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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V.S. 나이폴 장편소설 『미겔 스트리트(Miguel Street)』

by 언덕에서 2023. 5. 24.

 

V.S. 나이폴 장편소설 『미겔 스트리트(Miguel Street)

 

 

영국 소설가 비디아다르 수라즈프라사드 나이폴(Vidiadhar Surajprasad Naipaul, 1932~)의 장편소설로 1959년 발표되었다. 나이폴은 카리브해의 영국령 트리니다드섬에서 인도계 부모 아래 태어났다. 1948년 트리니다드 정청의 해외 유학 장학금을 취득했고, 1950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BBC의 카리브 지역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등 방송인,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했다.

 23세 때부터 창작을 시작하여 1957년 첫 소설 <신비한 안수자>를 발표했고, 1959년에 발표한 『미겔 스트리트』는 나이폴의 초기 대표작으로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나이폴은 <콘래드의 암흑>을 포함한 콘래드 관련 논설문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제3세계 출신의 ‘탈식민주의 작가’인 그는 지식인과 소외의 문제를 강하게 파헤치고 있으며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콘래드와 비교되기도 한다.

 『미겔 스트리트』는 그의 대표작으로, 그가 십팔 년이나 살았던 트리니다드섬의 현실에 대한 체험을 토대로 타락한 식민지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도덕적 퇴폐와 무기력에 휩싸인 미겔 스트리트 거주민들의 좌절과 광기를 묘사하면서도 시종일관 희극적인 톤을 유지하며 공감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소설 속의 열일곱 편의 에피소드는 작고 보잘것없는 섬나라 주민들의 절망과 방황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로 200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트리니다드섬에서도 하류 계층 사람들이 사는 미겔 스트리트를 무대로 소년 ‘나’의 관점에서 쓴 열일곱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작품 <내가 미겔 스트리트를 떠난 경위>를 제외한 열여섯 편이 모두 미겔 스트리트 주민들의 개별적 성격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트리니다드의 식민지 상황이 빚어낸 대표적 희생자들로 각각 트리니다드의 삶이 지닌 부조리를 자기 나름으로 드러낸다. 배경은 카리브해 포트오브스페인의 슬럼가다.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힌두교를 믿는 친지들과 함께 전혀 다른 이방인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린 소년의 눈과 유쾌한 어조를 통해 소외와 망명 속에 감추어진 아이러니를 끌어내고 있다.

 스스로 양복 재단사임을 내세우면서도 양복을 짓는 일이 없고 아침부터 밤까지 트럼프패 떼기에만 열중하는 <보가트>의 표제 인물 보가트나, 목공을 자처하면서도 아무런 유용한 물건도 만들지 않고 오직 열심히 이름 없는 물건만을 만드는 <이름 없는 물건>의 주인공 포포 같은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그들이 빠져 있는 깊은 권태와 무위를 보여준다. <맨맨>에서는 각급 의원선거 때마다 으레 출마하여 어김없이 세 표씩 얻곤 하는 표제 인물 맨맨이 ‘일을 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빈둥대지는 않은’ 인물로 등장한다.

 맨맨의 편집광적인 성격은 <기계의 천재>에 나오는 바쿠에서도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자동차의 움직이는 부품의 소리가 모두 고장 난 상태로 들리기 때문에, 새 차나 헌 차를 막론하고 자기가 소유하는 자동차를 분해해서 다시 맞추는 것을 일과로 삼는다. 바쿠는 크리켓 방망이로 부인을 구타하는데, 놀랍게도 바쿠 부인은 그 방망이를 늘 소중하게 보관해 둔다. 한편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그가 선택한 직업>의 엘리아스는 주정뱅이에 무뢰한인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며 공부해 현실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엔 거리의 쓰레기 수거원이 되고, <경계심>의 주인공 볼로는 베네수엘라로 가기 위해 밀항하지만, 선장은 밤새도록 배를 운항한 후에 그를 다시 트리니다드에 내려놓아 버린다.

 

영국 소설가 비디아다르 수라즈프라사드 나이폴(Vidiadhar Surajprasad Naipaul, 1932~)

 

 트리니다드는 17세기부터 정착되기 시작한 섬으로 스페인과 영국의 통치를 받아오면서 아프리카의 노예를 수입하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인도로부터 이주 정착민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흑인과 인도인을 주축으로 한 주민의 구성은 다양하며, 나이폴의 말에 의하면, 서로 다른 ‘집단’ 및 ‘패거리’는 있었지만 ‘공동 사회’는 없었다. 어쩌다 서로 모여 살게 된 주민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감정이나 전통 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바로 이 점은 트리니다드에서의 삶을 보람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

 또 민족적 자부심의 결여는 식민지라는 폐쇄 사회에서 살던 노예의 후손들에게 사회의 공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섬을 ‘하나의 추악한 세계’나 도덕적 ‘정글’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시험 문제의 유출, 절도, 폭행, 중혼, 뇌물 수수 같은 타락 현상이 이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만연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적 재능을 실현할 기회는 허용되지 않았을뿐더러 실현해 보았자 아무런 사회적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곳에서 성공담이라고는 들어볼 수 없고 오직 실패담만 들을 수 있었다. 재기 발랄한 사람들이라든가 장학금 취득자들은 어려서 죽거나, 미쳐버리거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크리켓 선수들도 당국자들과의 불화로 말미암아 파멸하고 말았다.

 

 나이폴은 어떤 형태로든 식민주의의 폐해가 초래하는 일상의 공포를 드러내고자 한다. 제3세계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본주의 나라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떠나야만 하는 자신들의 조국. 관광객으로 들끓는 나라와 가난에 절은 나라. 독립하고 나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식민주의가 남긴 악습. 자신의 초기작인 『미겔 스트리트』의 작품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 나이폴은 작가의 할 일은 바로 이처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이폴이 알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트리니다드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사회였다. 사람 대부분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또 일부 식자층도 질식적인 분위기로 말미암아 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을뿐더러 인식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이폴은 청년기에 트리니다드를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며, 트리니다드 상황에 대한 참다운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섬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실패와 좌절을 겪어나가는 주민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나이폴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태연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체험담을 서술할 때 작가가 빠지기 쉬운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그는 도덕적 비루함이나 명백한 광기를 여러 곳에서 다루면서도 흥분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못난이들임이 틀림없는 인물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또 본질에서 비극적인 소재에 가벼운 희극적 터치를 가해, 작품에 아이러니한 재미와 호소력 강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