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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석영 단편소설 『탑(塔 )』

by 언덕에서 2023. 4. 26.

 

황석영 단편소설 『탑( )』

 

 

 

황석영(黃晳暎. 1942~ )의 단편소설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소설이며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탑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한국군이 철수하자 미군은 즉시 그 탑을 곧 부수어 버리고 만다. 전쟁의 목적과 명분이 뚜렷하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죽음만을 낳는 베트남전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간결한 문체와 속도감과 긴장감 있는 상황 묘사가 뛰어나다.
 이 작품은 작가의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 소설로, 전쟁의 공포와 소외된 인간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제3세계(베트남) 문제를 다룬 소설로서 우리 소설의 지평을 세계사 차원으로 넓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약간의 수정을 가한 공포영화 <알포인트(R-POINT)>가  2004년  공수창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작품 발표 이후 1977년 월남전 참전을 경험한 박영한 작가의 「머나먼 쏭바강」이 발표되어 공전의 화제작이 되었으며, 1983년 안정효 작가의 월남전 경험을 다룬 <하얀 전쟁>이 발표되었다.

 

영화 [알포인트 (2004)]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보충병으로 차출되어 본대로부터 작전 지역인 R.POINT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나이 어린 하사관 지휘 아래 아홉 명의 병사가 맡은 일이란 게 오래된 탑을 지니는 것이라는 무모한 임무를 듣게 된다. 월남인의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징적인 물건인 탑을 적이 옮겨가지 못하게 지킨다. 병력 보충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 임무를 지속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적은 탑과 생포한 한 명의 게릴라 인질 때문에 함부로 포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밤만 되면 대통과 목탁 두드리는 소리, 호각소리, 고함 소리 등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근처 B교량 쪽에서 미군들이 경기관총을 볶아대기 시작하고 건십은 중기관포로 대지공격을 하였으나 폭음과 흰 연기와 함께 교량은 파괴되었다. 교량의 파괴는 우리의 철수가 지연된다는 의미였다. 굵은 빗줄기가 철모를 때리면서 샌드백 방벽 너머 부대의 폐허 쪽으로부터 적이 한 명 나타난다. 소총수는 무장을 끌러놓고 그를 생포하기 위해 나갔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를 인질로 삼기 위해 유인한 것이었다.
 다음 날 교각을 지키던 양키는 철수하에 R에는 우리만 남게 되고 중대장으로부터의 철수 명령은 내려지질 않았다. 마을 수색 중 어젯밤 포격으로 부상당한 적을 한 명 처치한 대신 적의 저격으로 문상병이 죽었다. 그날 저녁 작전이 변경되어 오늘밤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고 우리는 초소 주위의 배수로를 최후 저항선으로 삼아 적의 기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 10시쯤 적의 사격으로 시작된 격렬한 전투 속에서 적의 인질이 된 소총수와 통신병과 나이 어린 분대장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부대원은 탈진하여 굳어진 시체 사이에 넘어져 졸기 시작했다.
 다음 날 시체와 장비를 싣고 R을 나는 우리 뒤로 미군은 캠프와 토치카를 지을 요량으로 불도저 한 대 바나나 밭을 밀어버리며 탑마저 무너뜨렸다. 주인공은 말한다. "한 무더기의 작은 돌덩어리가 무슨 피를 흘려 지킬 가치가 있었겠는가. 나는 안다. 우리가 싸워 지켜낸 것은 겨우 우리들 자신의 개 같은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 [알포인트 (2004)]


 황석영은, 경복고 자퇴가 학력의 전부일 만큼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한 작가이다. 황석영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그의 풍부한 체험에 기초 한다. 해병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탑」,「돌아온 사람」,「낙타누깔」, 장편『무기의 그늘』등을 쓰게 하였고,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땀 흘려가며 얻은 문제의식은「객지」,「야근」등을 창작하는 동기가 되었다. 

 “내가 처음 LST로부터 상륙했을 때 모래먼지가 일고 있는 광대한 벌판 위에서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거대한 고철의 산더미였다. 포탑 껍데기와 부서진 중장비들과 레이션의 깡통들이 벌겋게 녹슨 채로 곳곳에 쌓여 있었고, 주위에는 야전 변소의 인분과 식량 찌꺼기를 태우는 기름 연기가 검게 올라가고 있었다.” 
 작품의 도입부다.  작가가 월남전을 겪고 해병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썼다. 전략적 요충지에 놓인 불교 석탑을 놓고 한국 해병대와 베트콩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다. 석탑을 차지한 쪽이 불심(佛心)이 깊은 민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가 계속되었다. 해병대가 악전고투 끝에 석탑을 지키지만, 불교를 무시하는 미군이 진지를 짓기 위해 탑을 허망하게 불도저로 파괴한다. '우리가 싸워 지켜낸 것은 겨우 우리들 자신의 개 같은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는 병사의 자조(自嘲)로 끝난다.
 


 

 이 작품은 외국 문화재에 대한 미국인들의 오만과 무차별적 파괴를 꼬집고 있다.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단편소설은 명분 없는 베트남전쟁 속의 무의미한 죽음을 고발하는 가운데,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탑에 대한 한국군들과 미군들의 인식 차이를 그리고 있다.
 한국군들이 작전 명령에 따라 한 마을의 조그만 탑을 지키다 떠나자 미군들은 즉시 탑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런 골치 아픈 것은 없애버려야지. 미합중국 군대는 언제 어디서나 변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가 있네. 세계의 도처에서 말이지..... 노란 놈들은 이해할 수 없단 말야"라고 말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체험이 녹아 있는「탑」, <돌아온 사람>, <낙타누깔> 등은 황석영의 초기 베트남 3부작들로서 전쟁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에 발표한 소설들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1983년에 1부 연재가 시작된 <무기의 그늘>과는 다른, 작가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초기의 시선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덜 이성적일 수도 있고, 좀 더 객관화 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체험의 생생한 기억과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황석영의 초기 베트남 3부작'은 따로 구분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