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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일남 중편소설 『흐르는 북』

by 언덕에서 2023. 5. 30.

 

최일남 중편소설 『흐르는 북』

최일남(崔一男, 1932~2023)의 중편소설로 1986년 [문학사상]지에 발표되었다.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인의 삶의 가치관을 사실주의적 문체로 소설화한 작품이다.  북치는 노인과 젊은 세대인 손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북소리처럼 내밀한 울림을 간직하며 깊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것이 일체의 모순을 문학화하는 데 힘쓴 이상(李箱)의 문학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1986년 제10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최일남은 1953년 [문예]에 소설 <쑥 이야기>가 추천되고, 1956년 [현대문학]에 소설 <파양>으로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했다. 해방 전후와 50년대의 격동기를 살아온 변두리 인물들의 생생한 초상을 그려내는 세태 소설가로 평가된다. [월탄문학상], [소설문학상], [한국창작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작품집으로 <서울 사람들> <타령> <누님의 겨울> <거룩한 응달> <하얀 손> 등이 있다.

 최일남의 작품 세계에는 소시민적 삶의 풍경들이 주로 담겨 있다. 그의 소설 속에는 우리의 1950년대 이후의 사회적 풍속이 풍자적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궁핍한 삶의 참담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참담한 소시민적 삶의 세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비롯한 인간성 회복이란 주제 의식이 밀도 있게 형상화되어 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선천적인 예술적 기질과 역마살로, 처자와 가정을 외면한 채 살아온 주인공 민 노인은 유배자와 별반 다름없는 생활을 한다. 사회적인 체면과 민 노인의 북(鼓)과의 허랑방탕한 한평생이, 아들의 생각으로는 중요한 흠이라고 생각되어, 아버지가 북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아들 성규의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온 날 저녁에 사건이 생긴다.

 점점 북에 대한 향수가 멀어질 무렵, 아들 친구들이 예술에 대한 향수 깃든 권유를 하자, 민 노인은 놓았던 북채를 다시 되잡기에 이르렀고, 그들이 제각기 집으로 돌아간 후 아들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그러나 민 노인의 예술적 기질과 삶을 이해해 주는 가족은 바로 손주 성규뿐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이해 못 하는 것과는 달리, 할아버지를 상당 부분 이해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규는 민 노인에게 자기 학교 봉산 탈춤 공연에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한다. 많은 고민을 거듭한 후, 민 노인은 이를 승낙하고는 철저한 계획과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아들 내외의 눈을 피해 무사히 집으로부터 북을 꺼내 와서 연습에 돌입한다. 비록 연배 수가 한참 차이 나는 젊은이들과의 연습이었으나, 민 노인에게는 큰 즐거움과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공연 당일, 민 노인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잃었던 예술에의 재능을 많은 청중들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진숙 어머니의 고자질로 아들 내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민 노인을 탓함과 동시에 아들 성규를 호되게 꾸짖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손자놈인 성규는 데모를 하다 붙잡히는 사건이 벌어지고, 손녀 수경이와 함께 집에 남게 된 민 노인은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내 역마살을 닮은 것 같아. 역마살과 데모는 어떻게 다를까’하고 생각하며, 손녀의 물음에도 아랑곳없이 둥둥둥 더 크게 북을 두드렸다.

 

  작가가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는 주제는 이처럼 흔들리는, 좌절하는 한국 사회의 소시민들이 누리는 삶의 허구이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직시하며 편중되지 않는 시각과 예리한 비판으로 사회성을 견고하게 갖춘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데 진력해 왔다. 이와 함께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스민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어루만지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말의 뜻 사람의 뜻> 등 30여 권에 이르는 저작들, 소설과 대담집과 수필집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당대의 인물들을 통해 조명해 왔으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소시민들을 각성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 작품에는 1980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과 중산층의 이기적 삶의 세태를 배경으로 하여 속물적 삶과 본원적 삶과의 심한 갈등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아들대를 지나 손자대에서 그들의 본원적 삶이 다시 빛을 얻게 된다.

 

 

 작가는 주로 정치 권력의 횡포, 지식인의 타락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비판적 사실주의’ 경향의 소설을 30여 권 발표했다. 1980년 동아일보 편집부국장으로 있던 중, 신군부에 의해 해직당한 경험을 비롯해 언론인으로서 시대에 품어 온 비판적 질문들을 해학적 문체로 작품에 담았다. 1986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1980년대 사회상을 꼬집었다. 세대 갈등, 전통과의 단절 속에서도 역사는 흘러간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우리 사회의 현실적 단면과 중산층의 이기적 삶의 세태를 배경으로 하면서, 속물적 삶과 본원적 삶과의 심한 갈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결국 그 본원적 삶이 아들대를 지나 손자대에서 다시 그 빛을 얻게 된다는 감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상처받은 윤리가 비명을 울리는 정감의 기록이다.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라는 부조리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인간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또 여기에서 파생되는 현대인의 삶의 가치가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