의 사마귀를 만지면서, 기묘하고 예리한 것이 담긴 듯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혼자 있기가 힘들었는지 다시 내려온 성식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을 보이자, 영희는 정애에게 이야기하던 잔잔한 목소리 대신 신경질적으로 오빠를 대한다.

 순간, 시계가 12시를 치고 모두의 시선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로 향하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화장실에 갔었다면서 나타난다. 영희는 발작이라도 하듯 일어나서 식모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적의를 가득 담은 영희의 눈길과 아버지의 허위적거림, 그리고 성식과 정애도 엉거주춤 일어선다.

 

소설가 이호철 ( 李浩哲 .1932 - 2016)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바 권태와 몰락으로 특징지어진 상황의 비극성을 작가의 상징적 의도 속에 승화사킨, 미화된 묵극(黙劇)이다. 다른 작품들에서 줄기차게 내밀어지던 작가의 얼굴은 일단 뒤로 물러낫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눈치 채지 못하게 교묘히 변자오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언어, 체호프의 <앵화원(櫻花園)>이나 메테를링크의 <틈입자(闖入者)>를 연상케 하는 무대적 구성,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복선의 설정과 효과음의 삽입 등은 요컨대 그 변장의 심미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내면화의 길은 <무너앉는 소리> <마지막 향연>의 연작 및 <추운 저녁의 무더움>에서 반복되나, 이후 점차 자취를 감춘다.

 

 

 이 작품은, 고도의 암시적 수법과 깊은 복선을 통해 분단의 모순과 그로 인한 소외 의식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소설이다. 그러므로 작품 표면상 뚜렷한 사건의 전개가 없으면서,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 내용도 한결같이 단절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무겁고 불길한, 그러면서도 무엇에 짓눌린 듯한 분위기는 바 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적 의도를 드러내는 심리적 배경이다.

 영희의 일가족은 항상 거실에 모여 앉아 이북으로 시집가서 돌아오지 않는 맏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언젠가 찾아 들어올 문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정작 그 문을 열고 나가 기다리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신경을 자극하는 꽝당 꽝당하는 쇠붙이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소리는 작품이 빚어내는 몰락의 분위기를 주제적으로 조성하고 있으며, 60년대 이후 진행된 근대화의 물결과 그 바람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황은 그 배경에 전후 사회 현실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밑에 깔고 있다. 영희 일가족은 이 쇠붙이 소리에 아무 희망 없이 숨어 지내며 희생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