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단편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
현진건(玄鎭健.1900∼1943)의 단편소설로 1925년 2월 [조선문단] 5호에 발표되었다. 현진건 특유의 풍자성과 심리 묘사를 잘 나타낸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현진건의 우수적(憂愁的), 감상적이면서 사회 비판적인 여타의 작품들(‘운수 좋은 날’, ‘고향’ 같은 작품)과는 달리 그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비평 정신이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숙사라는 제한된 공간, 일단은 외부와의 연결이 두절된 공간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선생(사감)과 학생이라는 인간관계 안에서만 사건이 진행된다. 특히 B사감의 괴팍한 성미와 이해하기 힘든 기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품 마지막 부분에 세 처녀의 행동에서도 나오듯이, 작가는 한 인간의 극대화되고 과장된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인간주의 입장으로 파악하여, 그를 단순히 비판하여 매도하지 않고 따뜻이 감싸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희극작품이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오히려 생의 본질적인 비극성을 해학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소외된 인간을 보편적 근거에서 한층 분리시킨 듯하지만, 실상은 동일한 인간의 영역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현진건은 1920년대의 사회적 현실을 사실주의의 방법으로 묘사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인 <빈처> <운수 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는 일제 강점하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B여사는 C여학교의 사감으로서 얼굴은 누렇게 뜬 곰팡슬은 굴비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못생겼으며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 칠 만큼 엄격하고 매서웠다. 특히 남학생에게 온 러브레터가 있으면 당사자 여학생은 사감실로 끌려가 자신이 아는 남학생이건 모르는 남학생이건 혹독하게 당해야 했다. 남자를 마귀로 표현했고 연애가 자유니 신성이니 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낸 소리라고 했다.
남자의 면회는 시켜주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의 면회도 따돌리기 일쑤여서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해 교장의 설유까지 들었어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가을에 들어 기숙사에서 속살속살하는 말과 웃음소리가 밤이 깊어 새로 한 점 때쯤 흐르는 일이 있어 도깨비의 장난이 아닌가 무서워하다 이웃집 이야기나 딴 사람의 잠꼬대겠지 하며 안심하고 자는 일이 학생들에게 있었다.
어느 날 공교롭게도 한 방에 자던 세 학생이 한꺼번에 잠을 깨어 남녀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연애하는 남녀가 몰래 만난다는 생각에 구경하러 가자고 하여 셋은 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곳은 바로 B사감의 방이었다. 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B사감 혼자서 연인들끼리 연애할 때의 장면을 연극처럼 하고 있었다. 첫째 처녀는 미쳤다고 생각하고 둘째 처녀는 불쌍하게 생각했으며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눈물을 씻었다.
이 소설은 기숙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이중적 심리 상태를 사실감 있게 형상화한 수작이다.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사용하여 B사감의 이중성을 조소하고 그 정체를 폭로하는데 알맞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풍자나 희극에 머물지 않고 B여사라는 위선적 인간형을 해부함으로써,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그 위선이 결국에는 비애로 끝나고 만다는 아이러니까지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고발이 아닌 인간성의 탐구를 목적으로 삼았다.
시점이 객관적인 3인칭 서술 계열의 소설로서, 반어적 대립과 전환을 통해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격의 이중성 내지는 위선의 문제를 희극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거의 과장적이라 할 만한 묘사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희극적 효과를 위해서는 다소의 과장이나 그로테스크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B사감의 변화의 동기 설정이 모호한 점은 구성상의 흠이다.
♣
이 소설은 현진건의 사실주의적인 경향이 풍자성과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C여학교 교원이자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여사이다. 이 인물은 딱딱한 성격과 주근깨투성이의 얼굴로 인해 아직까지 노처녀의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인물이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기숙사로 러브레터가 날아오는 일과 남자들이 여학생을 면회 오는 일이다. 사감이라는 직책이 보여주듯 그녀는 학생들을 감시하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녀의 그러한 엄격함은 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행하는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감으로서의 엄격함이지만, 속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남성에 대한 동경과 증오의 이중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현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엄격’이라는 겉모습에 감추어진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의 모습은 그녀가 행하는 기괴한 행위로 인해 들통이 나고 만다.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러브레터 사이에서 남성과 여성의 흉내를 내며 혼자 들떠하는 모습을 통해 B사감이 지금까지 보여준 외형적인 모습은 허구인 것으로 판명되고, 내면적인 정염(情炎)의 모습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심정은 B사감에 대한 연민이다. 하지만, 연민과 동시에 한 인물의 이중성에 대한 풍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진건의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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