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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나지브 마흐푸즈 장편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Children of Gebelawi)』

by 언덕에서 2023. 5. 15.

 

나지브 마흐푸즈 장편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Children of Gebelawi)』

 

 

이집트 소설가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1911~2006)의 장편소설로 1959년부터 이집트의 주요 일간지인 [알 아흐람]에 연재되었다. 장편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종교를 주제로 한 소설로서 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마호메트·모세를 비롯한 종교적 인물들을 등장시킨 까닭에 한동안 이집트에서 판금당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67년 레바논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나지브 마흐푸즈가 이집트 정치 상황에 실망해 절필을 선언한 이후 7년간 침묵하다가 다시 펜을 들어 집필한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마흐푸즈는 정치-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불안정했던 당시의 이집트 사회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대표적 종교의 일화를 엮어 선과 악이 대립하는 한 마을의 다사다난한 역사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아담과 모세, 예수,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혁명적 일화를 이슬람 문화적 배경 속에 녹여 낸 이 작품에는 오랜 세월 인류가 찾아 헤맨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후 마흐푸즈는 1994년 이슬람 원리주의자 테러리스트가 휘두른 칼에 목을 찔려 신경 손상을 입는 등 정치적으로 위협을 받으면서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아랍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전념했다. 2006년 8월 30일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마흐푸즈는 1988년 아랍권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자발라위는 거친 사막 한복판에서 부를 축적하여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저택에서 대가족을 이끌고 산다. 그러나 그 평화는 자발라위가 그의 재산을 관리할 후계자로 막내아들 아드함을 지목하면서 깨져 버린다. 장남 이드리스는 아버지의 결정에 반발하며 집을 나가 거친 황무지에서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감으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다.

 어느 날 장남 이드리스는 아드함을 찾아와 동정을 구하며 아버지의 비밀 유언장을 미리 확인해 보자고 꼬드긴다. 마음이 약해진 아드함은 아내의 부추김에 힘입어 아버지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결국 들키고, 진노한 자발라위는 아드함마저 사막 한가운데로 내쫓아 수모를 당하며 살아가게 한다. 이후 사막에 자발라위의 후손이 번성해 마을을 이루면서 여러 대에 걸친 굴곡진 역사가 이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네에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층과 늘 핍박당하는 피지배층이 생겨나고, 그들 간에 갈등이 증폭되면서 사회는 권모술수와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피지배층 사람들은 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조상이 사는 ‘저택’을 가리키며 한탄하고, 주변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사람대접조차 받지 못해도 부자 조상과 폭력배 수장들이 보호하는 동네에 산다고 부러워한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문으로 존재하는 은둔자 자발라위는 자발과 리파아와 까심에게 어지러운 동네를 바로잡고 정의를 구현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이들은 고통과 고난을 감수하며 이를 완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이들의 노력은 세대를 지나 계속 이어져 나간다.

 

 

 ‘이집트의 발자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문학적인 명성을 든든히 다져 왔던 나지브 마흐푸즈는 1952년 이집트에서 7월 혁명이 성공한 후 압델 나세르 정권의 행보에 실망하고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1959년 마흐푸즈는 다시 펜을 들어 이집트의 유명 일간지 [알아흐람]에 『우리 동네 아이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종교에 대한 솔직한 풍자로 이슬람 사회에서 신성 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국내에서 제대로 출간되지 못한 채 서랍에서 잠자던 이 책은 10여 년 뒤 레바논에서 초판이 출간되었고, 완성된 지 47년 만인 2006년 우여곡절 끝에 고국 이집트에서도 출간될 수 있었다. 그사이 1994년에 이슬람 사회는 이 작품이 신성을 모독했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고, 마흐푸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 시도로 목에 칼이 찔려 오른손 신경이 영구히 손상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 작품은 종교라는 주제를 알레고리 기법으로 써 내려간 대하소설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인 성서와 코란에서 전해 내려오는 선지자 등 인물들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가 장을 나누어 전개된다. 이 마을의 선구자는 사막에서 부를 쌓은 ‘자발라위’(창조자 하느님)로, 그는 ‘저택’(에덴동산)에서 대가족을 이루지만, 재산 다툼으로 장남 이드리스(사탄)와 막내아들 아드함(아담)이 대립하게 된다. 각각 탐욕과 어리석은 유혹에 빠져 자발라위에 의해 저택에서 쫓겨난 이들은 사막 한복판에서 천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드함의 자식이자 카인과 아벨을 상징하는 까드리와 후맘이 다투다 결국 살인이 벌어지고, 도망친 까드리의 후손이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이후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을 읽다 보면 각 장을 대표하는 인물인 자발은 모세를, 리파아는 예수를, 까심은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상징한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재산을 독차지한 지배자들 밑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데, 한 세대에 한 번씩 선조 자발라위의 목소리를 듣는 선지자가 나타난다. 그 선지자들은 주변 인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악인에게 맞서며, 이들의 혁명적 일화는 후대에 길이길이 남아 이야기꾼에 의해 전승된다. 이러한 구성에 힘입어 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의 종교사를 한 편의 소설에 압축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소설 속 배경은 단순히 카이로의 한 마을이 아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병든 세상의 축소판이고 주된 등장인물은 종교적 의미 안에서 해석해야 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종교적 진실과 문학적 진실이 맞물린 이 작품은 굽이쳐 흐르는 거대한 급류를 지켜보는 듯 인류가 이뤄 온 역사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나지브 마흐푸즈는 인류의 삶 곳곳에 있는 폭력과 억압적 지배에 각 선지자가 어떻게 사람들을 해방했는지 꾸준히 묘사한다. 절대적 악(惡) 앞에서 어떤 이는 비폭력으로, 어떤 이는 복수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으로 이루어 낸 평화는 얼마 못 가 다시 탐욕에 눈이 먼 자들에 의해 깨지고 만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려는 선인들의 의지처럼 물질적 욕심과 이기심을 통해 발현되는 악 역시 인간이 본성에 내재한 한 면임이 틀림없다.

 선악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세상 가운데 선한 의지를 가진 특별한 존재에 대한 갈망과 상상이 인류의 역사 전체에 걸쳐 존재했음이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나지브 마흐푸즈는 『우리 동네 아이들』을 통해 그러한 신적인 존재의 탄생에 대한 인간적 해석과 함께 어떤 곤란이 닥쳐도 선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것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