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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염상섭 장편소설 『취우(驟雨)』

by 언덕에서 2023. 5. 17.

 

염상섭 장편소설 『취우(驟雨)』

 

염상섭(廉想燮, 1897~1963)의 장편소설로 [조선일보](1952. 7.18∼1953. 2. 20)에 연재된 기록소설이다. 취우(驟雨)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특히 여름에 많으며 번개나 천둥과 강풍 따위를 동반하는 비, 즉 소나기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6ㆍ25 전쟁을 제재로 해서 전쟁 당시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비극에서 빚어지는 배신과 인정의 급변하는 양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도덕을 초월한 본연의 인간애를 그린 작품이다. 북한의 남침으로 한강철교가 폭파되자, 미처 남하하지 못하여 북괴의 치하에서 신음했던 이 나라 국민의 전쟁기록 소설이다. 공산주의자의 폭력성과 전쟁을 통한 인간의 운명을, 더덕을 넘어선 인간애의 편에 서서 다루고 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어지게 되자 제각기 제 생명과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존질서의 파괴와 잔학무도한 공산주의자의 포악성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인정의 아름다움을 선명히 부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강순제는 한미무역회사 사장인 김학수의 비서 겸 애첩(愛妾)이었다. 그녀의 본남편은 공산주의자로 월북하였다.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 김학수는 강순제와 조사과장인 신영식과 함께 피난길을 나섰다.

 그러나 어둠 속의 피난은 한강교의 폭파로 말미암아 좌절되어 신영식의 집에 숨어지낸다. 김학수의 회사는 좌익에 가담한 회사원들의 손에 넘어갔고, 혼란이 말이 아니었다. 신영식은 명선이란 여인과 약혼한 사이였으나, 김학수의 애첩 강순제와 눈이 맞아 깊은 관계에 빠진다.

 그러던 중 월북했던 남편이 나타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재결합하자고 강요했다. 강순제는 그런 척했으나, 마음은 신영식에게 있었다. 한편, 신영식은 의용군에 끌려가 평양에서 노역하다가 국군의 반격으로 인해 생환하게 된다. 신영식은 약혼자인 명선이를 단념하고 그동안 자기의 식구들을 위해 고생한 강순제와 결합한다.

 김학순은 그가 데리고 있던 임일석의 밀고에 의해 붙잡혀 가고 없었다. 수복 뒤 전세가 악화되어 그들은 다시 남하하게 된다.

 

 

 이 작품은 6ㆍ25 전쟁 당시의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6ㆍ25 전쟁 발발에서 9ㆍ28 서울 수복까지의 3개월 동안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안일하고 속되게 생명을 부지하려고 발버둥 치는가를 사실주의 수법으로 담담하게 표출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안일한 인생 태도를 결코 버리지 못하고 소시민적 속물근성의 안일한 삶을 이어갈 뿐이다. 그런 인물들의 안일한 생활 태도를 3개월 동안의 다큐멘터리 기록영화처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창작하였다. 후기 염상섭 문학의 대표작품이다

 6ㆍ25 때 남하하지 못한 한미무역회사 사장 ‘김학수’ 영감과 그의 비서요 애첩인 ‘강순제’, 그리고 같은 회사의 젊은 과장인 ‘신영식’ 등의 상호 이질적인 세 인물은 숨 막히는 피난생활을 같이 하게 된다. 이 긴박한 현실 속에서도 허영에 들뜬 ‘강순제’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에서 영식이에 대한 순제의 유혹은 9·28 수복을 계기로 영식의 이전 약혼자인 ‘명신’의 돌연한 등장으로 다시금 영식이를 중심으로 한 복잡 미묘한 애정관계가 벌어진다.

 

 

 장편소설「취우」는 1952년 7월 18일부터 이듬해 2월 20일까지 [조선일보]에 실렸다. 한국전쟁의 막바지 어름으로, 휴전되기 5개월 전까지 연재되었다. 난리통에 전쟁 시기를 작품화해서 그런지 소설 속에는 폐허로 변한 도시의 음울이 곳곳에 깔려 있다. 기본적인 얼개가 강순제와 신영식 그리고 정명신의 연애담에 맞춰진 탓에 이러한 음울이 인물 성격에까지 미치지는 않지만, 섬뜩함까지 치워지진 않는다. 사랑이라는 낭만의 외피를 걸친 공포의 내면으로, 작가는 도시의 정경을, '개도 짖을 줄을 잊은 공포의 도시, 죽음의 거리에 잔잔한 새벽바람에 날아오는 그 괴물의 발자취는 폭포 소리와 같고 썰물이 밀려가는 소리와도 같다. 자갈이 깔린 땅을 육중한 찻바퀴가 으깨면서 달리는 듯한 그 잔인한 살육의 아우성에 제각기 닥쳐올 제 운명을 생각해 보기에 잠깐은 얼이 빠졌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은 강순제를 주인공으로 세속적인 애정관계를 설파(說破)한 인상을 주지만 실상은 강렬한 반공의식과 따뜻한 휴머니즘이 그 주제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김학수 영감이 애정이나 인정보다 물욕이 더 강력한 인간형임을 용이하게 추정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사건과 인물의 행동처리도 6ㆍ25로부터 9ㆍ28 서울 수복을 거쳐 1ㆍ4 후퇴라는 전 민족의 비극의 현실 속에서 작중 인물들은 모두가 전쟁의 처참한 현실에서 완전히 제약받은 생생한 인간들로 재현되고 있다.

 이 작품의 끝 구절 중에서 영신이의 운명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영식이의 어머니가 영식이의 약혼자인 명신이와 영식이의 애인 순제와의 대비적인 비교에서 명신에 대한 적극적인 호의를 갖게 되는 것은 앞으로 명신의 최후 승리를 암시해 주는 구절이다. 이와 같은 무해결과 무결론이 바로 염상섭 소설의 특징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