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박영희 단편소설 『사냥개』

by 언덕에서 2023. 8. 1.

 

 

박영희 단편소설 『사냥개』

 

납북작가 박영희(朴英熙. 1901∼납북)의 단편소설로 1925년 4월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원래 제목은 ‘산양개’로 박영희가 낭만주의적인 탐미적 시인에서 신경향파 작가로 문학적 입장을 바꾸며 쓴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 김기진(金基鎭)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조직하였다.

 [개벽] 지는 당시 동학에서 운영하던 잡지로, 민족주의적 경향과 사회주의적 사상을 광범위하게 망라한 종합 잡지였으며, 당시 소박한 사회주의적 경향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이 잡지를 통해 발표되고 있었다. 박영희의「사냥개」는 타락한 자본가의 모습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감상적인 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던 박영희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다소 피상적인 인식을 통해 급진적인 사회 개조의 기치를 들게 된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관점 변화를 소설을 통해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이 같은 경향은 김기진에게서 영향받은 대목이었다. 김기진은 도일(渡日) 중 바르뷔스의 클라르테 운동에 영향을 받아 감상주의적 풍조에 빠져있던 1920년 초반 문단에 박영희와 함께 새로운 기풍의 문학을 외치게 된다. 이것이 신경향파 문학의 성립이었다. 「사냥개」는 소박하나마 계급 사상의 면모를 드러낸 습작 수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 박영희가 대본을 쓰고 안석영이 만든 친일 영화 <지원병> ⓒ 한국영상자료원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색한 지주 정호는 어느 겨울, 밤잠을 못 이루고 전전긍긍한다. 그가 60원을 주고 사 온 사냥개가 웬일인지 계속 짖어 대기 때문이다. 정호는 두려움과 초조함에 시달리다 무서운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개의 짖는 소리가 도둑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그러나 사냥개가 짖기를 멈추자, 정호는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석 달 전, 어느 키 크고 남루한 사내가 시퍼런 칼을 들고 침입해 들어와 목숨의 대가로 돈 3천 원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정호는 문득 벽장 속에 감추어둔 3만 원이 무사한 지 확인한다. 그 돈은 논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찾아 둔 것인데, 이 돈 중 3천5십 원이 내일이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자 정호의 심정은 바삭바삭 타들어 간다. 그는 다섯 번째 첩을 데려 오는 대가로 논 3백 석과 3천 원을 주기로 했는데, 아직 지불하지 않았던 탓이다. 첩은 반발하며 달아났었는데, 정호는 아무래도 내일 중에는 우선 돈만이라도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금방 돈이 아까워진다.

 남편을 저주하는 첩, 기근 구제금과 사립학교 기부금을 요구하며 총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번갈아 아른거린다. 시달리다 못한 정호는 그래도 믿을 만한 첫째 부인에게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방문을 나선 정호를 보고 사냥개는 더욱 짖어 댄다. 그는 금고를 들고 있다. 잘 자라고 흔드는 손에 달려들던 개는 주인이 역정을 내며 차 버리자, 드디어 주인의 목을 물어뜯는다. 피가 흘러나와 땅 속으로 스며든다.

 인색한 주인 때문에 여러 날을 굶은 개는 피를 핥다가 미쳐서 종적을 감춘다. 정호의 시체는 이튿날 아침에 발견되는데, 마당 한편에는 피로 물든 붉은 얼음 위에 3만 원이 든 금고가 뒹굴고 있었다.

시인·소설가 박영희 ( 朴英熙.1901~납북)

 

「사냥개」의 문학적 평가는 그 작품이 지닌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아니라, 경향파 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정호라는 인색한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과 사냥개라는 충복(忠僕)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성을 지닌 동물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우화적 수법으로 계급성 타도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결국 사냥개가 주인 정호를 물어 죽이고, 종적을 감추는 소설의 결말은, 무산계급의 대표격인 사냥개가 지주를 죽임으로써 프로문학이 갖는 계급의식의 고양이라는 주제를 의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영희는 [장미촌] 창간호에 시 <()의 비곡(悲曲)> <과거의 왕국>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3년에는 김기진ㆍ연학년ㆍ이상화 등과 더불어 파스큘라(PASKULA)를 결성하며 계급의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1924[개벽]의 문예부 책임자가 되어 신경향파 건설에 주력하였으며, 1925년 카프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이 시기부터 시 창작보다는 소설과 평론에 전념, 소설 <사냥개>(1925), <철야>(1926), <지옥순례> (1926) 등과 평론 <신경향파의 문학과 그 문단적 지위>(1925), <신흥예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논하여 염상섭 군의 무지를 박(駁)함>(1926) 등을 발표하였다. 1926년 말부터 김기진과 ‘내용‧형식’ 논쟁을 벌이며, 1927년에는 <문예운동의 방향전환>, <문예운동의 목적 의식론> 등을 발표하며 카프의 제1차 방향전환을 주도,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신간회]의 간부를 지내기도 하였다.

 1929년 무렵 임화‧ㆍ김두용 등의 카프 도쿄지부의 ‘당의 문학’이라는 슬로건에 밀려 카프의 주도권을 상실하였으며, 1934년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이라는 전향선언문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카프를 탈퇴하였다. 1938년 7월 전향자 대회에 참가하면서 친일활동을 시작, 1939년에는 조선문인협회 간사를 역임하는 한편, <임전체제하의 문(文)과 문학의 임전체제>, <2천5백만 반도청년에게 격함>이라는 평론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광복 후에는 민족 반역자 명단에 오르기도 하였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사 강의를 맡았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박영희는 [조선지광]에 발표한 <문예 운동의 방향 전환>이라는 평론에서, “과거의 빈궁 소설, 극도에 이른 생활난만을 추출하는 자연 생장적 소설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문예운동은 계급적 혁명을 위한 목적의식을 갖게 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 이러한 그의 이데올로기 문학관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문학적 성과는 창작보다 이론적 탐구에 있다. 특히 그는 1930년대 후반 문예 비평계의 문제점은 학문적 부재에 있다고 보고, 문학의 학문적 연구가 실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한국 문학 초기에 문학 이론에 힘썼던 인물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사냥개에게 오히려 도둑으로 오인되어 물려 죽는 한 수전노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계급론적 관점에 의하면 자본가에 대항하는 무산계급의 투쟁의지를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기영의 <쥐 이야기>와 김기진의 <붉은 쥐> 등 신경향파 초기 소설들처럼 이 작품에도 동물을 등장시켜 당대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대한 저항 정신을 제시한다. 이런 우화적인 수법은 당시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세밀한 심리묘사로 박진감은 주고 있으나 작품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신경향파 대부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살인과 같은 막연한 파괴로 결말을 짓는 점, 사건을 개연성 없이 전개시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금고를 들고나간 주인을 도둑으로 알고 덤비는 사냥개는 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다고 해도, 주인을 물어 죽인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더구나 이 작품 말미에서 ‘주인을 물어 죽인 개가 자유를 만끽하며 주린 배를 마음껏 채웠다’는 표현은 개에 대한 주인의 상습적 학대 등이 보이지 않아 매우 어색하다. 전체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담고 있으나 현실인식만 존재하고 역사의식은 결여되어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