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단편소설 『잔해(殘骸)』
송병수(宋炳洙, 1932~2009)의 단편소설로 [현대문학] 1964년 9월호에 발표되었다. 공군 조종사의 추락을 소재로 한 소설로 제9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삼천피트의 고도, 김진호 중위는 지상으로 급강하하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전쟁터에서 일어난 상황을 빌어 인간 존재의 내면을 성찰한 상황소설이다. 간결한 문장, 박진감 넘치는 사건 진행을 표현한 이 소설은 전쟁소설 또는 전투소설의 모범이 된다. 행동주의 문학과 실존주의 문학을 결합한 이 소설의 분위기는 언뜻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떠올리게 한다.
송병수는 1932년 경기도 개풍 출생으로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57년 [문학예술]에 <쏘리 킴>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전쟁이 빚어낸 상처를 소재로 전후의 사회상을 그리면서 인간관계의 회복을 꾀하는 작품을 썼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무릇 현존하는 것들을 직시하면서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동의하자”라는 작가적 독백을 작품 속에서 실천했던 소설가다. 그는 전쟁 이후 등단한 신세대 작가로서 전쟁이라는 실존의 위기에 놓은 인간의 의식뿐 아니라, 1960∼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위선과 위악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이데올로기의 거대함 속에 내재하는 인간 의식의 다양한 국면과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을 다루는 그의 시선은 늘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인간에 대한 신뢰의 시선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불사의 보라매’라 불리는 조종사 김진호 중위는 항상 행운아였다. 그의 생활은 출격ㆍ술ㆍ여자ㆍ노름의 반복이었다. 불안한 전쟁터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애에게는 진지했다. 언제나 행운아였던 그는 출격에서 돌아오자 만난, 과부 유(동료의 부인)로 인하여 충격을 받은 나머지 임신을 알리러 온 미애를 울려 보낸다.
불안하고 착잡한 마음에 자진해서 야간비행에 나간다. 임무는 무사히 마쳤으나 귀로에 적의 공격으로 적지에 낙하한다. 그는 불행에 대해 조금도 준비가 없었다. 구조받기 위해 무전을 쳤지만 무반응이었다. 지나가던 편대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배고픔ㆍ추위ㆍ피곤ㆍ긴장은 더욱 기력을 잃게 했다. 산을 헤매다 편대장이 쉬다 간 곳을 발견하나, 서로 만나지 못한다. 도중 적이 은닉한 탄약보급지를 발견, 정확한 우군의 폭격을 복고 가까이에 편대장이 있음을 확신하고 찾아 헤맨다.
갑자기 맞은편 산등성이에 헬리콥터가 내리고 비행복을 입은 사람이 타고 떠난다. 안타깝게 소리치며 달리다 구덩이에 빠진다. 겨우 기어서 이상한 예감이 드는 물체에 손이 닿는다. 그것은 자기 비행기의 잔해였다. 그것을 쓸어안고 흐느끼는 그의 등 위로 눈이 곱게 내리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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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쑈리 킴>을 비롯한 송병수의 일련의 작품들은 구체적인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물론 야무진 단편을 만들 줄 아는 송병수의 단편작가로서의 약량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주된 원인은 결국 그가 전쟁을 문제로서 다루지 아니하고 소재로서 다루었다는 점, 다시 말하면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박찬 과제 대신에 소박한 인정주의를 포착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가령 <쑈리 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따뜻한 인정의 교류가 하나의 아담한 안정의 미담일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의 보편적인 인간애로까지 높여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송병수의 문학적 특질은 그의 역작 <잔해>(1964년)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전환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초기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소박한 인정주의와 아련한 서정미가 말끔히 청산되어 있다. 작중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태도도 매우 냉혹하고 드라이하다. 그의 초기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바 인정주의와 서정미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일종의 감상성이, 이 작품에 있어서는 냉혹하고 드라이한 작가의 자세로 말미암아 개입할 여지를 봉쇄당하고 있다. 이런 점은 상당히 중요한 전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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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는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벽에 부딪친 한 인간의 그 죽음에의 도전을 추적하고 있다. 적의 대공포화에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그 조종사인 ‘김중위’는 적의 점령지역에 낙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00회 이상의 출격기록을 가진 자랑스러운 ‘불사의 보라매’ 김중위에 있어서 그것은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추위와 주림과 공포가 그를 에워싸고 있다. ‘김중위’에게 남아있는 오직 하나의 가능성은 남으로 무사히 탈출하는 일이다. 아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그리고 자기 애인 ‘미애’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남으로 빠져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고 양식은 떨어지고 사방은 눈으로 덮인 영하의 추위이고, 적의 총부리는 사방에서 위협하고 있다. ‘김중위’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이 불운은 그로 하여금 자기 인생을 전면적인 자리에서 검코해 볼 수 있는 극한의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김중위’는 이제 자기 숙명(죽음)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에게는 이제 최선의 행동만이 요청된다. 남으로 빠져나가는 것.
그러한 행동의 사이사이 그의 의식에는 갖가지 기억들이 스쳐간다. 그러한 그의 기억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후방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미애’의 영상이다. ‘김중위’에 있어서 ‘미애’라는 존재는 생의 의미, 아니 생 그 자체다. ‘김중위’는 결국 ‘미애’ 있는 곳으로 탈출하지는 못한다. 자기 애기(愛機)와 더불어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김중위’에 있어서 패배는 아니다.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니까. 말하자면 자기 생명의 완전연소를 기할 수 있었으니까. 이 작품에서 송병수는 죽음과 대결하여 최선을 다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밀도 있는 문장으로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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